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토록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넌 좀 이상해.
너 좀 사차원이야.
어린 시절 준영이 제일 좋아했던 말이다. 남들에게는 욕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준영에게 이런 말은 남들과 ‘다르다’로 들렸다.
준영은 평범한 자신이 싫었다. 남들과 똑같이 교복을 입고, 남들과 똑같이 학교에 가고 남들과 똑같이 학원에 다니는. 남들과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는 자신이 싫었다.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자신은 남들과 이렇게 똑같은 모습인지 불만이었다.
그래서 준영은 특별하게 예쁘거나 특별하게 못생기지도 않은 자신의 외모를 싫어했고,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자신의 이름도 싫어했다. 그리 평범한 이름은 아니라지만, 한 학년에 한 명씩은 꼭 동명이인이 있었다. 그것도 항상 남자아이였다.
준영의 이름은 준영이 태어나고 나서, 친할머니께서 지어주신 이름이었다. 높을 준, 성할 영으로 높게 성하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었다. 왜 여자아이에게 높고 성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지, 좀 더 예쁘고 특별한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는지 따져 물어본 적이 있었지만, 늘 돌아오는 대답은 ‘그 이름이 너에게 좋데.’라는 말 뿐이었다. 도대체 누가 좋다고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사주팔자를 잘 믿는 할머니께서 작명소나 철학관에 찾아가서 큰 돈을 들여 지은 이름일 것이다.
준영의 생년월일이 적힌 종이를 들고 가서 꾸깃꾸깃 내밀며 가장 좋은 이름을 지어달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르자, 어쩐지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준영은 자신의 이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자신의 이름이 그리 평범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대부분 남자 이름으로 사용하는 이름을 여자 이름으로 쓰고 있으니, 그것 또한 특별한 것 아닌가.
그렇게 준영은 조금씩 자신의 모습들 중 특별한 것을 찾았고, 특별한 것이 없다면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준영에게 특별하다는 것은 개성이었다. 누군가가 준영을 떠올렸을 때, 준영을 쉽게 묘사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이왕이면 그 묘사가 준영만의 것이었으면 했다. 그래서 준영은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습관, 좋아하는 것, 말투, 생각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찾았다. 찾을 수 없을 땐 만들었다.
늘 같은 장소를 찾아가서 자신만의 아지트 같은 단골집을 만들었고, 늘 같은 메뉴를 시켜, 누구나 “너 오늘도 그거 먹을 거지?”라는 말을 하게끔 했다. 그렇게 자신만의 습관과 취향을 만들었다. 이런 습관과 취향들이 모이고 시간이 흘러, 이런저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면 준영 자신만의 개성이 생길 것이라 생각했다.
준영의 이런 부단한 노력 끝에 준영은 주변 사람들에게 특이하다, 이상하다, 사차원 같다는 말을 많이 듣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자신이 다른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아, 한 동안은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십 대 후반, 작지만 나름 안정적인 회사를 다닌 지 벌써 3년이 된 준영은 이제 더 이상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회사에서 특별하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한 번은 준영이 입사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좋은 성과를 낸 적이 있었다. 그 성과는 자신이 뛰어나서가 아니라는 것을 준영도 알고 있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신입이 실력이 있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단지, 운이 좋았고, 자신이 그 운속에 끼어 있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물론 그 일에 대해 우쭐하거나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준영이 어떤 실수를 하게 되었을 때, 상사는 말했다. 네가 잘나고, 특출 나서 그런 성과가 난 것인 줄 아느냐고, 착각하지 말라고.
준영은 억울했다. 처음에는 그 상사가 미웠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상사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라는 곳이 원래 그런 곳이었다. 나보다 잘난 사람은 질투하고 남보다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경쟁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런 곳에서는 남보다 특별하게 잘해도, 남보다 특별하게 못해도 욕을 먹는다.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중간만 하면 욕먹을 일도 없고 무난하게 회사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준영은 자신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남의 일에 끼지도 않았다.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때부터 자신이 그 일과 연관이 있게 되었고, 언제고 그 일에 대해 말을 할 때 준영의 이름이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준영은 입과 귀를 닫고 살았다. 그렇게 준영은 주변의 것들에 점점 무관심해졌다. 그리고 이렇게 무관심하게, 무난하게 사람들 틈에 섞여서 사는 것도 나름 피곤하지 않고 좋다고 생각했다.
준영은 이제 눈에 띄지 않고 평범하게, 쉬는 날 집에서 드라마를 보고, 뒹굴 뒹굴 누워서 책도 읽고, 친구들을 만나서 술 한잔 하면서, 그리고 때때로 여행도 다니면서 그냥 그렇게 살고 싶었다.
그렇게 평범하고 무난한 삶에 익숙해질 때쯤, 준영은 오래된 상자에서 예전에 쓰던 일기장을 발견했다. 준영은 옛날 생각이 나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시 일기장을 들여다보았다. 키득키득 웃으며 한 장 한 장 넘기던 준영은 다짐하듯 꾹꾹 눌러쓴 글귀를 발견했다.
기왕 평범하지 않은 인생, 특별하게 살자!
그 시절 준영은 남들과는 조금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 부모님이 이혼하고 편부모 가정도 아닌, 준영은 시골의 외삼촌 집에 맡겨졌다. 사람들은 늘 준영에게 물어봤다.
왜 너희 부모님은 너와 같이 살지 않느냐고, 왜 너는 외삼촌 집에 사는 것이냐고, 왜 너는 서울말을 쓰면서 시골에 살고 있느냐고. 어린 준영에게 그런 말은 상처가 되었다. 그리고 준영 자신도 왜 자신이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지 않은지 몰랐다. 아니, 사실은 알고 싶지 않았다. 그 이유가 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 일까 봐.
이왕 남들과 다르다면, 특별해지자고. 그리고 자신의 이름처럼 높고 성하게 잘 살자고. 준영은 일기장 곳곳에 이런 글귀들을 꾹꾹 눌러쓰며 다짐하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자신이 남들과는 다른 점을 집요하게 찾아 헤맨 이유가 어쩌면 그토록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눈물이 쏟아졌다.
준영은 이불속에서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 시절 준영이 혼자 어두컴컴한 방에서 손가락에 힘주며 꾹꾹 눌러 썼던 일기장이 함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