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흔적을 담은
꽃이 싱싱할 때 뿜어 나오는 빛깔과 향기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꽃을 보며 행복과 사랑을 연상하곤 한다. 그래서 꽃은 특별한 날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입학식이나 졸업식에서도,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에도, 사랑의 결실을 맺는 순간에서도 신부의 손에는 늘 예쁜 꽃이 쥐어져 있다. 꽃은 누구에게나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최고의 선물이다. 작은 꽃으로 누군가에게 행복과 축복의 기억을 떠올리게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물론 슬픈 날에도 꽃은 존재한다. 예를 들면, 누군가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우리는 흰 꽃을 준비해서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상실을 맞은 누군가를 위로한다. 이렇게 꽃은 기쁜 날에는 기쁨을 더해주고 슬픈 날에는 슬픔을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꽃이 시드는 것만은 슬퍼한다. 생기롭고 아름다운 꽃이 시들어버리면 마치 나의 아름다운 추억도 같이 시들어 없어지는 것 같아 아쉽다. 그리고 더 이상 아름다움이 묻어있지 않은 시든 꽃을 외면해 버리기도 한다. 우리는 싱싱한 꽃을 조금이라도 오랫동안 바라보고 싶어서 꽃병에 꽃아 두거나, 벽에 걸어두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버리게 되는 날이 기어코 온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다. 싱그럽고 아름다운 청춘은 기어코 지나가기 마련이고, 언젠가는 시든 꽃처럼 한쪽 구석에 방치되었다가 결국은 버려지는 신세가 된다.
오랜만에 엄마와 맞은 명절의 저녁시간, 엄마는 갑자기 생각난 듯 내게 흰머리를 뽑아달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자주 해드렸던 일을 요즘은 바쁘다는 핑계로 잘 못해드렸다. 벌써 머리가 하얗게 새 버려 염색을 하지 않으면 백발인 아빠와는 달리, 그래도 엄마는 아직 다행히도 몇 가닥 뽑기만 하면 염색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주기적으로 늘어나는 흰머리를 뽑아 줘야 하지만.
엄마의 머리 곳곳을 뒤집으며 숨어있는 흰머리를 찾아내어 냉정하게 '확' 뽑아 버리는 작업을 꽤 오랫동안 하다 보니, 이제는 흰 머리카락인지, 불빛에 반사된 검은 머리카락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엄마의 늘어난 흰 머리카락처럼 어여쁘던 엄마의 얼굴에도 이제 세월의 흔적이 많이 묻어 있었다.
학창 시절 엄마가 학교에 나타나기만 하면 여기저기서 감탄의 목소리로 “너희 엄마 진짜 예쁘시다~”라고 하는 말이 기분이 좋아, 틈만 나면 엄마에게 학교에 오라고 조르곤 했다. 아빠가 첫눈에 반해 고백하고, 집에 인사시키러 엄마를 데려가던 날, 아빠의 형제들 모두 깜짝 놀랄 정도로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었던 우리 엄마.
지금은 늘어난 흰머리를 내게 맡기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엄마의 작은 뒷모습에 가슴이 찡했다. 시간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는데, 어쩐지 부모님의 시간은 자꾸만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아 야속하기만 하다.
며칠이 지난 오늘, 카페에 들렀다가 벽에 걸려 있는 시든 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반해버렸다.
밝고 선명한 원색은 이제 잃어버렸지만, 톤 다운된 갈색 빛이 부드럽고 우아했다. 그 꽃은 시간의 흐름을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온몸을 다해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안타까움과 슬픔이 아닌, 나 지금도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 나는 원색이 표현하지 못하는 시간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청춘은 누구나 갈망하고 돌아가고 싶은 아름다운 순간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렇기에 혼란스럽고 어리숙한 청춘. 또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고 순수하게 여겨지는 청춘. 하지만 시간을 겪으며 쌓이고 쌓인 경험은 깊이를 남긴다. 더 이상 겉모습으로 사람들을 매혹하진 않지만 자신만의 깊이감으로 사람을 편안하고 부드럽게 매혹하는 것은 시간을 겪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시간의 흔적을 담은 시든 꽃 한 송이가 내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색은 어느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색이야.
오직 시간 만이 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