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뜨거웠던 11월 울산의 가을밤

2012년 11월 10일 ACL 결승전의 기억

by J Hyun

날씨가 매우 화창한 토요일, 정오 부근 잠실 종합운동장 근처. 애인과 어디론가 멀리 근교로 데이트하러 가기 딱 좋은 날씨다. 그러나 애인 없고 누군가를 태울 차도 없는 솔로에게는 상상 속에서나 벌어질 일이다.


그러나 오늘은 딱히 옆구리가 시리거나 외로움을 느낄 겨를이 없다. 일생일대 한 번 볼까 말까 한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할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울산 현대가 팀 창단 역사 이래 최초로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올라서다.


당시 울산이 결승까지 올라온 길을 되돌아보면 한마디로 드라마틱했다. 조별리그는 무난하게 통과했으나, 안심할 수 없었다. 오래 본 축덕들은 "본격적인 아챔은 16강부터"라고 이야기할 만큼 한 경기 한 경기가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16강전인 가시와 레이솔과의 단판 경기부터 똥줄 타는 경기였다. 후반 25분 가시와 수비수 곤도가 걷어낸 공이 자책골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피 말리는 연장을 경험할 뻔했다. 곤도 덕분에 분위기를 잡았다.

사진=울산 현대

8강 상대인 알 힐랄과 홈경기는 솔직히 아슬아슬했다. 힘겹게 1대 0 승리했으나, 알 힐랄은 사우디 강호이자 아챔 강팀 중 하나였다. 게다가 한국서 사우디 원정은 지옥길이나 다름없었고, 당시 울산의 폼이 썩 좋지 못했다. 그래서 울산 팬 아닌 사람들도 걱정했다. 그러나 알 힐랄은 자비 없는 철퇴 세례에 고꾸라졌고, 울산은 4강 진출이라는 값진 결과를 이뤄냈다.


4강에서 맞붙은 분요드코르는 그나마 편했다. 그들을 2연전으로 상대하면서도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이후 결승에서 만날 상대가 'K리그 킬러' 알 이티하드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다. 행운의 여신이 도왔는지, 이들은 2차전에서 거짓말처럼 알 아흘리에게 일격을 당해 4강에서 무너졌다. 알라신이시여,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교적 만만한(?) 상대가 결승에서 맞붙는 대진이 성사되면서 각종 국내 언론들과 축덕들은 울산 아챔 우승에 대한 설레발을 치기 시작했다. 울산 팬들도 우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들떴다. 나도 그 분위기에 휩쓸렸다. 침착해야 하는데, 이미 우승한 것처럼 하늘 위를 붕붕 날아다니고, 내 심장은 이미 나대고 있었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확실하게 챔피언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문수경기장 행 티켓을 끊었다.


울상이야 형은 "울산이 우승할 리 없다"며 태클을 걸었다. 물론 그 말에 신경 쓰진 않았다. 이 형은 역레발(말하는 것과 반대로 이뤄지는 일)의 아이콘이었기 때문. 참고로 울산이 아시아 챔피언에 등극하면 김호곤 감독 동상을 세우겠다고 공약을 건 사람이 울상이야 형이다. 나는 "동상 세울 준비나 하시죠?"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두 사람은 아챔 결승전을 함께 보러 가는 동지다. 결승전은 울산 문수경기장서 하는데, 경기장서 362.4km 떨어진 잠실에서 만난 이유는 문수행 왕복 버스를 타기 위해서였다. 우리를 포함해 서울 수도권에 거주 중인 울산 팬들이 버스 하나를 대절해 다 같이 가기로 결정했다.


사실 결승전을 보러 가는 것만큼, 버스 타는 것도 떨렸다. 물론 좋은 떨림이었다. 오랫동안 축구를 보고 좋아하긴 했으나, 나 홀로 즐겨왔다. 또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보니 같은 팀을 응원하는 동지를 만나기조차 매우 어려웠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하기 어렵다는 울산 팬을 SNS를 통해 하나 둘 알게 됐고, 그러다 수도권에서 울산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수도권대리점이라는 존재까지 알게 됐다. 그렇게 뒤늦게 서포터스 일원으로 합류했다. 이들과 함께 아챔 결승전 서포팅을 함께 할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버스 안은 푸른색 물결이었다. 그 물결 사이로 사람들 얼굴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고, 나를 보며 반갑게 인사해줬다. 문수행 버스에는 처음 보는 사람들, 혹은 울산팬은 아니나 아챔을 보러 가기 위해 합승한 이들도 있었다. 수도권대리점 사람들은 초면인 사람들에게도 두 팔 벌려 열렬히 환영했다. 어서 오세요, 여기는 낯선 이들도 반갑게 맞이하는 수도권대리점입니다.

사진=나

1시가 조금 넘은 시각, 수도권대리점 버스는 종합운동장에서 출발해 문수경기장으로 향했다. 버스가 동서울 IC로 빠져나간 것 이외에는 어느 방향으로 움직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시동이 걸리는 순간부터 탑승자 대부분이 뒷좌석 쪽으로 몰려서 바리바리 싸온 맥주와 안주를 오픈해 나눠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축제 분위기로 바뀔 수 있었던 건, 여러 가지 요소가 결합된 것 같다. 울산의 결승 상대가 비교적 만만했고 그동안 울산이 아챔에서 보여준 활약상을 생각해봤을 때 우승이나 다름없다고 확신하는 분위기가 버스 안을 지배했다. 여기에 수도권대리점 사람들을 포함한 버스 탑승자 대부분이 쉽게 잘 섞이고 친화력이 좋은 성향인 것도 한몫했다.

우리끼리 너무 신났던 걸까. 울산행에 약간 문제가 발생했다. 버스가 고속도로 분기점에서 잘못 들어섰다. 다행히 빨리 발견해 제 궤도에 오르긴 했으나, 10여분의 지체가 나비효과처럼 작용했다. 여유롭게 문수경기장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시간에 쫓기기 시작했다. 대구를 지나면서부터 초조했다. 이러다 경기 시작하고 난 뒤에야 도착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기사 아저씨, 액셀레이터를 세게 밟아주세요. 저희 늦으면 안 된다고요.


동쪽으로 향할수록 해는 점점 반대편으로 사라져 갔다. 혹시나 늦게 도착할까 불안해지고 심장이 쫄깃해졌다. 그 쫄깃함도 언양과 울산을 잇는 울산고속도로에 진입하면서 사그라들었다. 1km, 2km, 3km... 저 멀리 울산고속도로의 종점 신복로터리를 지키는 하얀 삼각탑이 전방에 보이기 시작했다. 문수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다. 하늘이 도왔는지, 종종 정체 현상이 일어나는 신복로터리 부근 교통도 원활했다. 다행히 지각하지는 않겠구나.


오후 7시 반 경기 시작을 앞두고 30여 분 남기고 문수 경기장에 세이프. 휴, 살았다. 버스가 문수경기장 북문 쪽 앞에 정차하자마자 탑승 인원들은 미리 예매해둔 N석을 향해 뛰어내렸다. 나는 가기 전에 초등학교 절친 K를 찾아야 했다.


K와는 종종 연락하며 서로의 생사여부를 확인해오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마침 울산에 살고 있는 이 녀석에게 "흔치 않은 기회다. 인생 최고의 기억이 될 거다"고 끈질기게 꼬드기고 꼬드겨 문수로 불러냈다. 이를 위해 기꺼이 2인분 표값을 내가 냈다. 다행히 N석 입구 근처서 기다리고 있어서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을 표시할 틈도 없이 곧장 경기장 내부로 들어갔다.

한국서 열리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라고 울산을 넘어 전국에 제대로 소문난 건지, 경기장에 들어온 관중이 두 눈으로만 대충 봐도 얼추 4만 명은 넘어 보였다. 나중에 경기 끝날 때쯤 장내 아나운서가 42,153명이 입장했다고 알렸다. 그만큼 울산이 많은 이들에게 관심받을 줄이야. 이런 날도 오네.

7시 반, 대망의 울산 현대 대 알 아흘리의 결승전 시작. 휘슬 소리와 함께 동서남북에서는 울산 현대를 응원하는 소리로 가득 찼다. 물론 S석 일부엔 저 멀리 사우디에서 울산까지 원정 온 소수의 알 아흘리 서포터들도 자기 팀 힘내라며 온 힘을 다해 응원했다.


사진=울산 현대

승부의 무게 추는 시작한 지 13분 만에 한쪽으로 쏠렸다. 프리킥 찬스에서 곽태휘가 김승용의 크로스를 헤더로 골망을 갈라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1대 1 균형으로 맞추기 위해서 알 아흘리가 전력을 다해 울산 골문을 두드렸으나, 전방 압박과 탄탄한 수비벽을 넘지 못했다. 게다가 끝없는 파도타기로 기를 보내고 있는 4만 명 이상 관중을 등에 업었으니 알 아흘리가 크게 힘을 쓰질 못했다.

결국 알 아흘리는 후반에 와르르 무너졌다. 후반 22분 하피냐, 후반 29분 김승용이 추가골과 쐐기골을 성공시켜 3대 0으로 격차를 벌렸다. 이들은 각각 말춤과 리마리오 골 셀레브레이션으로 자축했다. 종료되기 5분 전에는 울산이 승리를 확실시할 때 터져 나오는 "잘가세요" 송이 울려 퍼졌다. 일부 구역에선 휴대폰 플래시를 켠 상태에서 같이 흔들기도 했다.


휘슬 종료! 울산이 한 번도 패배하지 않고 아시아 챔피언에 올랐다. 종료와 함께 퀸의 ‘We Are The Champion’ 노래가 문수경기장 전역에 울려 퍼졌다. 울산의 우승을 축하하고자 하얀 꽃가루가 하늘에서 내렸다. 퀸의 노래가 이토록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던가. 문수경기장이 마지막으로 4만 명 관객을 받는 날에 울산 현대가 우승했고, 나를 포함한 처용전사들은 멀찍이 우승 셀레브레이션에 손뼉 치고 축하했다.

사진=울산 현대
사진=나
사진=울산 현대

단상에서 축하 행사를 끝난 뒤, 그들은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면서 함께 우승 기쁨을 나눴고 내가 있었던 N석으로 오기도 했다. 선수들이 오자 서포터들은 홍염을 터뜨리고 경기장 쪽으로 난입하는 등 격하게 환영했다. 내 기억으론 경기 끝나고 우승 축하하고 선수들이 락커룸으로 들어가기까지 1시간 반 이상 소요했었다. 그들이 사라진 뒤, 수도권대리점 사람들 또한 이 순간을 평생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급하게 단체사진을 찍으면서 마무리했다.


결승전이 끝난 뒤에는 잠실에서 함께 출발했던 문수원정대가 두 파로 나뉘었다. 처음 계획대로 타고 온 버스에 올라타 그대로 서울로 돌아가는 팀, 이 우승의 여운을 계속 즐기고 싶어 울산 잔류를 택하는 팀으로 말이다. 후자를 택하면서 울산에 사는 K네 집에 하루 신세 질까도 생각했으나, K의 반대와 즉흥적으로 일을 저지르기엔 일요일에 또 다른 일정이 잡혀 있어 서울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대로 돌아가기 아쉬워하는 이들은 나 이외에도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새벽에 먼 길을 떠나기 전 신복로터리 근처 해장국 집에서 든든하게 한 끼 식사하며 배를 채웠다. 호기롭게 김호곤 동상 공약 내걸었던 울상이야 형은 동상 세우라는 압력을 받기 시작했다. 참고로 동상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9년이 지났으니 이제 결단을 내리고 공식입장을 밝혀 매듭지으시길.


새벽이 돼서야 버스가 종합운동장 부근에 도착했다. 차가 끊긴 시각이라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이 행복한 순간은 생생하게 남았다. 그리고 보내고 싶지 않았다. 이 순간은 두 번 다시 재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매우 잘 알고 있어서다. 다른 사람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클럽월드컵 일본 원정길 준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사정상 함께 갈 수 없었던 나는 무한 스트리밍 재생하듯 이 순간을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혼자 돌려봤다. 2012년 11월 가을밤은 내 인생 가장 뜨거웠고, 뭉클했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