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이 되던 첫 날

by 보나

길고 길었던 고3 수험생의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스무 살이 코앞에 다가온 때였다. 공부를 열심히 했던 수험생은 아니었지만,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학교에 갇혀 잠자코 앉아 있어야 했던 수험생 시절이 수능을 시작으로 끝났지만 여전히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에는 제약이 있었다.


미성년자에게는 금기의 대상이었던 술, 클럽, 19세 미만 관람불가의 영화 등.


고작 2달도 안 되는 시간인데도 그곳들을 출입하기에는 어린 티가 너무 나는 내게 항상 민증을 내놓으라는 사람들의 눈초리에, 내게는 그 두 달이 2년만큼이나 길었고, 거리 곳곳의 연말 분위기에 삼삼오오 모여서 한 잔씩 홀짝이는 어른들의 모습이 내게는 너무나 낭만적으로 느껴졌었다. 그래서 20살이 되는 첫날에는 꼭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한 장면처럼 민증을 당당하게 내 보이며, 클럽에 가기로 친구들과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그 해 12월 31일과 1월 1일 사이에 나는 거리를 활보하며, 어서 빨리 20살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고 신데렐라처럼 12시 종이 '땡' 치자마자 클럽 문지기에게 민증을 내보이며 당당하게 그를 노려보았다. 클럽 문지기는 내게 'Happy new year!'를 외치며 문을 열어주었고, 나는 설레는 가슴을 안고 어두 컴컴한 지하 세계로 입성했다.


지하 세계는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았다. ‘쿵쿵’ 거리는 음악 소리는 음악이라기보다 온몸을 흔들리게 하는 진동장치 같았고, 이따금씩 뿌려대는 하얀 연기는 매 쾌한 냄새를 풍기며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여기저기 펴대는 담배 연기 때문에 목과 눈은 따끔거렸다. 사람들은 스테이지 보다는 스탠드 의자에 앉아 있었고 그중 몇 명만이 스테이지에서 흐느적흐느적 음악에 몸을 맡기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도 사전 정보가 부족해, 인기가 없어서 곧 문을 닫을 예정인 한적한 클럽을 찾아 들어갔던 것 같다.


하지만, 어쨌든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세계였고, 그 세계에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괜스레 뿌듯했다. 뿌듯한 마음에 우리는 들어가자마자 모여서 소리를 지르며 춤을 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곳에서 춤을 추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자, 우리는 서로 눈치를 보며 멀뚱멀뚱 서있게 되었다. 그렇게 어색하게 서 있다가, 어느 누군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야! 재미없다. 그냥 나가자!”


큰 음악 소리 덕분에 그 친구는 입만 벙긋거리는 금붕어 같았고, “뭐라고?”를 외쳐대는 친구의 귀에다 소리를 지른 친구에게 고막이 나간 것 같다고 귀를 막고 고통스러워하는 친구까지.


이 모든 상황이 우스꽝스러워서 나는 그만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내가 웃기 시작하자 다른 친구들도 일제히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우리는 한 동안 배를 잡고, 눈물을 훔치며 실성한 듯이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겼는지, 다들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20살이 된지 이제 2시간밖에 안 지났다. 우리는 이대로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두 번째 계획인 술집으로 향했다. 그동안은 숨어서 심장을 졸이며 들어가야 했던 술집에 당당하게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듯 뿌듯했다.


그렇게 술집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묻지도 않은 민증을 꺼내며,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애가 아님을 과시했다. 하지만 우리는 충분히 마실 수 있는 권리를 가졌음에도 돈이 없어서 취하도록 마시지 못했다. 한잔 한잔에 돈을 계산해가며 마시다 보니, 술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도무지 취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새벽 동이 틀 무렵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와 따뜻한 침대에 몸을 눕히고 잠을 청하려 했지만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하루 종일 추운 길바닥에서 나돌아 다니느라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져 근육이 굳어버린 듯 뻐근했고 머리는 술기운에 몽롱하게 아파왔지만 잠은 들 수 없었다.


어제와 오늘. 참 많은 것들이 변했는데 이상하게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나는 모든 제약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몸이 되었는데, 어쩐지 가슴 한편이 뻥 뚫린 것 같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쳇! 스무살 별거 아니네!


잠을 청하기 전 침대에서 나는 나지막이 한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그날 내가 느꼈던 기분은 허무함었고 아쉬움이었다


어제와 오늘은 달랐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나는 나였고, 이 세상은 여전히 이 세상 그대로였다. 나는 어쩌면 하루 사이에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달라질 것이라 기대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언가 어마어마하고 신비로운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 기대하고 바랬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신비로운 일은 없었고 그렇게 원하던 곳에 가도 기쁘지 않았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보냈으면 이런 아쉬움은 없었을까?
뭔가 특별한 일을 했다면 아쉽지 않았을까?

그날 나는 이불 속에서 한참을 생각했다.


그렇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나는 미성년자를 벗어난 첫 날, 처음으로 그 밤이 지나가는 것이 아쉬웠고, 할 수만 있다면 빠르게 흘러가는 이 시간을 붙잡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