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찾아서. 2

by 가을장미

숙아, 무덥고 습한 여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어머니 장례식 때 상복 입은 네 모습이 아직도 생각나는구나. 건강 챙기라고 보내준 배즙, 지금까지도 잘 먹고 있단다. 그동안 어머니 간병하느라 애썼으니 이젠 네 건강도 잘 챙기길 바라. 지금도 문득 엄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지. 아마 당분간은 그럴 거야. 어머니란 존재는 우리에게 뿌리와 같은 분이기에.


나도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벌써 십여 년이 지났지만 살아계실 때나 돌아가셔서도 여전히 우리 형제 대화의 중심엔 그분들이 계시는 듯해.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죽음조차도 끊을 수 없는 것 같아. 지난 몇 해는 코로나로 추도식 때 조차도 다 같이 모일 수 없었기에 아쉬움이 컸단다. 청춘시절에 온 몸으로 전쟁을 겪은 우리 아버지, 가난으로 쌀밥에 고깃국이 소원이었던 엄마, 좀 더 멋진 부모를 부러워했던 철부지 시절도 있었지만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입이 다물어졌지. 그분들이 일군 우리나라에 태어난 것만도 감사하면서.


얼마 전 느긋한 공휴일 오전이었단다. 느닷없이 사이렌 소리가 들렸어.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그날이 현충일이란 사실이 이내 떠올랐지. 나도 모르게 일어나 눈을 감고 잠시 고개를 숙였단다. 묵념은 기도가 되었고 현충원에 잠들어 계신 부모님이 생각났다. 부모님 뿐 아니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수고하고 피 흘린 선열들 덕분에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평안함에 감사가 절로 나왔으니까. 오월이 가정의 울타리에서 사랑을 전하는 날이었다면 유월은 좀 더 관심을 나라로까지 높고 넓게 가지라는 듯했기에.


숙아, 요즘은 책을 읽다 보니 서양문명의 뿌리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생겨나.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라는 서양의 두 기둥은 인류 역사의 원형이기도 하기에 그런가 봐. 그래서일까 한 책을 찾게 되었단다. 고대 그리스의 작가 호메로스가 구전되던 이야기를 집대성했다는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야. 서양 최초의 영웅 서사시라고 하는데 특히 '일리아스‘는 십여 년에 걸친 그리스 군의 트로이 공격 중 마지막 50일 동안 일어났던 사건을 노래하는 만여 행이 넘는 긴 서사시더라. 제우스를 비롯한 올림프스 신들과 아킬레우스 그리고 핵토르 등 영웅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깊은 깨달음을 전하고 있었어.


벌써 수천 년 전 작가가 분노라는 키워드로 독특한 구성의 글을 쓴 것에 감탄했어. 비록 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 많은 각주를 읽느라 힘들었고 한국어로 번역돠었기에 원문의 운율을 느낄 수 없을지라도 말이지. 문학의 뿌리가 바로 이 서사시를 시작으로 서정시, 희비극 시로 연극화되다가 소설과 에세이로 발전해갔다니, 그 흐름을 안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지중해에 위치한 크레타 섬에서 태어났다는 제우스와 올림포스 여러 신들의 신화 때문일까. 미노아 문명의 발생지인 크레타 여행은 나의 로망이 되었어. 비록 사하라의 뜨거운 모래 먼지를 싣고 시로코가 불어올지라도. 지금까지도 트로이 전쟁이 끊임없이 회자되는 이유는 신화를 역사로 끌어들인 두 사람 때문이라고 해. 그중 알렉산드로스 왕은 자신이 그리스의 영웅인 아킬레우스의 혈통이라면서 페르시아와의 정복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이 트로이 신화를 이용했대. 그리고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도 스파르타와 경쟁해서 십 년 동안이나 버텼던 강하고 화려한 문명국인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이아스의 후손이 자신이라면서 입지를 강화하고 백성들을 이끌었단다.


현대에도 명품 브랜드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이름이 많더라. 예를 들면 제우스의 부인 헤라를 화장 품명으로, 전령의 신인 헤르메스를 가방이나 패션의 명으로, 태양과 궁술 그리고 음악을 주관하는 아폴론 신의 이름을 아폴로 우주선으로 명명하는 것 등 무서운 방사능인 우라늄 또한 1세대 하늘의 신 우라노스에서 비롯되었다고 해. 서양에서는 어려서부터 익숙하게 즐기고 익혔던 신화를 통해서 자신들의 세계를 볼 수밖에 없나 봐. 이제 점점 더 세계화되어가는 시대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세계관의 근원이 되는 헬레니즘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


독서에 문외한인 내가 최초의 서사시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일리아스’를 완독 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기뻤어. 필멸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결국은 신이 준 운명을 방아들이고 자신의 공도체를 위해 명예롭게 삶을 마감하며 성숙해가는 과정은 생각을 많이 하게 돼. 인간은 누구나 영원불멸의 욕망이 있지만 신이 아니기에 육신과 정신의 한계에 부딪치니까.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를 찾아가는 긴 여정 영웅들의 이야기는 내 인생 여정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명예와 사랑 등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만들어.



그리고 끔찍한 친부 살해를 의미하는 ‘파트로크토니아’란 것이 나오더라. 우라노스, 크로노스, 그리고 제우스까지 그들은 모두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이 권력을 차지하려 신들의 전쟁을 하게 되지. 동양의 유교 사상과는 달라 읽기 거북했어. 하지만 신화 속의 그 뜻은 기성세대가 쌓아놓은 틀에 젊은 세대가 안주하지 말고 그것을 깨뜨리면서 자신들의 시대를 만들어 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하네. 이 친부 살해의 사상은 19세기 러시아의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까지도 이어지고 있더라.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정신을 모르면 서양의 문학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 수밖에 없겠어.


숙아, 나는 우리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 틀에 맞추려 했던 아집과 무지가 떠올라 후회가 많이 된다. 비록 언니는 그런 실수를 했지만 네게는 기회가 있다고 봐. 아직 두 딸이 어리니까 그들이 엄마를 뛰어넘도록 격려해주길 진심으로 바랄게. 잘 해내리라고 믿어. 날이 좀 선선해지면 전에 말했던 창경궁 뒤에 ‘왕의 후원’에서 꼭 만나 속 깊은 이야기 나누자. 그럼 만날 때까지 더위에 건강 조심하고 가족들에게도 안부 전해 줘.


2022. 7월에 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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