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티도 안나는 집안일은 집어 쳐
육아를 하고 나서 나에게 새로 생긴 시간대가 있다.
멍청한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그냥 째깍째깍 시간이 가는 것만 봐도 되는 그런 시간.
그때는 '하루 끝 위로가 되는 음악'조차도 필요 없다.
음마! 음마! 으앙! 으앵! 우애애앵!! 아아 악악!!!!!
아이의 목소리를 하루 종일 BGM으로 듣다가,
아이가 잠든 시간, 가만히 소파에 앉아있으면
공기 중에도 소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물속에 잠긴 듯 한 느낌마저도 든다.
멍하게 깊은 물속으로 빨려 들 것 같은 순간,
한편에서 째깍째깍 시계 초침 소리가 그 정적을 깨고 들려오기 시작한다.
아. 드디어 내 시간이구나.
아이가 밤잠 루틴이 생기고 처음으로 몇 시간 정도 내 시간이 생겼을 때,
나는 집안일을 했다. 쌓여있는 설거지, 모아 둔 빨래, 혹은 집 청소.
게으른 주부가 그래도 본분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시간이 나면 움직여보려고 했다.
그러나 잠귀가 굉장히 예민했던 나의 아기는 조금만 부스럭 소리가 나도 방에서 이 엥! 하고 반응했다.
그럼 나는 하던 걸 멈추고 아이 방으로 홀린 듯 쏜살같이 빨려 들어갔다.
겨우 달래서 재우고 나오면, 집안일할 맛이 뚝 떨어진다.
그냥 조용히 있자... 잠이나 자야겠다.
하고 누우면 신기하게도 아이를 재우기 직전까지도 무거운 피로에 눌려 떡가래처럼 늘어지던 눈꺼풀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이대로 이렇게 자는 건 아무래도 억울했기 때문에. 짹 각거리는 시계 초침만 쳐다보고 있다 한들 그렇게라도 내 시간의 흔적을 확인할 수 만 있다면 나는 멍청하게 앉아 있는 시간을 좀 가져야 했다, 오늘이 다 끝나기 전에.
나 대신 행복하고 있는 팔로우들의 사진에도 하트도 눌러보고, 맞지도 않을 사고 싶은 예쁜 옷들을 머릿속으로 입어보고, 날씬한 언니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눈으로 따라 해보기도 했다.
미쳐 결제를 누르지 못하고 담아만 두어야 했던 꽉 찬 장바구니를 결제하기 버튼으로 빠르게 비워갈 때의 그 쾌감. 어떤 때보다도 훌륭한 통찰력이 돋보였던 아주 좋았던 소비였다.
그렇게 네모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해소가 될 때쯤 나는 가만히 누워서 눈을 끔뻑여본다.
가만히 누워 천정만 바라보는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무념무상이라고 하지.
몸도 쉴 시간이 필요하지만 머리가, 생각이 멈추는 시간이 간절했다.
고요했다. 황홀했고 사치스러울 정도로 의미 있는 시간이다.
그렇게
생각에 빈틈이 생기니 다시 생기가 돌았다. 복잡하게 뒤엉켜있던 오늘을 정리했고, 이미 문 앞까지 찾아온 내일을 맞을 준비를 했다.
인생에 가끔은 일시정지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인생이 아니라 오늘 하루 안에서도 잠깐의 일시정지는 필요하다. 오늘 잠시도 일시 정지할 수 없다면, 아마 인생 동안 브레이크 밟는 법을 깨우치지 못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