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중학교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학창 시절에는 매일같이 웃고 떠들었던 둘도 없는 친구였는데, 서로 먹고살기 바빠서 못 본 지 벌써 2년이나 되었다.
퇴근하는 길, 무심코 누른 휴대폰 전원 버튼에 밝혀진 액정에는 시간과 날짜가 쓰여 있었다. 시간 밑에 작게 쓰여 있는 날짜를 보는데 문득 그 친구가 생각났다. 정확히는 그 친구의 생일이 이틀이나 지났다는 생각이 번쩍 뇌리를 스쳤다.
어제도, 그제도, 오늘 아침에도 그리고 점심에도 수도 없이 전원 버튼을 누르고 시간을 봤는데, 왜 이제야 갑자기 그 친구의 생일이 생각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이 난 이상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전화번호부를 뒤져 찾아낸 친구의 연락처로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길게 신호가 가고 수화기 반대편에서 친구가 대답했다. 애교스럽게 내 이름을 부르는 친구의 목소리에 그만 웃음이 터져 버렸다.
2년이나 얼굴도 못 보고, 1년 동안 연락도 못했던 친구인데, 마치 어제 통화한 친구처럼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떠들었다.
요즘 괜찮냐는 친구의 물음에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아니, 나는 아직 안 괜찮아.
친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제 좀 괜찮아지면 안 되겠니?
친구의 아나운서 같은 말투에 나는 한참을 웃다가 말했다.
-그러게, 어쩜 이렇게 나아지는 것이 조금도 없을까? 어쩜 이렇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인지 모르겠어.
친구는 같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조금씩은 괜찮아지고 있는 걸 거야. 네가 잘 못 느끼는 것일 뿐.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을 거야. 네 인생도 그리고 내 인생도.
-글쎄 그랬으면 좋겠어, 정말로. 아주 조금씩은 내가 모르게 아주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고 있었으면.
그 후로도 우리는 한 참을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다가 다음을 기약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는 깜깜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친구야, 우리 잘 하고 있는 걸 거야.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걸 거야.
눈에 보이진 않지만 저기 어딘가에 있는 별처럼, 우리는 느끼지 못하지만 항상 움직이고 있는 지구처럼, 가만히 잠자코 있는 것 같지만 때가 되면 꽃을 피워내고 열매를 맺기도 하는 나무처럼, 내 인생도 지금 당장 눈으로 확인할 순 없지만 자라고 있다고.
그렇게 아주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다고. 그리고 그렇게 믿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