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슬픔을 담고 있는 이 노래가 이상하게도 나를 위로하는 기분이 든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 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딜 갔느냐
이 노래를 처음 부를 땐 그냥 멜로디가 좋아서였다. 두 번째 부를 땐 가사가 좋아서였고, 세 번째 부를 땐 슬퍼서였다.
이 노래는 어릴 적 엄마가 자장가로 불러줘서 처음 알게 되었다. 가수가 꿈이었던 엄마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포근하게 감싸 안는 엄마의 품이 너무 따뜻해, 가사보다는 멜로디에 취해 이 노래를 들었다. 그러다가 엄마가 없는 밤에 혼자 잠이 들 때면, 나는 스스로 이 노래를 불렀다.
혼자서 기억을 더듬어 노래를 부를 때, 나는 어느 노인들만 가득한 시골 섬 마을에 젊은 딸이 도시로 나가 살겠다며, 짐을 싸들고 마을을 떠나고, 마을에 남은 늙은 노인은 이제나 저제나 딸이 언제나 돌아올지 몰라, 항구에 서서 먼 바다만 바라보고 있는 정도의 쓸쓸함만을 떠올렸었다.
철 모르는 딸은 섬 밖으로 나간 후에 행복했을까? 그녀는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외롭고 쓸쓸한 회색빛 도시에서 혼자 이를 악물며 살아가고 있을까? 아버지가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철 모르는 딸은 언제쯤 알게 될까?
어릴 적 나는 이 노래를 부르며 철없는 딸의 철부지 가출 같은 그런 상황 정도로 이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용한 밤에 혼자 하늘을 보며 노래를 부르던 중, 문득 떠올랐다.
철없는 딸은 영영 하늘로 떠난 거였어!
철부지 가출 같은 것이 아니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거라고!
갑자기 별 하나 없는 깜깜한 하늘을 보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번 그런 생각이 들자, 더 없이 쓸쓸하고 서글픈 감정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아마도 그때쯤이 죽음에 대해 처음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었을까? 남아있는 사람의 상실감을 처음으로 느끼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동안 내게 죽음이란, 그저 숨을 거두는 것에 대한 슬픔, 다시는 이 생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아쉬움 정도였다. 그러니까, 숨을 거두는 사람에 초점이 맞춰있었다. 하지만 그 깜깜한 밤에 내가 느낀 죽음은, 가는 자의 안타까움이 아닌, 남아있는 자의 상실감이었다.
상실. 영영 어딜 갔느냐고 울부짖는 아버지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또렷이 그려지는 것은 분명 상실이었다.
나는 지금도 이 노래를 종종 부르곤 한다. 세상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느껴질 때, 이 어두운 밤 나 홀로 서있다고 느껴질 때, 하늘이 너무 높고 멀리 있다고 느껴질 때, 그런 날이면 나는 이 노래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 노래를 부를 때면, 짧지만 강렬한 슬픔을 담고 있는 노래가 이상하게도 나를 위로하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