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태어나다.
나는 나의 임신을 빨리 알았다.
생리하기 전 늘 있던 허리 통증이 2주간 지속되었다.
생리가 불규칙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의 촉이라는 것이 정말 무서웠다.
이번엔 그저 생리 시작을 알리는 통증이 아닌 듯했다.
'어디 아픈 건가...'
19년 1월. 나는 방콕으로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여행을 가기 위해 회사에 애뉴얼 리브 신청서를 제출 하기 직전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제출하러 가다 말고 방향을 틀어 약국으로 가 임신테스트기를 사 왔다. 그대로 화장실로 가서 허겁지겁 테스틀 마치고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선명한 두 줄.
가시지 않던 허리 통증의 결과는 포지티브였다.
같이 여행을 준비하던 친한 언니에게 말없이 사진부터 보냈다.
"빼박이야! 축하해!!!"
라는 답장이 돌아왔다.
이미 엄마가 되어있던 그 언니는 포지티브 사인을 바로 알아보았고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나는 우리 여행은 어떡하냐며 아쉬움이 가득한 답장을 했다. 내 임신의 첫 소감은 여행을 못 가게 되었다는 아쉬움이었다. 아쉬움도 잠시 이 빅뉴스를 그날 하루 종일 남편에게 비밀로 하느라 입이 근질거렸다.
일이 끝나고 저녁에 집에 가서 몰래 서프라이즈를 하려고 계획을 세웠다.
물병에 두 줄이 선명한 테스트기를 스티커로 붙여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레코딩 중인 카메라도 함께.
저녁을 먹다가 물을 꺼내려 냉장고를 여는 순간, 그는 분명 발견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놀라운 표정도 카메라에 찍히겠지. 하며 밥 먹는 내내 속으로 히죽 거렸지만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물만 컵에 따르고 그는 다시 물병을 아무렇지 않게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이렇게나 둔할 수가!
결국 나는 내입으로 나의 임신을 실토했다.
나 임신했어
그는 밥을 입에 넣다 말고 놀란 토끼눈으로 진짜야? 라며 웃었다.
서프라이즈 하려고 했는데 다 망했다는 내 얘기에 우리는 같이 웃으며 그렇게 유쾌한 저녁식사가 끝났다.
그러고 나서 그는 밖에서 한참을 담배를 태우고 들어왔다.
한동안 공백이었던 그의 SNS 계정에 한 장의 사진을 올려져 있었다.
아빠가 된다는 부담감은 어떤 것일까.
엄마가 된다는 설렘과는 다른 무엇일까?
호주에 와서 미래보다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살던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생명은
우리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하는 큰 물음표와 함께 왔다.
점점 불러오는 배를 보며 신기해하면서도
그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불안감도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한 달 벌고 한 달 쓰면 그만인 호주 이민자의 삶은 거창한 미래를 그릴 수 없었다.
모아놓은 돈도 없었고, 앞으로 모을 돈도 그리 많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제 직장을 쉴 것이고 남편 혼자 외벌이로 살아야 한다.
자기 손에 모든 것이 달렸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더구나 호주라는 가족 하나 없는 나라에서 의지할 사람도 없이.
나와 동갑인데 남자라서, 아빠라는 타이틀 때문에 가정을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은 이루어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웃음 짓는 아기의 미소를 보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는 슬펐을 것이다. 자기 얼굴을 쓰다듬는 작은 고사리손에 간질거리면서도 마음은 아렸을 것이다.
이 작은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뭐든 해주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현실에.
그렇지 못한 자신에 대한 실망감.
부모라고 하기엔 너무 불안한 우리의 모습을 보니 남편도 나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탄생은 그렇게 우리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부모라는 새로운 타이틀로 인생이 다시 시작되었다. 거기에 걸맞은 태도로 인생을 살아야 했다.
내 남은 인생을 기꺼이 바쳐서 아이를 위해 살아야 했다. 그리고 정말로 내 인생이 바쳐졌다.
아이를 낳으면 인생이 바뀐다고 하는데, 틀렸다.
아이를 낳으면 내 인생은 사라진다.
나와 남편은 연애시절 여행을 자주 다녔다. 둘 다 바다를 좋아해서 늘 바다가 있는 휴양지가 목적지였다.
해변에 대충 수건 하나 콜라 하나 던져놓고 바다에 뛰어들어 하루 종일 헤엄치고 쉬고 헤엄치고 쉬고 또 다른 바다로 떠나고. 자유롭게 놀고 살았다.
일단 그것부터 빼앗겼다. 우리는 더 이상 함께 바다를 헤엄 칠 수가 없었다.
한 명은 아이를 봐야 하고 한 명은 바다에 들어갔지만, 그 시간마저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남아있는 한 사람과, 아이에 대해 신경이 곤두서 있는 바람에 즐길 수가 없었다.
그렇다. 즐길 수가 없었다. 단순히 바다에서 헤엄치는 그 행위를 못하게 된 것에 대해 아쉬운 게 아니라,
그토록 가고 싶었던 장소에 가도 즐기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장소뿐만이 아니라 사람도 끊겼다.
정말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서울에 있는 친구들과 저녁을 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기를 대신 봐주시는 고모와 남겨져있는 남편에게 그리 미안할 수가 없었다.
다시는 애를 맡기고 돌아다니지 않겠다 다짐할 정도로 마음이 뒤틀리게 불편했다.
엄마 없는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참담한 내 상황에 또 슬퍼졌다.
조용한 곳에서의 천천히 먹는 식사,
혼자만의 시간, 내가 깨울 때까지 자는 늦잠,
제 때 갈 수 있는 화장실.
사소한 것들이었다, 아이를 낳고 내가 잃어버린 것들.
그까짓 걸로 뭘.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대단한 게 아니라 오히려 그까짓 것들을 못하게 되니 더 초라했다.
내가 이것마저도 허락이 안 되는 인생이구나.
어딜 가든 무얼 하든 나를 옥죄는 게 생겨버렸다.
하루 종일 나를 위한 시간은 없다. 정해서 쉴 수 있는 시간도 없다.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매일 일분일초가 긴장의 연속이다.
체형은 어쩜 이리도 밉게 변해버린 건지. 튼살은 또 어떻고.
거울 속 내 얼굴은 볼 때마다 울기 직전이었다.
그런 나를 달래주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을 만들어준 장본인,
내 새끼였다.
그렇게 우울하다가도 웃고 있는 아이를 보면
내 인생을 가져갔음에도 불구하고
내 전부를 가진 거 같았다.
내 뱃속에서 새끼손톱보다도 작았던 게 3.02kg라는 작은 생명체로 나에게 안겼을 때.
내 몸을 박살내고 나왔는데,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웠다.
울기만 하다, 웃어 보이고
고개를 들고, 기어만 다니다가 걷고, 또 뛰고.
뛰어와 안아주고, 뽀뽀를 해주고.
노래하고, 이제 사랑한다 말해주는 내가 만든 기적. 나의 아이.
가만히 보고 있으면 처음 받아 든 초음파 사진 속 콩알 모습이 떠오른다.
두아야, 그게 네가 되었다.
너를 만나
나는 기적을 보았고 우주를 느꼈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가져간다 해도.
시간을 아무리 되돌려준다 해도.
나는 너를 처음 만난 딱 그 날로만 돌아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