버스 정류장에서였다. 칠월의 햇살은 오전부터 무섭게 달아올랐다. 타오르는 햇빛이 눈부셔 살인을 했다는 소설 <이방인>의 뫼르소가 생각날 정도로. 습하기까지 한 무더운 여름 날씨는 아침부터 불쾌지수를 단박에 끌어올렸다. 그늘을 찾아 선 채 버스를 기다렸다. 무료한 시선은 눈앞에 있는 가로수를 향했다. 투박하게 갈라진 껍질과 옹이 위로 진초록의 은행잎들도 더위에 지쳐 보였고 밑동 부근엔 강아지풀 몇 개가 갸녀린 고개를 숙이고 흔들렸다. 그때 무언가 눈에 뜨였다.
일정한 모양의 회색 보도블록 사이에 규칙을 깨는 그 무엇. 다가가 살펴보니 그것은 블록 서너 개를 합친 크기의 화강석 판이었다. 거기에는 ‘저희가 시공했습니다’란 글 아래로 공사명과 구간, 기간이 상세하게 새겨져 있었다. 게다가 시공자와 발주처 담당자의 이름과 전화번호까지. 보도(步道) 공사 실명제였다. 자신들이 한 공사에 책임을 지겠다는 다짐으로 다가와 신선했고 강동구란 글자가 선명했다.
그동안 지하철을 타야 하는 먼 거리가 아니면 집과 가까운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종종 애용했다. 연두색의 마을버스를 자주 타서일까, 왠지 정겹고 낮시간엔 한산해서 편리했으니까. 작년 겨울 이곳 보도를 공사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동네 주민들은 연말이면 멀쩡한 보도블록을 뜯어낸다면서 예산 낭비란 말을 했고 통행에 불편을 주었기에 다들 한 마디씩 했었다. 그 공사를 끝낸 지가 반년도 넘었는데 이제야 겨우 이 글판을 발견하다니. 나의 무심함을 돌아본다. 새삼 이름이 주는 무게감도 다시금 새겨보면서.
지난달 남편이 가족 단톡방에 유튜브 영상을 하나 올렸다. 화면에는 짧은 금발의 여성 지휘자와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 앉아 있는 피아니스트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임윤찬’이란 이름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 자막과 함께. 난 영문을 몰라 남편을 쳐다보았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리나라 십 대 소년이 최연소로 삼관왕을 차지하면 우승했단다. 동영상 속 미소년의 모습과 연주는 클래식에 문외한인 나에게도 굉장한 끌림을 주었다. 건반 위를 폭주하는 듯한 손가락, 음악에 몰두하며 온몸에서 뿜어내는 격정적인 연주는 감동적이었고 음악을 사랑하는 그 진심이 전해왔으니까. 마치 구도자와 같은 모습으로.
그날 이후 이어지는 그의 인터뷰와 기사를 읽고서 깜짝 놀랐다. 십 대 소년의 말이라기엔 믿기지 않는 내공과 깊이가 느껴졌고 범상치 않았으니까. 역시 다독가였다. 리스트의 피아노곡 ‘단테 소나타’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 국내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된 단테의 <신곡>을 빠짐없이 찾아 읽었고 거의 외우다시피 했단다.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해서는 작곡가와 그 작품의 배경지식을 알아야만 제대로 연주가 가능할 것이리라. 특히 신곡은 중세를 마무리하면서 르네상스를 연 고전작품으로 읽기에 정말 어려운 희극시라는 평이었다. 얼마 전 신곡 읽기에 도전했던 나는 본문의 시구만 읽어서는 내용을 제대로 알 수가 없었고 본문만큼 많은 주석을 보면서 겨우 읽어내야만 했었다. 결국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따라 단테와 함께 지옥을 겨우 빠져나왔으나 연옥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천국은 가보지도 못한 채. 완독을 목료로 한번 읽기도 어려운 책을 열 번 이상 읽고 거의 외울 정도라니.
그의 독서방법을 알고 나니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의 첫 부분이 떠올랐다. 조르바를 만나게 되는 카페에서 주인공 보스는 여행의 동반자인 단테 문고판을 꺼내 어느 부분을 읽을지 망설였다. 지옥편의 불타오르는 암흑을 읽을지, 연옥 편의 정화하는 불길을 읽을지 그러다 인간의 희망이 최고의 감정 기준이 되는 대목을 고른다. 아침 일찍 고르는 단테의 시구가 하루 종일 그 운율을 선물해줄 거라는 생각에 문고판 책을 손에 들고 자유를 만끽한다는 그 부분. 정말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이 어린 피아니스트도 이렇게 음미하면서 읽었으리라. 이런 고전 인문학의 밑받침이 있었으니 작곡가의 의도에 자신만의 해석을 더해 완성도 높은 연주가 가능했으리라. 기교적인 면뿐 아니라 내면의 섬세한 표현력까지도.
찌는 더위 속에 전해진 어린 연주자의 성숙한 말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본다. 그는 얼마나 완벽한 연주를 위해 긴 시간 좁은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냈을까. 보이지 않은 곳에서 땀방울을 흘리면서. 앞으로 나처럼 많은 클래식 문외한들이 그가 연주한 곡들을 통해 고전음악에 입문하며 아름다운 음악의 세계를 누릴 것이다. 그의 이름을 보고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그가 연주한 곡을 선택해 들으면서.
누군가 말하길 시간에는 발이 있단다. 민첩하고 힘차고 빠른 발이 달려있으니 그저 이 자리에 있기 위해서만도 힘을 다해 뛰어야 한다고 경고한다. 이 무더위 속에서도 계속되는 내 인생 공사 또한 생각해본다. 하루하루의 시간이란 벽돌이 쌓여 만들어지고 있는, 시공자에 내 이름을 쓴 인생이란 건축물을. 그 이름의 의미가 오늘따라 무겁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