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달력은 마지막 잎새처럼 달랑 한 장만 남았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새삼 계절의 법칙을 실감하며 마음이 부산해진다. 오늘 병원 실습은 다행히 제시간에 끝나서 실습복을 급히 갈아입고 어둑해진 거리로 나섰다. 난 늦은 나이에 도전한 간호조무사 시험을 위해 몇 달째 병원에서 실습을 하고 있었다. 피곤하고 배도 고팠지만 모처럼 예약한 공연에 늦지 않기 위해 딸과 약속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쌀쌀한 밤공기에 찬 손을 비비면서 장갑을 찾았다. 겨울밤 하늘엔 반달이 은은하게 떠있었지만 초조한 마음을 추스르며 버스에 올랐다. 잠시 뒤 보게 될 오페라에 대한 기대만을 품은 채.
얼마 만에 와보는 곳인가. 벽에 걸린 오페라 ‘라보엠’ 포스터 앞에서 인증숏을 찍고 총총히 오페라 하우스로 걸어 들어갔다. 좌석표를 확인하며 3층에 자리를 찾아 들어가려니 먼저 와앉아있던 옆자리의 남녀가 일어나 길을 비켜주었다. 공연 시작 전부터 여자 친구의 손을 잡고 쓰다듬는 청년에게선 감출 수 없는 사랑이 엿보였고 그들의 젊음이 부러웠다.
신혼 때, 세종문화회관에서 남편과 오페라를 본 기억이 난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태리 노래에 난감해하던 내 젊은 모습도. 공연에 오기 전 잠시 검색을 해보았다. 라보엠은 ‘보헤미안 기질’이란 뜻으로 푸치니가 작곡한 4막의 오페라였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파리의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의 사랑 이야기와 우정을 그린 비극적 작품이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는 사회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젊은 에술가들을 집시족, 보엠이라고 불렀단다. 그들은 비록 가난했지만 돈을 벌기 위해 내키지 않는 작품을 억지로 꾸미지 않았으며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예술과 사랑을 위해 정열을 쏟았다고.
공연 시간이 다가오자 좌석은 꽉 찼고 오케스트라의 악기 조율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객석에 불이 꺼지고 막이 올랐다. 때는 크리스마스이브, 파리의 변두리에 같이 사는 가난한 시인 로돌포와 예술가들의 다락방에 옆방의 재봉사인 미미가 불을 빌리러 오면서 운명적인 사랑이 시작된다. “이 조그만 손이 왜 이다지도 차가운지… 내가 따뜻하게 녹여주리다” 라며 로돌프의 그 유명한 아리아 ‘그대의 찬 손’이 울려 퍼진다. 거기에 화답하는 ‘내 이름은 미미‘라는 아리아가 뒤따르고, 무대 위쪽 중앙에 위치한 한글 자막이 이해를 도왔다. 비록 시선이 위아래를 오가며 보느라 피곤하고 아름다운 대사를 놓치기도 해 안타까웠지만.
잠시 휴식 뒤 2부 공연에서는 긴장이 좀 풀렸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졸다가 화들짝 놀라 깨기도 했다. 창피했다. 연인의 손을 쓰다듬던 옆의 청년은 아예 잠이 든 듯했고 딸도 또한 잠시 졸았다고. 다들 평일 근무를 마치자마자 추운 날씨에 달려왔기에 조금 피곤하긴 했으리라. 오페라는 폐결핵에 걸린 미미의 안타까운 죽음에 로돌프의 절규로 끝을 맺었다.
국립오페라단의 웅장한 세트와 의상, 성악가들의 노래가 너무나 멋졌고 음향시설 또한 역시 수준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클래식에 문외한이어도 음악이 주는 아름다운 선율은 느낄 수 있었으니까. 라보엠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라고 했지만 청춘의 사랑과 고뇌 그리고 가난을 사실적으로 그린 이 작품에 마음이 짠해졌다. 왜 소중한 것은 언제나 사라지는 것일까. 가진 것이 없었기에 두려울 것도 없었고 아팠기에 오히려 눈부셨던 우리 젊은 날의 초상과 같은 청춘의 찬가라는 해설을 되새겨 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언 손을 녹여줄 사랑을 찾아왔으나 가난 속에 병으로 차갑게 죽어간 미미의 모습은 내게 한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얼마 전이었다. 실습을 나가보니 여느 때와 달리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한 할머니가 위독하다며 간호사실이 분주했다. 심전도 모니터를 달고 있는 그녀의 병실 앞에는 딸과 사위가 찾아왔고 의사와 면담을 했다. 담당 의사는 이제 장례식장도 알아보고 마지막을 준비하라 했다. 하루 전 바이탈 체크할 때도 별 이상이 없었던 분이었는데… 그녀의 나이는 102세였다. 난 이곳에서 환자의 혈압과 체온 등을 체크하는 기본적인 업무를 하면서 간호사를 보조하며 배우고 있다. 병원의 일은 워낙 생명에 관계되는 급박한 일이라 경력이 많은 간호사들은 다소 거칠었다. 각기 지시하는 내용이 통일되지 않아 처음엔 혼란스러워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간병인은 말하길 그 할머니는 전날 밤새도록 울며 소리를 질렀단다. 간헐적으로 지르는 고통스러운 신음에 난 그 병실을 들락거렸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괴로운 표정에 무엇을 잡으려는 듯, 손을 허공에 올리곤 하면서 거친 숨을 내쉬는 모습이었다. 마지막 잎새가 바람 앞에서 사투를 하는 듯 보였고 난 무서웠다. 함머니의 딸 내외도 돌아가고 간호사들은 자신들의 일에 바빴다. 환자의 마지막 고통은 오로지 혼자서 담당해야 하는 외로운 길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니 교회에서 들었던 영혼구원이 생각났다. 한 생명이 꺼져가는 다급한 시간, 내가 잡아 본 할머니의 손은 차가웠다. 그녀의 찬 손을 잡고 난 마음 편히 먹으시라고, 수고하셨다고, 걱정 마시라며 내 부모를 보낼 때처럼 인간적인 말만 되뇔 뿐이었다.
그녀의 종교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기에 마음속으로만 내가 믿는 주님께 이 영혼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랬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병실의 다른 사람들과 간호사들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할머니에게 들리도록 좀 더 간절하게 부활신앙을 전하지 못했으니까.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이 일을 말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죽음을 앞두고 있기에 예수 이름으로 구원의 복음을 전했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딸은 내 상황과 마음을 이해한 듯, 쉽지 않았겠단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했다. 내 수준 낮은 신앙의 민낯이 보여 괴로웠다. 주말을 고심하다 출근했다. 조심스레 그 병실을 들어가 보니 조용했고 침대는 텅 비어 있었다. 할머니는 다음날 돌아가셨단다. 내게 두 번의 기회는 없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미미의 찬 손과 할머니의 차가웠던 손이 내 가슴속에 남는다. 따스한 장갑 같은 작은 마음조차 미처 전하지 못한 내 손을 내려다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