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일찍 떠졌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창을 보며 조용히 거실로 나갔다. 나만의 공간인 책상에 앉아 묵상 다이어리를 펼치니 시월 첫날이었다. 매달 별 차이는 없지만 그래도 빈칸에 계획들을 적어 본다. 텅 빈 캔버스를 앞에 둔 화가같이 훌쩍 내 앞으로 다가온 시간의 구성과 채색을 고민하면서. 나를 돌아보는 고즈넉한 새벽 시간이 얼마나 달콤한지,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마치 요 며칠 가을 날씨처럼.
묵상집의 첫 장을 넘기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란 문장과 함께 정물화가 보였다. 나무 탁자 위에는 커다란 소라껍데기와 회중시계가, 그 옆으로는 일본도와 불이 꺼져 가는 향로, 손 때 묻은 듯한 책 두 권이 놓여있다. 그 뒤로는 커다란 술병과 류트라는 악기가 뒤집혀 있고 나팔이 보인다. 중앙에는 턱이 빠져 있는 해골이 자리를 차지한 채. 화면 왼쪽 위에서 나오는 한 줄기 빛은 그 해골을 비추고 있었다. 하르멘 스텐 베이크란 화가의 <정물:인간 삶의 허영심에 대한 알레고리>란 그림이었다. 친절한 설명과 함께.
17세기 네덜란드는 유럽 교역의 중심지로 급부상해서 성화(聖畵) 대신 경제적 부와 물질적 풍요가 낳은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 그림들이 유행했단다. 그중 인기 있었던 장르가 바로 ‘바니타스’라는 정물화였다. 바니타스란 공허를 나타내는 라틴어로 이 그림 속의 책은 인간의 지식을, 악기는 세상의 즐거움과 쾌락을, 당시 동양에서 가져온 일본도는 재물, 커다란 조개껍질은 탐욕 등을 상징했다. 또 회중시계와 향로의 연기는 삶의 유한성을 암시하고 정중앙의 해골은 죽음을 의미하면서 이런 정물화는 허무함의 방점을 찍고 있다고 했다.
출처:픽사베이 '바니타스'
‘메멘토 모리‘란 라틴어 경구가 절로 떠올랐다. 죽음의 문제 앞에서 인간은 한계를 직면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아닌가. 지식과 쾌락과 재물 등 이 모든 것을 놓고 가야 하는 삶의 마지막을 생각하란 듯. 그동안 나는 무엇을 좇아 살아왔나. 철없던 소녀시절과 불안한 청춘을 지나며 한 남자를 만났다. 사랑이 아닌 조건을 따져가며 등 떠밀려 결혼을 했고 아이들이 태어나자 안정된 가정을 위해 아내와 엄마로 바쁘게 달려왔다. 앞으로도 재물과 쾌락과 지식을 내려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또 부모님의 믿음을 이어받았지만 철저히 기복적이고 위안을 받기 위한 수준 낮은 믿음이었다. ’모든 것이 헛되다‘는 솔로몬 왕의 말은 인생의 가을을 맞는 나에게 삶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사색하라는 듯 다가왔다.
어린 나이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야 했던 솔로몬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는 지혜를 구했단다. 그 마음을 어여삐 여긴 신이 구하지 않은 부귀와 장수까지 주어서 지혜의 왕으로 이름난 그가 다스린 왕국은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는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를 누려보았으리라. 하지만 말년에 이르러 쓴 전도서에서 그가 지금껏 살아왔던 그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나는 아직 세상의 많은 것을 더 갖고 누리고 싶기만 한데…
누군가 죽음은 삶을 객관화시키는 거울이라 했듯 죽음이야말로 인생의 중요한 것들을 드러나게 할 것이다. 일생을 통해 축척해 놓은 부는 놓고 갈 수밖에 없기에 죽음 뒤에도 남는 명예를 위해 인간은 죽어갈 수 있었고 인류 역사가 계속되는 한 그 이름은 남기에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동서양에 전통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삶과 행복, 명예와 사람 등 여러 키워드가 인문학의 주제로 다루어지지만 죽음을 뛰어넘는 화두는 아마도 종교의 차원이 아니겠는가. 기독교의 부활신앙과 불교의 윤회사상을 통해 인간은 사후에도 불멸의 진리를 찾고자 노력하는 존재임을 느낀다.
묵상집의 뒷부분은 또 다른 의미를 전했다. 세속적인 삶을 멸시의 관점으로 보았던 중세 천년의 관점이 아닌 낙관주의적인 해석이었다. 종교개혁자인 루터의 신앙과도 맥을 같이했다. 비와 햇빛이 없으면 농부의 수고가 헛되고 부모가 없었다면 내가 태어날 수 없었고 나의 지식조차도 앞선 사람들이 해놓은 것들 덕분에 가능한 것이니 결국 내가 누리는 대부분의 것은 알량한 나의 애씀보다는 신으로부터 거저 주어지는 선물이란 뜻이었다. 그러니 지금 먹고 마시며 누리는 모든 것들을 기뻐하고 감사하라는, ‘카르페 디엠’이었다. 거기에 더해 내가 받은 선물을 또 다른 사람을 위해 선용하면 행복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라고.
얼마 전 지인의 소개로 카이스트 산업디자이너인 유명 교수의 강의를 접했다. 그의 얼굴울 보니 십여 년 전 교회에서 간증을 직접 들었던 기억이 났다. 큰 키에 독특한 헤어스타일, 자신이 디자인한 한복을 변형시킨 검은색 옷을 입었던 그는 정해진 시간을 훌쩍 넘겨서까지 열정을 다했기에. 지금도 여전했다. 디자인이란 아름답고 예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찾아내서 혁신적이고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통찰력 가득한 그 말에 수긍이 되었다.
동양인 최초이자 최연소 파슨스 디자인스쿨의 교수가 되고 유명기업들과 함께 작업하며 디자인계의 노벨상에 해당되는 많은 상도 타고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디자이너란 직업이 10%의 욕망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얼마 후면 유행에 뒤처져 쓰레기가 될 것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란 회의가 들었단다. 90%의 대부분 지구촌 사람들은 생존과 관련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말이다. 치열한 고민 끝에 열악한 제3세계로 눈을 돌렸단다. 자연스럽게 사랑의 나눔 디자인을 시작해서 가치 있고 생명력 있는 디자인으로 착한 소비를 만들어내는 제품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환원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겸손한 그는 자신이 빚진 자라 고백했다. 그렇기에 가진 돈과 재능, 시간을 나누고 그 마저 여의치 않으며 긍휼한 마음을 나누어야 한단다. 그의 인생 여정은 오늘 아침 묵상과도 상통했다. 부끄러웠다. 난 항상 자기애로 똘돌 뭉쳐 내 문제에 급급했고 남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고 삶의 시야가 너무 좁았으니까. 독실한 신앙인인 그는 신 앞에 섰을 때 세상에서 무엇을 하다 왔느냐는 질문에 정말 고민했단다.
이십 대의 나는 허무주의에 빠져 살았다. 불안한 미래를 염려하며 방황했다. 삼십 대에는 두 아이의 육아로 정신없이 살았고 또 이십여 년은 직장생활로 생존을 위해 살았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을 직시해보니 내 안에 선한 것은 없었다. 열심도 성실도 다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을 뿐. 감정에 요동하고 언제라도 깨질 수 밖에 없는 연약한 몸과 마음을 가진 존재였다. 그러니 이제는 내 밖에 있는 단단한 진리의 말씀을 경외하리라. 내가 선물로 받은 것 중 일부라도 나눌 수 있는 삶을 추구한다면, 비록 어려울지라도 지성을 넘어 영성으로의 여정은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만 같다. 밝아오는 시월의 청명한 아침처럼.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