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너만 그런 거 아니야.
쌤, 있잖아요, 왜 사람들은 항상 꿈이 뭔지 물어볼까요? 학생이라 하면, 교복을 입고 있으면, 사람들은 공부는 잘 하는지 다음엔 항상 꿈이 뭔지 물어봐요.
그런데요, 저는 꿈이 없어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어요. 앞으로 제가 뭘 하고 살지,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 아무것도 모르겠단 말이에요.
제가 이런 말을 하면요, 사람들은 다 이상하게 쳐다봐요. 마치 세상에서 처음 보는 외계인을 본 것처럼, 동그란 눈이 되어 물어요. 이렇게 어린데, 이렇게나 많은 가능성이 있는데, 왜 하고 싶은 것이 없냐고, 왜 꿈이 없냐고요.
친구들을 보면요. 다 꿈이 있어요. 저랑 제일 친한 미영이는요, 선생님이 꿈이래요. 제 앞에 앉은 수진이는요, 스튜어디스가 꿈이고요, 우리 반 꼴통 민혁이는요, 영화감독이 꿈이에요. 심지어 우리 반 꼴찌인 강민수도 요리사가 꿈이라는데, 저만 꿈이 없어요.
저는 왜 그럴까요? 쌤, 있잖아요. 꿈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다들 활기차 보여요. 다들 자신의 꿈을 향해 바쁘게 움직이며 달려가고 있어요. 그렇게 바쁘게, 힘차게 달려가는 사람들 속에 저 혼자만 덩그러니 혼자 서 있는 것 같아요. 저만 어디로 갈지 몰라서 가만히, 멍하니 서 있는 것 같아요.
정말이지, 저는 구제 불능인가 봐요. 왜 저는 하고 싶은 것도, 잘하는 것도, 되고 싶은 사람도 없는 걸까요? 정말 꿈이 없으면 안 되는 걸까요? 저는 앞으로 뭘 하며 살아야 할까요? 미래에 대해 생각만 하면, 머리 속이 하얘져요. 아무것도 떠오르지도 않고요, 그냥 하얘져요.
도무지 모르겠어요. 저는 어떤 사람이 될지, 어떻게 살아갈지요. 저는 뒤쳐진 아이인가 봐요. 쌤. 그래서 요즘 저 너무 우울해요.
있잖아, 나도 그랬어. 나도 너만 할 때 너처럼 꿈이 없었어. 아니, 꿈이 너무 많았다고 해야 하나?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여기저기 관심이 많았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고 싶은 게 바뀌곤 했어.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가 있으면, 그 드라마 속 주인공이 좋으면, 그 주인공의 직업을 갖고 싶었지. 그러다가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 빠지면 또 그 드라마 속 주인공의 직업을 가진 나를 상상하곤 했어.
그렇게 수도 없이 꿈이 바뀌면서도 나는 공허했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도통 모르겠더라고. 그 당시에는 그게 좋고 하고 싶은 줄 알았는데, 몇 달만 지나면 금세 싫증이 나버리니까. 그 당시 나는 그런 내가 너무 싫었어.
다른 애들은 지들이 정한 꿈과 계획대로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이거 했다, 저거 했다 줏대 없이 시간만 낭비하는 철부지 어린애 같았거든. 나도 너처럼 우울했어. 그렇게 그냥저냥 공부해서 대학을 갔는데, 대학에 입학하던 날 아빠가 그랬어.
대학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찾는 곳이라고. 그것만 찾는다면 성공한 대학 생활일 것이라고.
그리고 아빠는 못했지만, 나 보고는 꼭 해내라고 덧붙였어.
그 말은 아빠도 꿈이 없었다는 말이었어. 안 그래? 꿈이 있었다면, 대학에서 꿈을 찾을 필요가 없잖아. 그리고 그것을 찾는 것이 성공한 대학생활이라 말할 필요도 없잖아.
또 예전에는 친했던 한 친구가 그랬어. 어릴 적 장래희망을 써내는 숙제를 받았는데, 뭘 써야 될지 모르겠더래. 그래서 옆 친구에게 물었더니, 그 친구는 당당하게 과학자가 꿈이라고 했데. 그래서 자기도 그 종이에다가 과학자라고 크게 써냈다는 거야. 심지어 걔는 과학 점수가 반 꼴찌였는데 말이야.
그 이야기들을 듣고, 나는 조금 위로가 됐어.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나만 꿈이 없는 것이 아니구나. 어쩌면 그때 꿈이 있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잘 모르지만, 그냥 질문이 귀찮아서 아니면 남들 눈이 신경 쓰여서 지어냈을 수도 있겠구나.
그러니, 있잖아, 너만 그런 거 아니야. 그리고 꿈이 있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꿈이 없다고 불행한 것도 아니야. 어쩌면 어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고 죽을 수도 있어.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그 삶이 안타까운 삶이라 할 수도 없는 거야.
진짜 하고 싶은 것이 없어도, 그냥 이렇게 하루하루 자신에게 주어진 날들을 성실히, 감사하게 살아가는 것도 행복한 삶이지 않을까? 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이 될 수도 있는 거고. 꿈이라는 것은 직업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고 싶다는 것이니까. 그리고 행복이라는 것도 주관적인 것이니까.
눈을 감고 상상해봐. 네가 정말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삶은 어떤 것인지.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아이들과 사랑하는 집에서 알콩달콩 사는 것? 아니면 혼자서 전망 좋은 집에서 살면서 책도 보고 밤에는 와인도 한잔 하면서 여유롭게 사는 것? 그것도 아니면, 전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며 다양한 문화, 사람들을 만나고 체험하며 자유롭게 사는 것?
어떤 삶을 상상했을 때, 너의 가슴이 뛰는지, 아니면 행복하고 부드러운 기운이 온몸을 감싸 안는지, 잘 느껴봐. 그게 바로 네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네가 살고 싶은 삶이고 너의 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