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커피와 따뜻한 마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전 보다 춥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커피 때문이었을까

by 보나

얼마 전 날씨가 좀 풀린 것 같아, 오랜만에 옷장 속 묵혀 있던 빨간색 얇은 코트를 꺼내 입었다. 아무 약속 없이 출근하는 날이었지만, 벌써 봄이 왔다는 설렘 때문인지, 산뜻한 컬러의 옷을 입고 한 껏 멋을 내어 온 몸으로 봄을 맞이하고 싶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 밖으로 나온 순간, 얼굴에 부딪히는 차가운 바람에 깜짝 놀랐다. 섣부르게 내 마음대로 벌써 봄이 왔다고 단정한 것을 혼내기라도 하는 듯 바람은 더 세차게 불었고, 차가운 공기는 얇은 코트를 뚫고 들어와 살을 에는 것 같았다.


시간을 보니, 멋 부린다고 평소보다 준비 시간이 늦어진 터라, 다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없었다.


‘어차피 하루 종일 회사에 있을 텐데, 뭐.’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얼른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퇴근할 때의 공기는 아침의 공기보다 더 차가워져 있었다. 빠른 발걸음으로 지나치는 사람들의 옷은 두꺼웠고, 따뜻해 보였다. 나는 왜 그들처럼 흔한 일기예보 하나 확인하지 않고 마음대로 얇은 옷을 입고 나왔는지,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그렇게 한참을 온몸을 움츠리고 걷다 보니 어깨와 뒷목이 뻣뻣하게 굳어버린 것 같았다. 버스로 환승하는 길은 평소보다 더 멀게 느껴졌고, 도저히 이렇게 가다가는 감기에 걸릴 것 같아, 따뜻한 커피로 몸을 녹이고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근처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따뜻한 커피 잔에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손을 맡기고 따뜻한 커피 향을 목으로 넘기면서 몸을 녹이고 있을 때쯤, 중년의 남성이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터벅터벅 큰 발걸음으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카운터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커피와는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로 주문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 이상해서 자꾸만 시선이 갔다.


카운터에서 웃으며 그를 쳐다보고 있던 젊은 여자는 그에게 따뜻한 차를 내주었다.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차를 내주는 모습에 호기심이 생겨, 조심조심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대화로 보아 그는 카운터 속 여자의 아버지였다.


다정한 딸의 눈빛과 말투에도 웃음 한번 보이지 않는 무뚝뚝한 아버지. 늦은 밤 혼자 걸어 올 딸이 걱정되어 카페 알바 따위 하지 말라고 말했을 아버지. 그래도 기어이 하겠다는 딸이 안쓰러워 고단한 몸을 작은 카페 의자에 맡기고 꾸벅꾸벅 졸며 기다리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안쓰러워 자꾸만 집에 먼저 들어가시라고 말하는 딸. 그리 멀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은 길 혼자서 가도 위험하지 않다고 안심시키는 딸. 하루 종일 밖에서 치이며 긴 하루를 보냈을 아버지에게 어서 빨리 따뜻한 집에 들어가서 몸 좀 녹이고 있으라고 하는 딸.


아버지는 괜찮다고 하며 한사코 엉덩이를 뗄 줄 모르고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자꾸만 감기는 눈꺼풀에 자꾸만 떨어지는 고개에 아버지는 손뼉을 치고 기지개를 켜며 쏟아지는 잠과 싸움 했다. 그리고는 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손님이 떠난 자리를 손수 치우는 아버지에게 딸은 손을 흔들며 자신이 하겠다며 아버지의 팔을 끌었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차가운 몸은 어느새 따뜻하게 녹았고,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 내가 자리를 비워줘야 그 둘이 조금이나마 빨리 따뜻한 집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서둘러 카페를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전 보다 춥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따뜻한 커피 때문이었을까, 서로를 걱정하는 그들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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