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이 좋은 이유

부모님과 나의 타임머신

by 보나

요즘 어딜 가나 화제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다. 요즘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다들 응답하라 지난 편을 봤는지 묻고, 저마다 감동받은 부분이나, 아련한 부분들을 각자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기 바쁘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처음 1997부터 쭉 봐온 팬으로서, 유독 1988의 인기가 더 뜨거운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부모님이 나보다 더 재미있게 보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오히려 예전 시리즈들보다 조금은 덜 챙겨보는 편인데, 부모님은 한편도 빠짐없이 본방사수를 하는 열혈 팬이다.


엄마는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편성을 한 주 미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시청자에 대한 배신’이라면서 화를 낼 정도로 아쉬워했고, 아빠는 편성이 미뤄진 주말에 채널을 여기저기 돌리며 볼 것이 없다며, 일찍 잠을 청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어쩐지 두 분이 귀엽게 느껴졌다. 어른들의 이렇게 뜨거운 호응을 받는 것은 아마도 드라마를 통해서 본인들의 옛 모습을 떠올리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그들의 중년이라는 나이를 잊어버리고 소년, 소녀로 돌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응답하라 1988이 방영하면서 나에게도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부모님들과 대화가 많아졌다는 것.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과 긴 이야기를 한 적이 언제인지 가물가물 할 정도로 대화가 드물어졌다. 이야기를 하더라도, 주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부모님은 듣다가 끝에는 조언을 하고 그럼 나는 또 그것이 잔소리로 느껴져 감정이 상하게 되는 일이 반복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엄마에게 “엄마, 응답하라 1988 봤어?”라고 한 마디만 하면, 엄마는 갑자기 소녀가 된 듯이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응~ 봤지~ 얘 그거 엄청 재미있더라. 그 덕선이가 울면서 자기만 왜 덕선이냐고 하던 장면 있지? 그거 보는데 엄마 생각이 났어. 예전에 엄마도 밥 먹다가 갑자기 할머니한테 그렇게 울면서 대든 적이 있었어. 그때 당시 할머니가 엄청 엄해서 엄마가 감히 대들지 못했었거든. 근데 그때 엄마 중학교 졸업식에 할머니가 못 온다고 하셔서, 엄마가 울면서 ‘나도 대학 갈 수 있다고!’하면서 밥상머리에서 울고, 불고 난리를 쳤어. 하하하 그때 할머니의 황당한 표정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하하하”


나는 한마디만 했을 뿐인데 엄마는 어린 시절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로 돌아간 듯 해맑은 소녀가 되었다. 그리고 처음 듣는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자주 말을 걸게 되었다.


어느 날은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는 어떤 아들이었어?”


“아빠? 아빠는 정환이 같았지. ‘다녀왔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밖에 할 줄 모르고 집에서는 혼자 방에 박혀서 공부만 하고, 밖에서는 친구들과 신나게 놀러 다니고. 공부도 잘하고 초, 중, 고등학교 내내 반장 하는 아빠를 할머니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할머니가 학교 친구 엄마들이랑 매일을 만나서 놀러 다니고 그랬어. 그 당시 아빠네 집이 엄청 잘 살아서, 아빠도 정환이처럼 친구들에게 많이 사주기도 하고 그랬지. 그리고 저렇게 자주 친구네서 옹기종기 모여서 자기도 하고 그랬어.”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하는 아빠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그리고 이내 지금은 안 계신 할머니가 생각나는 듯 조용히 쓴 술잔을 들이켰다.


그렇게 부모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그때를 같이 떠올려 보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응답하라 1988> 그곳에는 어린 시절의 내 모습도 있었다.


덕선이가 고3이 되었을 때, 희망 대학을 적어내야 하는데 짝꿍에게 물어본다. “너는 꿈이 뭐야?” 이에 짝은 “거기 그런 거 적는 거 아니야. 희망 대학 적는 거야.”라고 말한다. 그리고 덕선이는 나직 막이 “나도 알아.”라고 말한다.


그 장면에서 나는 고3 시절 내가 떠올랐다. 나도 희망 대학을 적는 종이를 받았을 때, 덕선이 같이 꿈에 대해서 고민했다. 성적도 별로였지만, 꿈도 없었기 때문에 꿈이 없는데 어떻게 대학을 정하고 과를 정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끙끙대며 종이와 시름하다, 선생님의 재촉에 결국 그냥 아무 대학이나 적어낸 기억이 있다. 그리고 여전히 혼자서 고민했다. 그 당시 나는 우습게도 꿈을 정하는 것이 공부보다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누구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될지 고민했었다.


하지만 별 소득은 없었고, 결국 꿈을 찾지 못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담임선생님께 꿈이 없어서 대학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 내 말은 묵살되었고, 그냥 담임선생님이 넣어준 대학에서 합격통보를 받았고, 입학했다.


이렇듯 <응답하라 1988>은 부모님만의 타임머신인 줄 알았는데, 나에게도 타임머신이었다. 그때의 나를 떠올릴 수 있는. 그래서 웃음이 나기도 하고, 잘 견뎌내었다고 위로해주고 싶기도 한. 혼란스럽고 힘들었고 그래서 빛났던 내 어린 시절 그리고 부모님의 어린 시절을 만나게 해 준 타임머신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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