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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Aug 31. 2022

천만 영화, 앞으로 나오기 더 힘들어

올해 천만 영화는 '범죄도시2'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어

앞이 보이지 않던 코로나 팬데믹은 어느덧 엔데믹을 향해 가고 있다.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코로나19 여파로 암흑기를 겪었던 한국 영화계도 다시 한번 기지개를 켜면서 부흥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재기의 스타트를 끊어준 게 지난 5월에 개봉한 영화 '범죄도시2'다. 개봉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누적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하는 쾌거를 이뤄내면서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는 평까지 들었다. '범죄도시2'의 대흥행 질주에 자극을 받았는지, 개봉일자를 '미정'으로 설정했던 국내 대형 상업영화들이 서둘러 개봉일자를 정하며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했다.


사진='범죄도시 2'


그래서인지 성수기인 이번 여름 박스오피스에는 NEW를 제외한 국내 주요 배급사들(CJ ENM, 롯데, 쇼박스, 메가박스플러스엠)이 각자 자신들이 자랑하는 텐트폴 영화를 꺼내 들었다. CJ ENM은 최동훈 감독의 신작이 '외계+인' 1부를, 롯데는 '명량'에 잇는 충무공 이순신의 또 다른 영화 '한산', 쇼박스는 충무로 초호화 라인업으로 구축한 재난 영화 '비상선언', 메가박스플러스엠은 이정재의 연출 데뷔작 '헌트'를 내보였다. 이들 모두 정면승부로 맞붙기보단 1주씩 간격을 둬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개봉일을 잡았다.


네 작품 모두 '범죄도시2'의 바통을 이어받아 천만 영화 타이틀을 쟁취하는 듯했으나, 결과적으로 모두 실패했다. 영화 관계자들의 예상과는 정반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한산' 만이 누적 관객 700만 명을 넘기며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비상선언'과 '외계+인' 1부는 각각 약 204만 명, 153만 명을 기록하며 흥행에 실패했다. '헌트'(누적 관객 수 376만 5088명, 2022년 8월 29일 기준)는 박스오피스에서 순항 중이긴 하나, 손익분기점인 420만 명을 겨우 채우고 끝날 것으로 보인다. 


재밌는 건, 영화진흥위원회가 공개한 2022년 7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 발표에 따르면 7월 극장가는 전체 매출액 1704억 원, 전체 관객 수 1629만 명을 동원해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으로 복귀했다는 것. 7월 전체 관객 수는 1629만 명으로 2021년 7월 대비 133.4%(931만 명) 증가했고, 코로나 이전인 2019년 7월 대비로는 25.7%(563만 명) 감소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텐트폴 영화들 중 어느 누구도 천만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한 건 무엇 때문일까.

 

사진='한산: 용의 출현'


코로나19 전후로 극장이 가장 많이 달라진 건 바로 '관람료'다. 지난 2020년 2월 코로나19 확산 사태 이후 극장을 찾아오는 관객 수가 급감하고, 극장 매출 규모가 크게 줄어들며 타격을 입었다. 이 때문에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도 매출액이 적은 지점을 문닫게 하거나 인력을 감축시키는 방안을 모색했고, 이것도 여의치 않자 관람료를 대폭 인상했다. 


현재 극장 표값 평균은 평일 1만 4천 원, 주말 1만 5천 원 선으로 팬데믹 이후 2년 남짓 올렸던 표값 인상 폭은 32%. 이는 이전 10년 치 인상 폭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이 올랐다. 물론 미국, 영국 등 일부 국가들과 비교하면 비싼 편이라고 할 순 없겠으나, 그동안 관객들이 극장을 많이 찾아왔던 이유는 푯값이 다른 문화활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제법 부담스러운 가격대가 된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나의 소중한 여가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기에 극장에서 볼 영화를 선택할 때 어느 때보다 신중함을 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먼저 관람한 이들의 관람 후기나 언론시사회 등으로 본 취재진들의 영화 평 등에 더 많이 귀를 기울이게 된다.


여기에 이번 텐트폴 영화로 등판한 영화들의 작품 완성도도 크게 한몫했다. '한산: 용의 출현'과 '헌트'는 언론시사회 때부터 개봉 1주 차까지 평단과 일반 관객들에게도 인정받는 퀄리티와 대중성을 갖추며 입소문을 탔다. 이를 발판 삼아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하는 등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외계+인' 1부와 '비상선언'은 관객들이 지불한 1만 4천 원 값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했고, 당연히 입소문 또한 좋지 못해 조용히 물러났다. 입소문 덕분에 장기 상영한 '탑건: 매버릭', '헤어질 결심'과는 대조적이다.


사진='헌트'


영화 관계자들이 '범죄도시2'의 성공 비결을 섣불리 판단한 것도 패착이다. '범죄도시2'가 1269만 명 이상 동원할 수 있었던 건 대중의 전반적인 취향을 맞춘 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영화판 전체 회복 수순이 아니라 5월 초부터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직후였기에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보복관람' 열풍이 불었고, 당시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손석구가 '범죄도시2' 출연하면서 맞물린 것도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이례적 흥행이었던 것. 


코로나19를 겪는 지난 3년간 대중의 영화 소비 형태가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현재 한 사람당 표값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 한 달 구독료보다 높은 편. 그렇기에 같은 값이면 한 편을 보느니 차라리 OTT에서 서비스하는 다른 콘텐츠를 선택하는 게 소비자 입장에선 이득인 셈. 


남들 따라서 영화관을 가지 않고 조금만 존버하면 OTT에서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OTT가 활성화됐고, 예전과 달리 홀드백(개봉 뒤 온라인 공개까지 걸리는 최소기간) 기간이 점점 짧아져 편하게 컴퓨터 모니터나 스마트폰 액정으로 볼 수 있다. 이를 반영한 듯, 여름 텐트폴 영화인 '한산: 용의 출현'과 '비상선언'도 홀드백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OTT 플랫폼 쿠팡플레이에 독점 공개됐다. 분위기가 확실히 예전과 달라졌다.


사진='비상선언'


텐트폴 영화들이 예상했던 시나리오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영화 업계는 우려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작품성과 상업성이 검증된 스타 감독과, 배우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영화계에서 대형 영화의 관객 감소는 투자 축소 및 제작 편수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위기를 인지한 뒤, 업계는 황급히 배급 전략을 재정비하고 있다. 상영관 확보를 걱정하는 것은 물론 관객 입소문을 고려해 스크린과 상영회차를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로 개봉을 미뤄온 다른 작품들과 눈치 작전을 하면서 개봉 시점을 재조정하기 시작했다. 


여름 성수기 다음으로 대목으로 꼽히는 추석 연휴는 '공조2: 인터내셔날'만 개봉일을 정했고, 다른 배급사들은 추석 연휴 이후로 개봉 날짜를 조율하고 있다. 최근 추석 연휴에 개봉한 영화들의 흥행 저조 및 올해 추석 연휴가 상대적으로 짧다는 점을 고려했을 것이다.


사진='기생충'


그러나 한국 영화계는 엔데믹에 가까워지자 너무 흥분한 나머지 가장 근본적인 걸 놓치고 있다. 코로나19가 대유행하기 전부터 대형 상업영화들이 질보다 양에 더 무게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엄청난 물량공세를 퍼부으며 제작비, 마케팅비, 그리고 내로라하는 스타들을 내세우면서 영화를 어필한다. 또는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서 탄생한 어마어마한 세트장이나 기술력, 촬영 기법 등을 강조한다.


예전과 달리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가 등장하고 물 건너 한국으로 들어오는 할리우드 작품들, 수많은 작품들을 접하면서 수준이 높아진 관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선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화면과 그림을 제공하려는 노력이 결코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건 안다. 창작자의 상상력을 실감 나게 구현하려면 때로는 필요할 수도 있다. 문제는 영화를 만드는 제작자들의 고민이 좀 더 깊어져야 한다는 것. 탄탄하고 매력적인 서사, 입체적이고 몰입할 수 있는 캐릭터 표현력 등 기본 요소들에 힘을 쏟아야 한다. 


지난 2019년 전 세계 영화인들을 사로잡았던 천만 영화 '기생충'이 아마 대표적인 모범 사례가 아닐까. 다른 한국 대형 상업 영화들처럼 큰 사이즈의 제작비(150억 원)를 투입했음에도 사이즈 불리기보단 서사, 인물, 연출 기본적인 부분에 허투루 쓰지 않고 퀄리티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그 결과 전 세계 'Parasite' 열풍이 불었던 것 아닐까. 


이제 더 이상 블록버스터 같은 사이즈로 키운다고 해서 천만 영화 타이틀을 얻을 순 없다. 관객들이 비싼 표값을 지불하게끔 만드는 빈틈없는 스토리라인, 스크린 속 캐릭터들의 감정선까지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천만 영화는 더욱 나오기 힘들 것이다. 지금 추세로 봤을 때는, '범죄도시2'가 2022년 처음이자 마지막 천만 영화로 기록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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