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아수라처럼' 리뷰
(※ 드라마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다시 한 번 가족을 소재로 한 작품을 들고 나왔다. 다만, 스크린이 아닌 글로벌 OTT 플랫폼 넷플릭스로 선보였으니 바로 드라마 '아수라처럼'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연출한 '아수라처럼'은 가족의 일상과 관계를 주로 다뤘던 일본 작가 무코다 구니코가 집필한 NHK 동명의 드라마(1979년 방영)를 리메이크했다. '아수라처럼'은 2003년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의 영화와 2004년 연극으로 제작됐을 정도로 일본의 대표 작품이다.
'아수라처럼'은 1979년 일본 도쿄에 살고 있는 타케자와 4자매 이야기를 그린다. 셋째인 타키코(아오이 유우)는 아버지 코타로(쿠니무라 준)가 우연히 다른 여자와 같이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언니인 츠나코(미야자와 리에)와 마키코(오노 마치코), 그리고 동생 사키코(히로세 스즈)를 불러들여 불륜을 폭로한다. 오랫동안 가정에 헌신한 어머니 후지(마츠자카 케이코)를 배신한 아버지를 보고 충격받은 타키코와 달리, 자매들은 의연하게 넘긴다. 오히려 언니들과 동생은 오랜만에 만난 즐거움과 반가움을 표출하기 바빴다.
타키코를 제외한 자매들이 시큰둥했던 이유는 이들 또한 불륜과의 거리가 멀지 않기 때문. 남편과 사별한 첫째 츠나코는 거래처 사장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고, 둘째 마키코는 남편 사토미 타카오(모토키 마사히로)의 불륜을 의심하고 있는 상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막내 사키코는 동거 중인 무명 복서 남자친구 진나이 히데미츠(후지와라 키세츠)가 다른 여자를 집으로 불러들이는 광경을 목격하고도 그와의 결혼을 감행한다. 아버지 코타로처럼 양면을 얼굴을 띤 채 말이다.
'아수라처럼'의 중심에는 '불륜'이 있고 이를 원동력 삼아 이야기가 전개되긴 하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불륜으로 인해 네 자매와 주변 인물들 각자 감추고 있던 비밀이 드러나고 서로 오랫동안 묵혀뒀던 갈등이 불거져 나오는 것이 본질적인 내용이다. 4회를 기점으로 츠나코, 마키코, 타키코, 그리고 사키코 네 인물이 처한 상황과 가족 간 관계성, 자잘하게 야기되는 갈등 등이 본격 심화되는데 아수라처럼 양면의 얼굴을 보여주는 게 특징이다.
사이가 좋아 보이는 츠나코와 마키코,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는 마키코는 유부남과 불륜을 저지르는 언니가 이해되지 않고 새 결혼 상대를 찾아주려고 나선다. 어느덧 장성해 여친을 집으로 데려온 아들을 둔 츠나코는 이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는 걸 머리론 알고 있지만, 마음이 따라가지 못한다. 이 때문에 끈끈한 두 사람이 대립하는 상황을 맞이하기도 한다.
동생 라인은 오랫동안 묵은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사키코는 공부 잘하면서 집에서 주목받았던 언니 타키코에 대한 자격지심을 품고 있었고, 타키코는 아버지의 불륜을 의뢰하다가 알게 된 사설탐정 카츠마타 시츠오(마츠다 류헤이)와 사랑에 빠지지만, 카츠마타가 사키코의 남편이자 복서로 승승장구하는 진나이에 비해 초라해보이는 점 때문에 동생에게 질투를 느끼며 화를 낸다. '가깝지만 먼 가족'의 전형이다.
네 자매 이야기와 더불어 1979년 일본의 시대상이 반영된 인물들의 대사 및 행동들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특히 불륜 재범(?) 코타로에 대한 둘째 사위 타카오는 "남자이기에 이해할 수 있다"며 단순 남녀관계에서 일어나는 변심처럼 받아들인다. 분노유발케 하는 발언임에도 어느 누구도 타카오에게 이의제기하거나 반발하지 않는다. 그 시절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던 여성들의 상황을 조명하며 네 자매가 왠지 모르게 안쓰럽게 다가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찻잔 속의 태풍'처럼 타케자와 4자매 이야기를 격렬하면서도 잔잔하게 표현한다. 당사자들은 휘몰아치는 폭풍 때문에 감정이 최고조에 다다르나 드라마를 전지적 시점에서 지켜보는 시청자들에겐 세기가 약하고 파고가 낮은 파도를 보는 듯 잔잔하게 다가온다. 다만, 절반가량을 네 자매의 상황과 내면 심리를 디테일하게 표현한 것에 반해 큰 고조가 없다 보니 강한 자극이나 확실한 표현에 익숙해진 이들에겐 '아수라처럼'의 네 자매의 감정에 이입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아쉬운 점을 상쇄하는 건 '아수라처럼' 배우들의 앙상블이다. 90년대의 아이콘 미야자와 리에를 비롯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마더', '최고의 이혼' 등을 통해 일본 대표 배우로 자리매김한 오노 마치코, 2000년대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몰고 왔던 아오이 유우, 그리고 현재 일본에서 주목받는 히로세 스즈까지 시대별 대표 배우들의 자매 연기에 볼 맛이 제대로 난다. 여기에 충무로에 자주 얼굴도장을 찍는 쿠니무라 준과 연배가 제법 있는 시청자들에겐 '한경자'로 알려진 마츠자카 케이코까지 연기파티의 향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