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계시록' 리뷰
연상호 감독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연출자들에 비해 신작 공개하는 주기가 상대적으로 짧은 데도 끊임없이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그의 마르지 않는 창의성은 경의를 표하나, 다작하는 만큼 연상호 감독표 '연니버스'의 완성도는 퐁당퐁당 기복을 보이는 단점을 지녔다. 넷플릭스로 공개된 영화 '계시록'도 이 흐름을 따라간다.
'계시록'은 실종 사건의 범인 권양래(신민재)를 단죄하는 것이 신의 계시라 믿는 목사 성민찬(류준열)과, 죽은 동생의 환영에 시달리는 실종 사건 담당 형사 이연희(신현빈)가 각자의 믿음을 쫓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삼았으며, '그래비티', '로마' 등을 연출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영화는 교회를 주요 배경으로 다루면서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세 인물들의 믿음과 신념을 실종 사건을 계기로 서서히 부각시킨다. 제작진은 극적인 면을 살리기 위해서인지 원작 만화의 일부 설정을 다르게 잡는다. 세속적인 면이 있었던 성민찬은 신실한 개척교회 목사로 자신의 소임을 다하려는 면을 부각했고, 원작에서 강인한 면을 드러낸 이연희는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불안에 떠는 예민한 상태에 있는 인물로 표현한다.
권양래와 얽힐 때마다 성민찬은 예수의 모습을 보았다고 믿기 시작하며 "주님의 뜻을 따르겠다"며 범인을 단죄하는 것이 계시로 받아들이며 점점 광기 어린 모습을 보인다. 권양래는 자신이 전과자가 된 이유를 과거 10년간 당한 학대의 후유증으로 탄생한 외눈박이 괴물 때문이라고 믿는다. 동생의 죽음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이연희는 복수만을 생각하며 달려왔지만, 트라우마와 맞서며 자신이 생각해 온 믿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한다.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그대로 믿고 싶어하는 세 개의 아전인수식 '믿음'이 얽히고설키는 지점이 포인트다. 목사와 형사, 전과자 세 인물의 심리전을 담아내기 위해 영화는 조용히 긴장감을 쌓아가다가 이들이 한 곳에 마주하는 순간 한꺼번에 폭발하며 파국으로 이어진다. 신념이 안간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요소 중 하나이나 신념이 잘못된 방향으로 갈 경우 어떻게 되는지를 조명하며 '인간에게 신념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연상호 감독은 판타지적 요소를 많이 가미했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인간의 심리적인 환상과 트라우마 등을 부각하며 현실성을 높인다.
이야기 소재가 영화의 메시지는 참신하나, 2시간 넘는 러닝타임 동안 영화의 주요 인물 3명의 관계성이 헐겁다는 게 문제다. 성민찬과 권양래, 이연희가 한 앵글에 담기는 장면 이후 '계시록'은 후반부부터 급하게 후루룩 넘어가는 인상을 준다. 여기에 너무나 설명적이고 단순하게 사건을 해결하려는 느낌이 든다. 세 인물의 대립 또한 긴장감을 강화하기 보단,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이 빠진다. 그럴싸한 초반부에 비해 '이게 뭐지?'하며 김이 팍 새는 '연니버스'의 전형적인 단점이 '계시록'에서도 나타난다.
'계시록'을 이끌어가는 배우들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류준열은 'The 8 Show'에 이어 다시 한 번 물오른 연기력을 선사하며 '미친 폼'을 보여준다. 그는 개척 사명을 받고 작은 교회를 이끌며 신실한 삶을 살다 계시를 받은 뒤 시시각각 변화하는 성민찬의 심리를 서늘하고도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그동안 다양한 독립영화에 출연해 눈도장을 받았던 신민재는 첫 등장 신부터 퇴장할 때까지 소름 돋는 연기력과 분장으로 서스펜스 역할을 담당했다.
그에 반해 신현빈의 변신은 어딘가 아쉽다. 짧게 자른 헤어스타일과 푸석한 얼굴로 이연희의 내면을 보여주려고 노력한 점은 알겠으나, 시종일관 자신과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모습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