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 08 15 서른하나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영순이
서른하나. 어린 나이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걸 축하해... 도 될까.
겪어보니 누군가의 엄마가 된다는 게 아주 고독한 일이라
축하라는 단어가 모순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나온 아이는 축하받아 마땅하기에 아이의 인생에는 축하를 보내야겠지.
이제 막 서른이 갓 넘은 나이에 열일곱 살짜리 막냇동생을
보호자로 데려다 앉혀 놓고 혼자 아이를 낳으며 너는 무슨 생각을 했니?
3.9kg 우량아를 자연분만으로 낳은 너는 정말, 대단하다.
임신 중엔 아이에게 좋으라고 과일을 많이 먹었다고 했었지.
그래서 그 아이가 과일을 엄청 좋아한다고.
억척스럽게 아끼던 네가 가진 유일한 취미생활로 가던 대중목욕탕도
혹시 아이에게 안 좋을까 임신 중에는 한 번도 안 갔다고 했어.
모유도 1년 동안 먹어야 아이가 아프지 않다고 고집하며 먹이고...
덕분에 지금까지도 크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살고 있더구나.
아들이 귀한 시절, 딸이라서 실망하진 않았니?
딸이라서 공주처럼 키우고 싶었다는 네가
자꾸만 쪼그라 들어가기만 하는 살림 때문에
딸에게 큰 아들 옷을 물려 입혀 키우던 너의 맘이 어땠을지
지금에서야 나는 조금 알 거 같아.
그런데 그런 건 중요치 않더라.
사랑으로 충분했다. 당신은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야. 늘 네 손으로 모든 것을 해먹이고 해 주었다.
까짓 거 귀찮아서 남의 손 빌릴 수 있는 것들. 온 맘으로 꼭 네 손으로 해주고 싶어 했어.
그런 것들이 진정 사랑이야.
가진 그 사랑이 너무 많아서 천천히 주어도 평생 모자라지 않았을 텐데
뭐가 그리 급해서 그렇게 미리 다 퍼주었던 걸까.
조금씩 아껴주어도 괜찮아.
대신 너에게 사랑을 좀 주려무나. 가끔 거울도 보며 웃으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꽃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고, 커피를 좋아하던 아름다운 너를 잃지 말고.
그리고 만개한 꽃보다 활짝 피어나는 아름다운 너의 미소를 잃지 말기를 바라.
영순아,
보고 싶어. 우리 언젠가 만날 수 있겠지?
그땐 우리 매일 커피 마시면서 얘기 하자.
내 딸 이야기 많이 들려주고파.
2019년 10월 03일 서른다섯.
엄마가 된 예슬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