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3만 원이 던진 숙제

앞으로 누구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까?

by 신연재

지난 주로 방송 일을 그만두었다. 개편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일요일에 하는 주말 프로그램과 토요일에 하는 내 프로그램에 통합되면서, 일요일 방송 제작팀이 두 개 모두 전담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 마디로 또 아웃된 것이다. 이번에는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았다.

“21일 방송까지만 부탁드려야 할 것 같다”는 피디의 말을 들으면서, 잠깐 쿵한 것 이외에는 덤덤했다. 물론 앞으로 먹고 살 문제는 또 다른 영역의 한숨이고.

이제 방송 작가로 수명이 간당간당하다는 걸 알고 있기도 했고, 그러면서도 ‘조금 더 조금만 더’ 하며 인공호흡기를 끼고 겨우 연장하는 느낌이었는데 결국 이런 날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늘 그렇지만 당사자에게는 ‘느닷없이’.


기차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기찻길이 끊긴 느낌이 든다. 가던 길이 어느 순간 사라진 느낌.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지 정말 모르겠고, 방법을 생각하는 것조차 어렵다.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거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필요한 건 침착함. 좀 더 차분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열심히 내 몸을 불사르며 질주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해고당했던 4년 전 그날이 생각났다. 그때에 비해서 꽤나 차분한 내가 생소해서, 그날과 이번을 비교해보았다. 물론 이제는 거대한 분노나 슬픔 같은 감정이 버거운 나이다. 감정에 휘둘릴 만큼의 에너지가 없기도 하고, 감정에 휘둘리다 헤어 나오려면 몇 배의 에너지가 더 필요하다는 걸 몸으로 겪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에너지를 떨어트리지 않으려 노력한다. 한편으로는 이미 벌어진 일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빨라진 덕도 있다.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면 모를까 되돌릴 수 없는 일에, 내 손을 떠나 벌어진 일은 그냥 받아들이게 되는 나이가 된 덕분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이유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사람들의 태도’다.


이번에 나에게 해고 통지를 한 피디는 정중하면서도 미안해했다. 나와는 고작 한 달 남짓 일했을 뿐인데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느껴질 정도로. 4년 전, 나이가 많다, 경험이 부족해서 부담스럽다며 불친절한 해고를 했던 피디와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그때 끔찍한 기억이 있다. 해고 결정 소식을 듣고, 정리하는 동안 며칠 나와야 했을 때, 그 피디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사람들이 없는 점심 시간을 활용해서 사무실에 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서 나가기엔 어색한 타이밍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사실은 어딘가 숨고 싶은 심정으로 걸어가려는데,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의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 순간, 모멸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나를 자르고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잘 지내는데 잘리고 상처받은 피해자인 나는 왜 저 사람을 피해 다니는 걸까.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그러면서도 비겁하게 그를 피해 다른 문으로 도망치듯 나오는 나에게서 더한 모멸감이 느껴졌다. 지금도 지우고 싶은 흑역사다.

해고 자체는 누군가의 삶 전반을 흔드는 지진 같은 사건이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그것이 나에게 왔을 때 “그렇군요”하고 쿨하게 받아들이는 건 불가능하다. 충격적인 해고 소식을 전하면서 불친절하기까지 하다면 상당한 내상을 입힌다. 나도 그때 적잖이 내상을 입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그들은 또 나라는 존재를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고 떠나는 이에 대한 성의를 보였다. 그래서일까. 피디와 MC의 담백하면서도 성의 있는 인사를 받으며, 그제야 눈물이 났다. 잘린 게 슬퍼서가 아니라 그 당연한 배려에 울컥해서.

마지막 방송을 마치고 시사제작국 단톡방과 작가 단톡방을 탈퇴했다. 그리고 다음날 날라 온 카톡.


“저 OO 프로그램 김OO 작가에요. 얼굴도 한 번 제대로 못 보고 이렇게 인사를 하게 되네요.

개편에 몇 분 작가님이 아쉽게 되어서 남아있는 저희도 맘이 편치 않네요. 게다가 시국이 이러하여서 송별모임도 못 하고 보내드려서 참... 그렇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담아서 작가실에서 작은 송별의 선물 준비했어요. 너무 소소하지만, 마음으로 받아주시고요, 다른 프로그램에서 건필하시길 응원하겠습니다. 건강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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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선물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단어였다. 방송작가는 비정규직 프리랜서여서 퇴직금이 없기도 하거니와 들어오고 나가는 일이 흔한 동네여서 누군가 나가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팀에서 오래 일하거나 연식이 있는 작가라면 당연히 챙겨주겠지만, 나처럼 주말 프로그램만 하는 작가는 열외가 되기 십상이다. 거의 재택 근무를 하기 때문에 얼굴 한 번 제대로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방송작가’라는 직업으로 묶여서 나의 퇴장을 기념해 주고, 수고했다 말해주는 것. 처음 겪는 일이었다. 마음이 약해졌는지, 요즘은 이런 사소한 예의에도 눈물이 난다. 생경하면서도 고마웠다. 늘 혼자 망망대해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는데,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내 상황을 이해해 주는 누군가와 희미하게나마 연결되어 있었다는 게 뒤늦은 안도감을 선물해 주었다.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재난을 견디는 와중에, ‘해고’라는 개인적 재난까지 겹쳐서 조금 우울한 3월이었다. 그 와중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나와 연결되었던 사람들이 보인 태도 덕분이었다. 그래서 난 아직은 ‘사람이 희망’이라고 믿는다.

더불어 코로나 19는 앞으로 어쩌면 이런 일은 더 자주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누군가와 혹은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숙제를 남겼다. 해고된 나는 누구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나 고민이 깊다.

젊을 때는 다양하고 수많은 관계망 속에 둘러싸여서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인식할 틈도 없었다. 내가 다니던 (정규직) 직장은 나에게 울타리가 되어 주기도 했다. 누군가,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먹어 가면서, 자의든 타의든 사회적 관계망이 점점 좁아지는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고립되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는 더더욱 글을 쓰며 랜선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소중한 관계가 될 것 같다. 내 이야기가 가서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서로에게 화답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곳에 글을 쓰고, 함께 공감해 주는 사람들의 글과 반응을 접할 때마다 무언가에 접속된 느낌이 들곤 한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람을 희망 삼아 친밀하게 연결되기. 나에게는 일종의 퇴직금이었던 3만 원이 남긴 따뜻한 충고이자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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