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소영 Feb 19. 2021

<재수생 육아일기> 울화를 삭히는 방법

꾸역꾸역 감사할 일 찾기

'재수생 엄마'

달고 싶지 않은 타이틀이었는데...

아들이 달아주었으니 감사히 받기로 했습니다.


  모든 입시가 마무리되고 2월부터 시작한 재수 생활.

주변에 신입생 입학 소식보다 많이 들리는 재수 소식에 저희 둘째 아이도 수순처럼 재수를 선택했죠.

처음에는 가정형편 때문에 독학 재수를 하겠다고 선언하더니, 슬그머니 학원을 다녀야 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몇 가지 다짐을 받고 나서 몇 군데 알아본 학원 중 한 곳을 정해 학원에 등록을 했습니다. 재수학원이 비싼 건 알고 있었지만 없는 살림에 참 부담스러운 금액이더라고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하고 싶다니.


  아직 3월 정규반이 아니라 수능 끝나고 좀 루즈해진 생활 습관을 잡는다는 개념으로 2월을 보내는 듯싶더라고요. 아침 6시 반에 셔틀버스를 타고 학원에 도착해서 7시 50분부터 하루가 시작되어 밤 9시에 끝나서 집에 오는 스케줄.

놀다가 시작하려니 피곤도 하겠다 싶었습니다. 같이 재수하는 친구가 있어서 그런 건지, 새로운 학원 시스템 덕분인지 제법 즐겁게 적응해 나가서 참 다행이라 생각했죠. 하루에 14시간가량을 삼엄한 감시하에 안 하던 공부를 하려니 안쓰럽기도 했지만 희망찬 기대를 안고 아이를 응원했습니다. 그렇게 한 주 두 주가 흘러가고, 제법 적응을 잘해나가는가 싶으니까, 살짝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이왕 하는 거 제대로...


  집에 와서 1~2시간 쉬다가 일찍 자고 일어나 좋은 컨디션으로 하루를 맞았으면 싶었던 거죠. 그런데 아이는 학원에서 핸드폰을 돌려받아 집에 오는 내내, 그리고 집에 와서 12시 넘어까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거예요.

큰 아이가 묻더라고요.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엄마. 재수하는데 집에 와서 저렇게 폰을 오래 봐도 되나!"

"2월은 워밍업 단계라고 생각하고 지켜봐야지. 어쩌겠어."

솔직히 저도 슬슬 화는 났지만 참았습니다.


  정시 추가 합격 기간이 돼서 아이한테 다시 물어봤습니다.

"정시 추가 합격 전화 오면 어떻게 할 거야?"

"에이, 안 가지."

단호하게 잘라 말해서 알았다고 했습니다.


예상대로 추가 합격 전화가 왔지만 바로 포기했죠. 조금 아깝긴 했지만 아이 결정을 따라주기로 한 거죠.


그런데 며칠 후  정시 접수 추가 합격 마지막 날 오후 학원에 있는 아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나 거기 다시 간다고 할 수 없나!"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가 싶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알고 보니 같이 재수 시작한 친구가 마지막 추가 합격 전화를 받고 재수를 포기했던 것입니다.

멘탈이 유리알 같은 우리 작은 아드님, 그래서 흔들렸던 거예요.

어쩌면 좋을까요. 이미 끝난 일인데...

울고 싶었습니다.

그냥 안 간다고 해도 접수라도 해둘걸 그랬나 싶어 너무너무 후회가 되더라고요.

 잘 적응하고 목표도 나름 세워서 깨끗하게 포기했던 것인데, 이런 일에 이렇게 흔들리니 마음이 참담했습니다.

집에 온 아이에겐 쿨한 척했지만 속이 말이 아니었죠. 아이 속도 어떻까 싶어 마음이 먹먹했지만 단단히 맘을 틀어잡았죠.


  그런데 다음 날 점심 무렵 또 전화가 왔습니다. 학원에 있는 우리 아드님에게.

컨디션이 너무 안 좋고, 머리도 아프고 속이 울렁거린다고.


  작년 생각이 났습니다. 고3 내내 여기저기 아픈 곳도 참 많았었던 아드님. 수시로 배가 아프고 수시로 열감기를 앓았던. 코로나 검사도 2번이나 받았었죠.


그렇게 멘탈이 약한 아이였는데, 재수가 웬 말인가.

재수를 한다고 해도 말렸어야 하는데...

그냥 성에 안 차는 대학이라도 보냈어야 하는데...

지금이라도 다 때려치우라고 해야 하나.

 

앞으로 지난한 재수의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 덜컥 겁이 납니다.


아는 지인과 통화하면서 하소연을 했습니다.

자기 재수할 때 얘기를 해주더군요.

그러면서 아이 키우면서 예뻤던 기억을 떠올리며 참으라고.

감사할 거리를 찾아보라고.

'감사할 게 없는데 뭘 감사하라는 거야.' 싶어 대충 얘기를 하다가 전화를 끊었습니다.

처음엔 참 감상적인 조언이라며 귓등으로 흘려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가만히 아이 어릴 때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감사니, 예쁘니' 하며 키우지 않았던 거 같아요.

그냥 낳았으니 키운다는 생각?

이렇게 말하면 좀 지나칠 수도 있지만 멋모르고 키웠던 거 같아요.


그래서 생각했죠.

아이가 재수를 끝내는 그 날까지 재수생 아들과 재수생 엄마의 다사다난한 얘기를 여기 기록해야겠다고.

아이에게 감사할 일들을 찾다 보면  마음이 좀 다스려지지 않을까요?


아이가 절 많이 닮아서 멘탈이 유리알이거든요.

그래서 사실 아이멘탈도 걱정이지만, 엄마인 제 멘탈도 잡아야 아이에게 쓸데없는 잔소리를 좀 덜할 테고 말이죠.

잘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은 없어요. 울컥 화가 나 다 때려치우라고 할까 봐 너무너무 걱정돼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시작한 거니 해봐야죠.

저랑 우리 아이 많은 응원 부탁드릴게요.

저도 꾸역꾸역 감사해보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場글 Book>왜 울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