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을 꿈꾸며

by 가을장미


안개가 살짝 낀 아침, 소형버스에 몸을 실었다. 코로나 확산세가 다소 주춤하자 문우들과 첫 문학기행을 겸한 가을 나들이였다. 보라색 드레스 코드로 맞춰 입은 그들의 표정엔 미소와 함께 여정에 대한 설렘이 엿보였다. 서울을 벗어나 국도를 달리는 차창 밖으로 단풍이 곱게 든 산과 추수를 끝낸 들판이 펼쳐졌고, 고즈넉한 시골길에서 마주치는 감나무는 마치 주홍색 등불을 켜고 손님을 반기는 듯. 가을 정취에 젖어들다 보니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다. 안성 장재봉 기슭에 자리한 조병화문학관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해설사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전시실에는 시인이 남긴 오십여 권의 창작시집과 수필집 그리고 화집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가 즐겨 쓰던 베레모와 입에 물었던 파이프도 정갈하게 놓여 있었고 학창 시절 성적표와 럭비공, 각종 훈장 및 상패들로 빼곡했다. 해설사는 전시실 곳곳을 찬찬히 안내하면서 잠시 한 흉상 앞에 멈췄다. 세계 시인대회에서 계관시인으로 추대되어 명예의 월계관을 쓴 모습을 기념하는 조각상이었다. 조병화 시인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고 그의 시는 유럽과 아시아 여러 나라의 언어로도 소개되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았던 대단한 분이였으니. 이곳에서 시인의 체취가 묻은 듯한 오래된 시집 한 권을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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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층 교육실에는 편운문학상의 역대 수상자들 사진이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매년 시와 평론 부문의 작품을 선정하여 시상하는데 문외한인 나도 알 정도로 유명한 시인들이 많았다. 아마 이런 상을 제정한 깊은 뜻은 교과서에도 실렸던 시인의 ‘의자’라는 시에 나타난 그 마음이 아니었을까.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을 위해 자신의 묵은 의자를 비워드겠다’던 것처럼. 후배 문인들을 위한 따뜻한 배려였으리라. 생전에 꼼꼼하게 준비해놓았다는 문학관을 나오며 입구에 전시된 백여 권이 넘는 책표지의 제목들을 유심히 보며 사진에 담았다. 의사였던 아내 김준에게 헌사했다는 첫 시집인 ‘버리고 싶은 유산’과 많이 알려진 ‘공존의 이유’도 보였다. 그의 시 세계의 주제가 되는 그리움과 고독 그리고 꿈이란 단어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잔디가 깔린 정원을 조금 올라가니 편운재라는 아담한 건물이 나타났다. 그곳은 그의 호를 딴 ‘조각구름의 집‘이란 뜻으로 힘들게 자신을 뒷바라지하며 키워주셨던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묻어나는 묘막이란다. 그 주변에는 다양한 모자상들이 곳곳에 서있었다. 한 시인의 생애가 고스란히 담긴 문학관과 그가 말년에 거처하며 집필을 했던 서재를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시인이 평생 추구한 삶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 곳을 통해 그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의 시는 어렵지않았지만 인간의 숙명적인 허무와 고독이란 철학적인 명제를 품고 있었다.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시인의 길에는 꿈과 사랑을 추구하는 열정이 가득했다. 마지막 시집에 실린 “무식처럼 암흑한 것은 없다’는 셰익스피어의 구절을 인용한 시가 가슴에 와닿았다. 아마도 그는 구도자의 마음으로 시를 썼겠다. 넓고도 푸른 하늘에 조각구름이라는 뜻의 호 편운(片雲)은 인간의 한계를 알고 또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겸손함이 담겨 있는 것만 같았다. 교직에 몸 담고서 끊임없이 글을 쓰면서도 방학이면 세계 곳곳으로 여행을 다닌 것도 좀 더 새롭게 자신의 내면세계를 확장하려는 몸짓이 아니었을까. 번데기에서 나비로 변신하려는 부단한 그만의 안간힘으로.


얼마 전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는 카프카의 글을 접하고 전율을 느꼈다. 그리곤 그의 단편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변신>에서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그레고르가 어느날 아침, 해충으로 변하여 괴물, 짐승, 마지막엔 물건으로 불리며 죽어간다. 가족들의 무관심 속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력을 상실한 인간 존재를 사실적으로 그렸다. 조병화 시인과는 결이 달랐지만 인간 실존의 허무와 절대 고독을 주제로 하는 두 작가의 예리함은 공통 분모였다.


하지만 카프카의 소설은 내게 너무 난해했다. 초현실적인 플롯과 괴이한 상상력은 내 이해의 한계를 드러내게 만들었으니까. 독서광인 지인은 카프카의 벽을 넘어야 한단다. 그의 영향은 실존주의와 현대작가들, 즉 사르트르로부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무라카미 하루키, 밀란 쿤데라까지도 이어진다면서. 지금껏 카프카의 책만큼 작가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책은 없었던 것 같다. 자수성가한 유대인 아버지와 예민한 아들, 체코인이었지만 독일어 교육을 받았기에 따르는 이방인과 같은 정체성의 고민을 알아야 했으니까. 노동재해보험국 관리로 일하면서도 밤에는 글을 썼던 그에게 글쓰기는 내면의 탈출구였으리라.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좁은 자아를 확장시키는 방법은 책과 독서모임이었다. 역사의 검증을 받은 고전과 다양한 책을 통해서 거인의 어깨에 올라 탄 운 좋은 난쟁이가 되는 것이기에. 비록 책을 읽으면서 감명받거나 인상 깊은 부분 또는 의문이 드는 구절을 표시했다가 주제와 구성과 문체 또는 인물, 사건, 배경을 떠올리면서 질문을 만드는 것은 괴로웠지만. 조금은 버거운 이런 과정을 통해 서로 만든 질문을 나누다 보면 짙은 여운이 남고 뿌듯했다. 나와 다른 남들의 생각을 통해서 미처 몰랐던 사실을 배우며 조금씩 안개가 걷히는 듯했기에.


어쩌면 그런 과정이 카프카가 말한 내면의 도끼질을 통한 나의 약한 독서 근육을 강하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조병화 시인이 평생 추구한 문학의 세계를 위한 치열한 변신의 몸짓과도 닮았으리라. 아는 만큼 보일 것이다. 이젠 나도 본능으로 사는 밥벌레 돈벌레 그리고 일벌레를 벗어나 진정한 인간다움을 고민해본다. 번데기에서 수많은 탈피의 과정을 거쳐 조금씩 나비로 성장을 해가 듯. 앞서 걸어간 위대한 작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문학기행과 책을 통해 조금 더 성숙한 인간으로의 변신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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