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콰이어트 플레이스'
존 크래신스키 연출, 에밀리 블런트 주연 '콰이어트 플레이스 2'가 6월 16일 개봉했다. 1편이 공개된 지 국내 기준으로 3년 2개월 만이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영화산업이 타격을 받고 몇 차례 개봉 연기된 후에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이 영화의 무기는 청각을 활용해 공포감을 안겨주는 구성.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해 덤벼드는 괴기한 괴생명체들은 무서움을 유발하기에 충분했고, 괴생명체들의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숨죽인 채 저마다 생존전략을 펼치며 대응하는 애보트 가족의 대항은 깔끔한 쾌감과 스릴을 안겨줬다.
2편에서 에블린 가족은 생존을 위해 보금자리를 떠나 새 은신처를 찾으러 나섰고, 다시 한번 괴생명체와 조우해 생사를 넘나들었다. 특히 1편에서 다소 생략된 사건 발생 원인이 도입부에 추가하면서 불친절한 서사로 아쉬웠던 부분을 어느 정도 해소시켰다. 그러면서 1편 엔딩을 잇는 사건 발생 474일째로 이어져 시리즈물다운 연속성을 강화했다. 이번 편 엔딩 또한 내후년 공개될 다음 편을 염두하듯 매듭지었다.
괴생명체들의 비주얼이 선사하는 공포감이나 리액션 등으로 극대화하는 배우들의 연기력, 공포와 드라마 간 적절한 완급조절 등으로 '공포영화'라고 평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가 공포영화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깜짝 등장하는 괴생명체들이 점프 스케어 이상으로 뻗어나가진 못했기 때문.
괴생명체와의 사투는 호러물보단 크리처, 재난 장르에 더 적합해 보였다. 또 영화 중간마다 따뜻한 휴머니즘과 가족 이야기가 더 짙게 묻어 나왔다. 1, 2편을 통틀어 본다면 역경을 극복하는 인간의 성장사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실제 '콰이어트 플레이스'를 가족영화처럼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 현지에선 종교적인 접근으로 영화를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사제 로버트 바론은 1편에 대해 "2018년 가장 종교적인 영화"라고 후기를 남겨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의 말마따나 종교적 관점으로 하나하나 뜯어보면 '콰이어트 플레이스'도 제법 흥미롭다.
사건 발생 89일째, 리(존 크래신스키)-에블린(에밀리 블런트) 가족은 마트서 조용히 필요한 물건들을 챙겼다. 무언가를 의식하듯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며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신경 썼다. 그러나 작동된 장난감 소리는 정적을 깼고, 그로 인해 막내 보가 괴생명체에 납치되는 비극을 맞이했다.
단숨에 사건 발생 472일째로 점프했다. 애보트 가족은 여전히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대화는 수화 혹은 가까이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농사짓거나 먹을 땐 조금이라도 소리를 발생할 것 같은 요소들을 사전 차단했다. 그리고 식사 전 기도하는 걸 빼놓지 않았다. 현대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전근대적인 분위기였다.
인상적인 건 애보트 가족이었다. 아포칼립스가 도래하는 가운데, 이들은 서로에게 희생하는 모습으로 가정을 지키고 있었다. 애보트 부부는 헌신적으로 리건(밀리센트 시몬스)-마커스(노아 주프) 남매를 돌봤고, 남매들 또한 부모와 상대방을 적극적으로 보살폈다. 이는 인류를 두렵게 만드는 어둠(질병, 사악함, 죽음 등)을 물리치는데 필요한 침묵, 기도, 헌신을 상징하는 대목이다. 자신 때문에 동생을 잃었다는 죄책감에 매번 목숨을 걸고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방문해 추모하는 리건의 행동도 여기서 비롯됐다.
89일째와 달라진 에블린의 모습이 '콰이어트 플레이스' 1편에서 이목을 끌었다. 사건 472일째 그는 만삭 임산부가 됐는데, 임신과 관련된 전사는 일절 드러나지 않았다. 한 치 앞날을 모르는 상황에서 임신과 출산이라니, 소리에 예민한 괴생명체가 노리기 쉬운 표적이 됐다. 마치 영화적 설정처럼 애보트 가족을 덮칠 시한폭탄처럼 암시했다.
예상보다 일찍 양수가 터지고 산통을 느낀 에블린은 비명과 신음을 참으며 출산 준비에 서둘렀다. 산통으로 잠시 집중력이 떨어진 찰나 못을 밟아 비명을 질렀고, 이와 함께 물건을 떨어뜨리는 소리가 나면서 괴생명체의 위협을 받게 됐다. 2층 욕조에서 필사적으로 고통을 참는 에블린 뒤로 괴생명체가 접근해왔다.
에블린과 괴생명체 간 숨 막히는 대치는 신약성경 요한 묵시록 12장 1~18절에 등장하는 '묵시록의 여인'을 연상케 했다. 머리가 일곱, 뿔이 열 개인 붉은 용은 해산하는 여인 앞에 지켜 서서 아이가 태어나길 기다렸다. 아이를 잡아먹으려고 기다렸던 것이었다. 여인은 사내아이를 낳고 그 아이는 하느님의 어좌로 들어 올려졌다. 이어 여인은 광야로 달아났다. 이후 용은 미카엘과 천사들에 의해 처단당해 땅으로 떨어졌다.
에블린은 괴생명체의 위협 속에서 무사히 아이를 낳은 뒤 나무상자에 2중으로 넣어 밀폐시켰다. 나무상자 사이에 부직포나 면 같은 것을 넣어 최대한 방음시켜 소리를 죽였다. 또 산소호흡기를 아이에게 물리면서 질식을 방지하며 위기를 극복했다. 현대판 묵시록의 여인이었다. 로버트 바론 사제 또한 이 구성을 보며 "계시록의 그 장면이 떠올랐다"고 평했다.
특히 에밀리가 리에게 "만약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지킬 수 없다면, 우리는 무엇일까?"라고 건네는 대사는 의미심장했다. 극단적인 상황에 치닫게 되면 각자 생존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데, 이들은 새 생명을 지키기로 결심하며 부모로서 희생하는 삶을 택했다.
벙커로 미처 돌아오지 못한 리건-마커스 남매를 구하러 나선 리 또한 부모의 희생을 그려냈다. 곡물창고서 아이들을 무사히 만났으나 가까운 곳에서 괴생명체 울음소리가 들리면서 집으로 직행할 수 없게 됐다. 그는 아이들을 트럭으로 몸을 숨겼다. 잠시 후 괴생명체는 리를 공격한 뒤, 남매가 숨은 트럭을 뒤집는 등 위협을 가했다.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리는 도끼를 땅으로 내던지는 소리로 괴물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면서 리건에게 "나는 너를 사랑해. 언제나 너를 사랑했어"라는 의미의 수화를 보여준 뒤 괴생명체를 향해 고함을 지르며 최후를 맞이했다. 이것이 리가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아이들을 향한 자신의 사랑의 깊이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덕분에 리건-마커스 남매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자녀들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한 대신 자신을 포기한 리의 행위는 십자가형에 처하면서 자기희생을 행했던 예수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예수가 스스로 희생하면서 그를 따르던 이들이 암흑과 음모로부터 벗어났듯, 리는 괴생명체를 자기 자신에게 끌어당겨 아이들을 구했다. 자신을 던지며 자녀들에게 생존의 기회를 줄 수 있었다. 부모의 희생을 예수의 희생처럼 그려내며 따뜻한 가족애를 부각했다. 결국 리의 희생은 에블린과 리건, 마커스가 괴생명체와 싸울 수 있는 발판이 됐다.
1편의 바통을 이어받은 '콰이어트 플레이스 2'는 엄마 에블린보다 자녀인 리건과 마커스 남매에 더 초점이 맞춰졌다. 마치 부모의 열렬한 헌신과 희생으로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이 윗세대가 이루지 못한 숙원을 대신 나서서 완수하는 듯한 뉘앙스가 강했다. 엔딩에서 리건과 마커스가 괴생명체와의 관계가 역전된 채 마무리 짓는 구성이 그랬다. 특히 에밋(킬리언 머피)과 함께 섬으로 여정을 떠나는 리건의 서사는 멸망에 처한 인류를 구원하는 작은 영웅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다시 한번 강조한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는 공포영화가 아니라, 종교에서 강조하는 헌신과 희생이 따뜻하게 드러난 '가족영화'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