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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비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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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영 Jan 02. 2019

"40대는 곤란..." 나이 많은 게 죄는 아니잖아요

"같이 와인 한 잔 하실래요?" 

'나?'하고 잠시 당황해서 두리번거리다, 내가 맞는 거 같아 "좋죠" 하고 마주 앉았다. 마흔한 살이 막 되었을 무렵, 혼자 동유럽 배낭여행을 갔을 때 헝가리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무는 첫날이었다. 

21살쯤 되었을까? 젊은 아가씨는 와인 축제에 갔다가 너무 맛있는 와인을 발견해서 사왔다고 했다. 와인을 따라서 건네는 폼이 외국 생활을 한 느낌이 들었다. 물어보니 역시 인도네시아가 집이고,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여대생이었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이어진 그녀와의 재미난 수다. 막 익어가는 청포도 같은 젊음이었다. 

무작정 혼자 훌쩍 떠난 길이어서 더 특별했던 여행. 그러나 막상 낯선 땅에 혼자 던져지자 후회가 파도처럼 덮쳤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하면서 마음이 불 위에 올려진 오징어처럼 쫄아 들었다. 그날도 헝가리에 도착한 첫날이어서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그러던 참에 싱그럽기 그지없는 젊은 아가씨가 다가와 와인을 청하니 반가울 수밖에.   

지금 돌아보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생각이 안 난다. 다만 계속 깔깔대면서 몇 시간을 떠들었던 것 밖에는. 그녀는 나를 나이 많은 언니가 아니라 친구로 대했다. 그래서 별로 술을 안 마시는 내가, 그날은 와인을 연거푸 마셔댔고, 그날 밤은 지금 생각해도 동유럽 여행 중 가장 유쾌한 밤으로 기억된다.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 그녀 어머니의 나이가 나보다 딱 한 살 많았다.  

그 날 밤, 그 만남이 특별했던 이유

그날 밤, 그 만남이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특별하게 각인된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가 나를 나이나 직함이 아닌 동등한 한 여행자로 대해주었기 때문이다. 독특한 동등함이었다. 우리나라에선 설사 친하다 하더라도 '나이'가 많으면 뭔가 보이지 않는 선이 생겨버려서 '언니 노릇'도 해야 하고, 자의반 타의반 '언니다움'을 의식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까지 직함보다 사람 사이에 높은 벽을 만드는 게 나이다. 

마흔 넘은 나이에 방송작가 공채에 합격해 라디오 작가를 시작하면서 나에게 가장 장애가 되었던 것이 나이였다. PD들은 나이는 많지만 경력은 미천했던 나와 일하는 것을 꺼렸다. 거절당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나이가 많아서"였다. 

나를 꽤 많이 생각해 주는 PD도 어느 날인가는 진지하게 조언을 해주었다. 

"누나는 나이 때문에 되게 애매하잖아요. 사실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아요. 그러니까 너무 여기에 올인하지 마시고 다른 일도 알아보세요." 

걱정해 주는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그러면 애매한 이 나이가 괜찮은 곳은 과연 어디일까' 싶었다. 갈 데가 없었다. 힘들게 발을 들여놓은 그곳에서 살아남는 것 외에는. 그래서 신입의 마음으로 열심히 해 보겠다 했지만 그건 내 마음일 뿐, PD들 입장에서는 영 불편했던 모양이다. 자질구레한 일을 시키기도 어렵고, 머리도 빠릿빠릿하지 못하고, 감각적으로도 떨어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현실적으로 나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게 버겁긴 마찬가지였다. 그런 나를 기다리며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면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건 '경험과 연륜'뿐인데, 그게 필요한 필드는 너무나 제한적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이 많은 게 죄도 아닌데 죄인 것처럼 느껴졌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인구총조사에서 30~40대 미혼여성은 138만 4047명이다. 10년 전과 비교해봤을 때 2배 넘게 급증한 수다. 2015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30대 여성 3명 중 1명, 40대 여성 10명 중 1명은 미혼일 정도로 미혼 여성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계층이 됐다. 

이들을 대상으로 경제활동을 조사한 결과 평균 임금이 218.5만 원으로 나왔다고 한다. 서울시 여성 가족재단의 조사에 의하면 30~40대 미혼 여성의 60%만이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직업 안정성이 높지 않다는 이야기다. 나이 때문에 여기저기서 거절을 당하고, 그래서 사회에서 점점 설 수 있는 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애매한 나이'로 산다는 것

후배 한 명이 관리직원 한 명을 뽑는데, 한 달이 넘도록 못 뽑았다고 했다. 이상하게 마흔이 넘은 분들이 원서를 낸다고 한다. "언니, 나도 마흔인데 마흔 넘은 분들을 뽑기가 왠지 어렵더라구요. 모시고 일할 순 없잖아요."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오빠도 경리직원을 뽑는데 사람이 없다면서 하소연을 했다. 

"40대 주부들이 원서를 내는데 현장 직원들이 다 곤란해 해."

방금 전까지 내가 나이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토로할 땐, 부당하다면서 내 편을 열렬하게 들어주더니만. 사람의 일이 그렇다. 멀리서 보면 근사하게 한 마디 할 수 있지만, 막상 내 일이 되면 부담스럽고 피하고만 싶어지는 것. 다만 난 나에게 닥친 '내 일'이니 살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구차해지지 않으면서도, 공연한 자존심도 부리지 않는 적당한 선을 찾으면서 말이다.  


이제는 누군가 같이 해보자, 이거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 주는 게 고마운 나이. 40대. 나를 기억해 주고 찾아주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지는 나이, 그런 나이에 이르렀다는 것이 실감나면서 언제까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진다.  

다행히 얼마 전, 동료 작가로부터 주말 프로그램 작가 자리를 제안받았다. 고마우면서도 내 나이가 스스로 걸렸고, 방송 일을 쉰 지도 꽤 되었기 때문에 걱정부터 앞섰다. PD에게 내 나이와 사정을 말했느냐고 동료에게 물으니 명랑한 답이 돌아왔다.

"언니, PD가 완전 환영한대요."

"환영한다"는 말이 이렇게 감동적이라니. 촌스럽게 울컥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환영을 받고 보니 5년 전 헝가리의 밤이 생각난다. 나를 나이가 아닌 나 자체로 봐 주었던 싱그러웠던 젊음. 그녀를 닮은 누군가가 나이와 상관없이 나에게 문을 열어준 것이다.

"와인 한 잔 하실래요?"와 "완전 환영해요." 전혀 상관없는 이 두 마디가 하나의 화음에 되어 나를 격려한다. 그리고 다 안다고 여겼던 만고의 진리를 몸으로 깨닫는다. 누군가를 선입견과 편견 없이 대한다는 것, 또 환영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며 그래서 열려 있고 성숙해야 갖출 수 있는 태도임을. 그 덕에 나는 또 한 번 버티고 있고 거짓말처럼 힘이 난다. 

신소영 소속프리랜서 직업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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