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검은 수녀들' 리뷰
(※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형 엑소시즘 영화의 문을 열어젖힌 '검은 사제들'이 개봉한 지 10년 만에 후속편 '검은 수녀들'이 등장했다. 이번에는 신부가 아닌 수녀들이 주인공이며, 송혜교가 주연을 맡았다고 알려져 기대감을 불러 모았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봤더니, '검은 사제들'에서 발전하거나 나아지기는커녕, 후퇴한 느낌만 가득했다.
'검은 사제들'의 후속편이자 스핀오프작인만큼, '검은 수녀들' 이야기 속에는 '검은 사제들'과 같은 세계관을 띠고 있다는 걸 드러낸다. 영화의 주인공인 유니아 수녀(송혜교)가 김범신 베드로 신부(김윤석)의 수제자라는 설정부터 스승에게서 배운 구마의식, 그녀의 스승의 이름과 전편에서 스승이 직접 구마했던 이영신(박소담)의 사진, 김범신 베드로가 속한 장미십자회와 유니아 수녀의 관계성 등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에필로그에선 '검은 수녀들' 후속편을 나올 것을 염두했는지 아니면 두 영화가 하나로 수렴하고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는지 쐐기를 박는다. 김범신 베드로 신부와 함께 '검은 사제들' 메인 주인공인 최준호 아가토 신부(강동원)가 깜짝 등장한다. '검은 사제들' 세계관을 좋아했던 이들에겐 즐거운 팬서비스이자, 후속편이 나올 경우 신부와 수녀가 함께 새 구마 콤비를 이룬다는 상상력을 자극하며 이야깃거리를 만든다.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으나, 문제는 '검은 사제들'이 만든 세계관을 확장하기보다는 리메이크에 머무르는 수준이다. 악령의 존재를 주장하며 교단 눈 밖에 난 수녀가 자신의 주장을 믿으려 하지 않는 다른 수녀와 힘을 합쳐 나이 어린 부마자를 구조한다는 이야기 흐름이나 캐릭터 설정이 성별만 바뀌었을 뿐 전편과 매우 유사하다.
'검은 사제들'과 차별점을 주기 위해 천주교 구마의식을 기본으로 삼으면서 무속신앙의 굿, 서양 타로 점성술 등을 결합하지만 '사바하'나 '파묘'를 본 관객들이라면 이를 섞은 듯한 느낌을 받으며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여러 요소를 활용하나, 이를 매끄럽게 끌어안을 구심점이 약하다 보니 산만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여기에 최후의 방법으로 자궁암에 걸린 유니아가 자신의 자궁에 악령을 봉인하는 희생은 경악케 만든다. 과연 이것이 최선일까.
두 수녀의 구마의식 못지않게 서사에도 힘을 준 것 같지만, '검은 수녀들'의 스토리라인 또한 인상적이지도 않다. 이성적인 의사 신부 바오로(이진욱)와 수녀 출신 무당 효원(김국희) 두 캐릭터로 입체감을 더하며 차별화하겠다는 계산은 알겠으나, 두 캐릭터가 스토리 전반에 이렇다 할 영향력을 주지 못하고 소모되기만 한다. 특히, 이진욱은 '사기당했다'라고 표현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극 중 분량이나 임팩트가 미비했다.
유니아와 미카엘라(전여빈) 두 수녀가 만들어가는 여성 연대 부분 또한 흥미롭지 않다.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장애를 가진 캐릭터가 추가됐다 하여 약자의 연대를 담았다고 표현할 수 없다. 이들이 약자이거나 소수자로 보이지 않을뿐더러, 이들이 극복하는 부분도 없었다. 미카엘라가 안고 있는 '귀태 트라우마'나 박수무당 애동(신재휘)의 말더듬이는 구색 맞추기 같다. 장재현 감독이 '검은 수녀들'의 연출, 각본 둘 다 맡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만 남는다.
'두근두근 내 인생' 이후 11년 만에 한국 영화에 출연한 송혜교의 고군분투는 인정해야 한다. 넷플릭스 '더 글로리'를 기점으로 연기 터닝포인트를 맞이했다는 평에 걸맞게 그는 '검은 수녀들'에서 다양한 얼굴과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허술함이 가득한 영화를 멱살잡고 끌고 간다.
전여빈은 배우 특유의 폭발력을 '검은 수녀들'에서 터뜨리긴 하나, 송혜교와의 케미에서만 도드라진다. 이 또한 그의 역량을 100% 끄집어내기엔 작품의 헐거움이 큰 암초로 작용했다. 악령에 씐 소년 최희준으로 분한 문우진은 노련하게 자신의 미션을 수행하며 여기저기서 찾는 '믿고 보는 아역배우' 클래스를 입증하지만, 그 또한 영화 완성도 측면과 전편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박소담이라는 비교대상 때문에 조금 약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