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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 Apr 12. 2016

늦은 후회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은 대체로 되돌릴 수가 없어

언니, 글쎄 그놈이 말이야, 어제 내가 그렇게 전화를 했는데도, 한 통도 받질 않는 거야.

거의 백통은 했을 걸? 근데도 전화를 안 받는 거 있지? 그래서 지금 이렇게 끝내려는 거냐고 문자를 남겼어.


그러니까, 전화가 오더라? 그러더니 그냥 헤어지자는 거야. 그래서 이렇게 막무가내로 전화 한 통도 받지 않다가 문자 한 통에 달랑 전화 와서 하는 말이 그냥 헤어지자는 거냐고 따져 물었어. 그랬더니, 그놈이 ‘그래’라고 딱 한마디 하는 거 있지?


그냥 ‘그래’라고 말이야. 어떻게 그동안 사귄 정이 있는데 그 끝이 그냥 ‘그래’ 일 수가 있어?

그래서 이렇게 매너 없이 헤어지는 게 어디 있냐고 물었어. 그러니까 갑자기 다짜고짜 화를 내면서 내가 여태까지 한 짓이 더 매너 없데.


사실 그동안 나도 그놈 연락 안 받고 놀았던 적 많거든. 그렇지만 나는 헤어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 그냥 친구들이랑 노는데 귀찮으니까, 잠깐 전화를 안 받고 그랬던 거지. 근데 그놈은 그게 그렇게 싫었나 봐.


그런데 언니 있잖아, 그놈이 이제 지쳤다는 듯이 헤어지자고 하는데 마음이 아팠어. 솔직히 나는 그동안 그놈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거든. 그냥 혼자 있으면 외롭고, 심심하고, 그런데 그놈은 내가 좋다고 하고. 그러니까 그냥 만났었어. 잘해주기도 하고 나한테 맞춰주려고 하는 것 같아서.


언니, 그래서 지금 내가 벌 받는 걸까?


그놈 입에서 헤어지자는 말이 나오는데 갑자기 마음이 너무 아프고 심장이 쿵쿵 뛰는 거야. 왜 그런 거 있잖아, 엄마랑 싸우고 방문을 '쾅' 닫고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소리가 크게 났을 때 같은 무서운 기분. 또 학교 땡땡이치고 친구랑 신나게 놀다가 집에 들어갔는데, 엄마가 무서운 얼굴로 어디 갔다 왔냐고 물어볼 때의 그 심장 떨림 같은 거 말이야.


그놈 입에서 '그래'라는 말이 나오는데 갑자기 심장이 그때처럼 쿵쿵 뛰는 거야. 너무 무서웠어. 정말로 떠나 버릴까 봐.


그래서 용기를 내서 다시 물었어. 정말로 나랑 헤어지고 싶은 거냐고. 그랬더니 그놈이 "넌 왜 자꾸 똑같은 걸 물어 짜증 나게!"하고는, 툭 끊어버리는 거야. 끊어진 전화기를 보면서 얼마나 한참을 멍하니 있었는지 모르겠어.


언니, 정말로 그놈이랑 이렇게 끝인 걸까? 이제야 내 심장이 뛰게 되었다는 걸 그놈한테 말하면 다시 돌아올까?      






너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보보의 <늦은 후회>라는 곡이 떠오르네. 그 곡도 너처럼 옆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모르고 방치해 두었다가 나중에야 자신이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후회하는 이야기야.


사실 우리는 참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아가는 지도 모르겠어. ‘옆에 있을 때 잘해라’는 교훈은 잊고 엄마에게 짜증을 내는 것처럼, 언젠가는 갈 수 있겠지 하며 꼭 가고 싶은 곳으로의 여행을 미루는 것처럼, 다음에 시간 나면 벚꽃 보러 가야지, 미루다가 꽃이 지고 나서 후회하는 것처럼 말이야.


우리가 ‘다음에 해야지’하면서 미루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나는 사랑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주는 사랑을 모른척하고 미뤄둔다면, 언젠가 그 사랑이 지고 난 다음에 후회하게 될 거야. 원래 가장 가까운 것들은 소중한 줄 모르게 돼있어. 그리고 그렇게 당연한 듯 생각하던 것들이 없어지면 더욱 아프게 느껴지는 법이기도 하고.  


네가 그동안 그놈에게 미뤄두었던 마음이 그놈이 떠난다고 하니까 절실히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이야.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은 대체로 되돌릴 수가 없어. 그래서 늘 큰 후회와 미련을 남기지. 하지만 지금 다시 네 심장이 뛰게 되었다는 것 정도는 그놈에게 말해주는 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


그 말을 해서 그놈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건 아니지만, 혼자서 그 긴 시간을 짝사랑만 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그동안 그 마음을 모른척해서 많이 미안했고 고맙다는 것을 알려준다면 적어도 그놈에게 조금의 위안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만약 아직 그놈에게 너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있다면, 혹시 모르잖아, 다시 잘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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