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트 클럽'으로 재조명한 현대인들의 딜레마
문명의 발전은 삶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만든다. 평생 가지 못할 것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됐고, 무언가 사고 싶은 게 생긴다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구매할 수 있다. 원거리 주문도 당일배송으로 받아보기도 한다. 당장 배달앱을 켜기만 해도 국적을 쉽게 넘나드는 음식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뭐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스마트폰 하나면 웬만한 게 다 해결된다.
현대 문명이 인간에게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다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내면까지 만족시켜 행복을 가져다준 건 아니다. 문명의 이기가 발달하면서 스트레스와 염증, 결핍 등도 반비례는커녕 더욱 커졌다. 모든 걸 편하게 만드는 스마트폰 때문에 '스마트폰 중독'에 빠졌고, 남들보다 먼저 신상을 가져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도 모락모락 자라났다. 여기에 직장 스트레스를 비롯해 각종 염증이 뭉쳐 불면증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고 인간의 기본 욕구까지 위협한다.
1999년 개봉한 '파이트 클럽'은 심리적 결핍, 압박, 염증을 달고 사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데이비드 핀처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연출력과 브래드 피트의 섹시함 등 화려함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좀 더 깊게 파고들면 영화 속 이야기들이나 인물 간 대사, 구도, 묘사 등 오늘날 현대인들이 공감할 지점들이 소름끼치게 많다. 그래서 대중이 가장 사랑하는 데이비드 핀처 영화가 아닐까 싶다.
에드워드 노튼이 연기하는 남자 주인공은 극 중 이름이 나오질 않는다. 그의 이름이 나오지 않은 점이 현대인의 초상을 상징하는 듯했다. 리콜 심사관인 남자 주인공은 차량 사고를 조사하러 끊임없이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다녔다. 숨 막힐 정도로 일에 치여 사는 그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이케아 쇼핑을 시작했는데, 이는 이케아 강박증으로 돌아왔다. 스타벅스 커피를 루틴처럼 찾게 된 것도 이와 비슷했다. 이는 영화 개봉한 지 20년이 지난 현재도 달라진 게 없다.
결국 그는 불면증을 얻었고, 삶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안식처가 필요했다. 그렇게 선택한 것이 중독자 모임. 남자 주인공은 모임에서 가짜 위로라도 받으며 마음을 달래려 했으나,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고환암 환자 모임에서 자신처럼 사이비 행세하는 여성 말라 싱어(헬레나 본햄 카터)를 만났기 때문. 때아닌 불청객의 등장에 그는 다시 욕구와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한 채 쌓기만 했다.
답답함 삶 속에서 한줄기 빛으로 다가온 이가 있었으니, 바로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이다. 그를 우연히 비행기에서 만났다. 타일러 더든은 "9km 상공에서 비행기 출구로 나간다니 환상에 불과한 안전"이라며 동시에 항공기 사고시 산소마스크를 마시면 고분고분하게 운명을 받아들이게 만든다고 한마디 했다. 그러면서 대피요령 매뉴얼 책자에 그려진 사람들이 차분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냐며 물었다.
여기에 비누를 만든다고 밝히며 비누가 폭탄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남들이 쉽게 입 밖에 꺼내지 않는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이 남자, 주인공은 묘한 매력을 느꼈다. 가스 누출로 집이 폭파된 것을 계기로, 주인공은 타일러 더든과 같이 지내게 됐다.
타일러 더든은 중독자 모임을 전전했던 주인공을 이상하게 바라봤다. 주인공을 향해 "자기개발은 결국 자위행위에 불과해"라는 한마디를 남겼다. 거짓 위안은 결코 짓눌린 내면을 치유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이 부분이 '파이트 클럽'이 말하는 첫 번째 비판이다.
그러더니 타일러 더든은 주인공에게 대뜸 한 대 쳐보라고 제안했다. 주인공이 내지른 주먹은 난투극으로 이어졌고, 두 사람 모두 얼굴과 몸에 상처를 얻었다. 타일러 더든에게 얻어맞아 생긴 상처들이 얼얼하게 아팠으나, 폭력을 겪고 난 뒤 가슴이 뛰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이게 뭘까. 주인공은 폭력행위에서 억압된 욕구와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채울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타일러 더든과 함께 술집 지하에서 파이트 클럽이라는 폭력 클럽을 창설했다.
파이트 클럽의 영향력은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번져갔다. 창설 멤버인 주인공만 하더라도, 단정하고 각 잡힌 직장 패션을 풀어 헤치는 등 사회가 정한 통념을 깨뜨렸다. 또 고분고분하게 따랐던 상사에게도 반항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그는 더 이상 죽은 듯이 지내지 않았다. 아드레날린이 가져다주는 흥분과 짜릿함, 스릴이 그가 살아있다는 걸 매번 자극시켰다. 파이트 클럽에 가입한 다른 이들도 그랬다. 자기파괴가 이들을 구원했다. 파이트 클럽이 삽시간에 미국 전체에 번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자기파괴하면서 자신들을 일깨워준 파이트 클럽이 마음의 병을 치유할 백신일 줄 알았으나, 부작용이 발생했다. 과거 본능대로 살던 삶으로 돌아가고자 일어났던 사람들은 인간이라면 갖춰야 할 이성, 감정, 양심 등이 무뎌지기 시작한 것. 나아가 큰 문제를 일으켜도 무감각했고, 나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정체성과 개성이 사라졌다. 그저 폭력 집단의 이름 없는 일원으로 되어갔다.
그렇게 파이트 클럽은 사회를 전복시키려는 테러 집단으로 돌변했다. 이들이 무정부주의자로 돌변할 것이라고 주인공과 타일러 간 대화에서 일찌감치 복선이 깔려 있었다. 두 사람은 처음 싸우고 싶은 상대를 아버지와 헤밍웨이로 꼽았는데, 미국 문단서 헤밍웨이는 부성과 남성성을 상징하고 있었다. 나아가 아버지와 헤밍웨이는 기성체제를 상징하며 이들에게 반항하겠다는 의미가 내포된 것이다. 또 간디와 링컨을 싸움 상대로 정했는데, 두 인물은 민주주의에서 비폭력주의자로 추앙받고 있다. 즉 폭력으로 체제를 무너뜨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폭력의 카타르시스라는 마약에서 깨어난 주인공이 정신 차릴 때에는 이미 파이트 클럽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태였다. 충동적이고 비이성적, 극단적으로 바뀐 멤버들은 폭력으로 타인에게서 원하는 바를 빼앗았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손으로 사회를 무너뜨리며 황폐화 직전까지 몰고 갔다. 자기 파괴는 개인과 사회 모두 타락시킬 수 있다고 '파이트 클럽'이 비판하고 있다.
대척점에서 서 있는 주인공과 타일러 더든의 구도는 현대인의 모습과 현대인들이 겪는 딜레마를 상징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특히 말라 싱어를 대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이성적으론 그녀를 경멸하는 듯 하나, 그녀를 원하기 위해 이상적인 캐릭터가 필요했고 그 결과 또 다른 인격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파이트 클럽' 엔딩은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은 총구를 자신의 입으로 겨누고 방아쇠를 당겨 폭력의 늪에서 벗어났으나, 타일러 계획대로 초토화 작전으로 사회가 전복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주인공은 말라에게 "날 봐. 난 정말 괜찮아. 날 믿어, 모든 일들은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했다. 양비론을 내세우면서 동시에 현대인들의 해결되지 않는 딜레마를 담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드러낸 것. 데이비드 핀처가 "'파이트 클럽'을 성장 영화"라고 자평한 것도 여기서 비롯됐다.
'파이트 클럽'이 내포한 메시지처럼 현대인들은 이 딜레마를 죽을 때까지 안고 갈지도 모른다. 당장 해답이 나오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양쪽의 문제점을 인지하며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한다면, 잘못된 방법이 사회의 병폐로 이어지는 걸 예방할 순 있다. 그렇게 끊임없이 싸워나가다 보면 주인공처럼 우리 또한 괜찮아질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