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늦게 퇴근하고 집에 와서 습관처럼 켠 TV에는 MBC 연기대상이 하고 있었다. 연말이면 항상 하는 시상식이고, 시상식 덕분에 딱히 볼 것이 없었던 나는 그냥 별 생각 없이 시청하고 있었다. 드라마를 굉장히 좋아하고 자주 보는 나는 사실 시상식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한 해 동안 방영했던 수많은 드라마들이 각자 느낌과 스토리가 다르고, 사람들의 취향이 다 다른 것일 뿐인데 굳이 연말에 그 한해의 모든 드라마들을 평가해서 단 하나의 드라마만을 뽑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다. 그리고 시상식으로 인해 편성이 밀려 방영하지 않는 드라마들이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지나간 드라마들의 명장면들을 다시 보면서 잊고 있었던 그때의 감성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분이 좋아서 끝까지 보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누가 대상을 받을 것인지, 이런저런 추측과 내기를 하는 것도 소소한 재미가 있다.
그렇게 소소하게 보고 있던 중, 배우 박영규 씨가 우수연기상을 수상하여 수상 소감을 하는데, 그만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배우 박영규 씨는 오래전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다고 한다. 그가 아들을 잃고 수상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작년에도 드라마 ‘정도전’으로 상을 받고 수상소감을 한 적이 있다. 그때도 자신의 아들을 떠올리며, 당시 큰 화제였던 세월호 침몰로 자식을 잃었던 가족들에게 힘내자고 위로한 적이 있다고 기사로 읽은 적이 있다.
박영규 씨는 이번 MBC 연기대상에서 우수연기상을 수상하며, 수상 소감으로 그동안 감사했던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이렇게 좋은 날에 아들 생각이 안 날 수 가 없다면서 하늘에 있는 아들에게 바치는 노래를 불렀다. 수준급의 노래를 담담하고 밝게 웃으며 부르는 그의 모습에 가슴이 아려왔다. 그리고 어느새 내 눈에는 눈물이 맺히고 결국에는 흐르고 말았다.
자식 잃은 슬픔을 과연 어떤 것에 비유할 수 있을까? '부모를 잃으면 땅에 묻고, 자식을 잃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가슴에 묻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물론 나는 자식도 없고 그러니 당연히 자식을 잃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슬픔을 조금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나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은 꽤 있었다. 병을 오래 앓다가 먼저 떠난 사람도 있었고, 사는 것이 힘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있었고,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었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혼자서 지독한 외로움에 몸부림치다 혼자서 생을 마감한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소름이 끼치도록 놀랐던 적도 있었고, 어느 정도 예상을 했기에 죄송하지만 덤덤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항상 그들의 죽음을 실감하는 것은 뒤늦게 찾아왔다. 길을 가다가, TV를 보다가, 하늘을 보다가, 웃으며 지난날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그 사람들의 얼굴은 잠시 동안 나를 멈추게 했다. 그리고 그 얼굴들은 쓸쓸하게 내 마음을 뒤덮었고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내게 죽음이란 그런 것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떠오르고 이제는 만날 수 없다는, 그래서 너무 보고 싶다는 가슴 시린 말을 속삭이게 하는. 그리고 그동안 못 해준 것들, 죄송스러운 것들이 끊임없이 떠올라, 한 없이 가슴을 무너져 내리게 하는.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이란, 아마도 이런 일들이 수천 번, 아니 수만 번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니라, 매 분, 매 초 하루에도 수십 번, 수천 번씩 자식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을까? 그렇게 나 자신을 원망하고 나를 탓하고 할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아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그런 나날들이 계속되고, 잘 살고 있어도, 잘 못 살고 있어도, 이러나, 저러나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 그 슬픔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박영규 씨가 덤덤하게 부르는 노래에는 그런 부모의 슬픔이 담겨 있었다. 그 슬픔을 감히 내가 알 수는 없었지만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아픈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나는 그만 하염없이 울고 말았다.
그리고 박영규 씨가 먼저 간 아들을 떠올리며 노래를 부르는 동안, 나도 나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에도,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내 머릿속 떠오르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다들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