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심사술의 저주

[3부] 감각의 감옥 : 고장 난 나침반과 필터 (감각 편)

by 신지용


1. 초능력인 줄 알았는데 필터가 고장 난 거였습니다.


나는 가끔 내가 원치 않는 초능력을 가진 것 같다. 상대방의 미세한 눈썹 떨림, 짧은 침묵, 공기의 온도 변화만으로도 그 사람의 진짜 의도를 읽어내는 '정서적 독심술'이다.


어릴때부터 눈치 빠르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사람들의 감정의 흐름 등 모든게 읽히지만 애써 모른 척 한적들도 많다. 내가 슈퍼스타K부터 스트리으투먼파이터까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많이 보기도 했지만 최근 서바이벌 프로그램 <피지컬: 100>을 보면서 느꼈다. 편집점만으로 승패를 맞혔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내 뇌는 타인의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데 있어 광대역 초고속 인터넷망을 깔아두었다는 것을.


하지만 이 뛰어난 데이터 분석 능력은 축복보다는 저주에 가깝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가 별로 알고싶지 않은 정보들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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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아까 요리가 짰나? 계속 물을 먹네…’

잠깐의 0.1초의 표정을 읽고는 ‘이 이야기는 꺼내지 말아야겠네. 불편한가보다.’

‘오늘은 목소리의 높낮이가 좀 낮네. 컨디션이 별로인가?’ 등..


물론 이 정보들중에서는 내가 오해하거나 잘 못 생각한 것들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모두 맞았다.

심지어 길을 걷거나, 카페 옆 테이블 커플의 싸늘한 기류가 내 뇌로 직행하고, 마트 점원의 피로감이 내 어깨를 짓누른다.


이건 단순한 '눈치'의 문제가 아니다. 외부 자극을 걸러내지 못하는 ADHD의 '헐거운 필터'가 정서적 영역으로 확장된 데이터 과부하 상태다.




2. '공감적 수치심'의 고통


이 예민함이 번거로워지는 지점은 바로 '서사'가 있는 화면 속이다.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이 민망한 상황에 처하거나 굴욕을 당하면, 나는 차마 화면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다.


내가 당하는 일도 아닌데 그 부끄러움이 내 피부에 닿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감각. 나는 이게 그냥 내가 좀 유별나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최근에야 깨달았다. 내 뇌가 그 상황을 내 일처럼 실시간으로 시뮬레이션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걸 뇌과학에서는 공감적 수치심이라 부른다. 남들은 타인의 감정을 관찰하고 넘길 때, 내 뇌의 미러 뉴런은 눈치도 없이 그 민망한 상황의 데이터를 복사해 내 전두엽에 붙여넣기 해버린다. 특히 인물들 사이의 갈등이 억지로 꼬이거나 답답한 전개가 이어지면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내 뇌는 이미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을 도출했는데, 화면 속 인물들이 비효율적인 선택을 반복하면 뇌 안에서 시스템 충돌이 일어나는 기분이다.


다행히 예능 프로그램은 괜찮다. 편집이 빠르고 상황이 단발적이라 내 시뮬레이션 회로가 깊게 개입할 틈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사가 깊은 극으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보기 전 결말을 미리 찾아보는 스포일러 선점 전략을 쓴다. 결말이라는 안전망을 미리 깔아두어 예측 불가능한 감정적 습격을 차단하는 것이다. 결국 다 잘 해결된다는 확신이 있어야 내 예민한 편도체가 안심하고 시뮬레이션 전원을 끈다.


재난 영화나 추격전이 꺼려지는 이유도 비슷하다. 내가 직접 쫓기는 것 같은 불필요한 긴장감이 몸에 남는 게 싫어서다. 영화의 절정에서 내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면, 그건 집중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화면의 자극을 너무 정직하게 수용하고 있어서, 그 농도를 조절하기 위해 일부러 시선을 돌리는 행위에 가깝다. 나에게 영상 관람은 단순히 즐기는 취미를 넘어, 내 뇌가 감당할 수 있는 적정 수준의 자극을 세팅해야 하는 정교한 조율 과정이다.




3. 실수하지 않으려 만든 '인공 근육': 마스킹의 피로


사람들은 ADHD라고 하면 다들 천방지축 날뛸 거라 생각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신중하고 소심하다. 사실 나의 이 신중함은 타고난 기질이 아니다. 수많은 실수 끝에 생존을 위해 억지로 이식한 불안이라는 이름의 인공 근육이다.


대학원 조교 시절, 내 지도교수님은 나를 늘 밝고 리액션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셨다. 교수님들이 어떤 태도의 학생을 좋아하는지 내 안테나는 이미 파악을 끝냈고, 나는 그에 맞춰 최적화된 리액션 버튼을 눌렀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기력을 소진해 가면을 쓸 힘조차 없던 내 무표정한 얼굴을 보고 교수님은 경악하며 물으셨다.


"무슨 일 있니? 왜 이렇게 가라앉아 있어?"


사실 그 무표정이 진짜 내 모습인데 말이다. 다들 나의 마스킹된 가면만 보고 내가 엄청난 외향인인 줄 안다. 하지만 내가 사실은 이렇게 뼈를 깎는 에너지를 모아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 다들 경악한다.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유난이다"와 "세상에, 그동안 어떻게 참았어?" 사이의 시선들.


그 시선들을 뒤로하고 나는 내 뇌를 식히러 집으로 도망친다.


이런 나의 연기는 자아를 잃어버린 방황이 아니다. 오히려 나 자신에 대한 객관화가 너무 잘 되어 있어서 생기는 전략적 선택에 가깝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싫어하는지 명확히 알면서도, 사회라는 정글에서 가장 가성비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기꺼이 고강도 연기를 수행하는 것이다. 다만 그 연기가 끝나고 난 뒤, 과부하 걸린 뇌가 내야 할 청구서가 조금 무거울 뿐이다.




4. 배터리 잔량 1%: 나에게는 '충전 패드'가 필요해


필터 없는 뇌로 타인의 감정을 받아내는 나에게, 혼자 있는 시간은 필수적인 정서적 해독 과정이다. 사회적 가면을 벗어던지고 돌아온 집, 부엌 불만 희미하게 켜둔 채 방 안의 조명을 모두 끄고 리추얼을 시작한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침대에 누워 고양이 바니를 꼭 껴안는다.


15분 정도 선잠을 자듯이 아무 생각 없이 멍을 때린다. 뇌에 들어오는 모든 입력을 차단하고 시스템을 잠시 멈추는 강제 로그아웃 시간이다.


이런 나의 독특한 에너지 효율 시스템을 예비남편은 처음엔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자타공인 ENFP의 끝판왕이다. 사람이 바글바글한 서울 시내 한복판을 휘젓고 다녀오면, 그는 오히려 기운이 펄펄 넘쳐나는 기묘한 생명체였다.


반면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정전된 도시처럼 말수가 줄어들고, 신경은 점점 날카롭게 벼려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내뱉는 첫마디는 늘 같았다.


"나 지금부터 30분 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말고 말도 걸지 마. 가만히 누워있을 거야."


그에게는 이 모습이 흡사 벼락 맞은 대나무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는 안다. 이건 성격이 나빠서가 아니라, 내 전두엽의 배터리가 빨간색으로 깜빡이며 시스템 강제 종료 직전에 도달했다는 신호라는 것을 말이다. 요즘은 내가 기가 잔뜩 빨려 있으면 그가 먼저 말한다.


"안 되겠다. 얼른 충전 패드에 올라가서 충전해."


남들이 보기엔 그저 누워있는 게으름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 침대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정서적 방전 상태를 회복시키는 무선 충전 패드다. 이 패드 위에서 외부 자극을 0으로 맞추고 멍을 때려야만, 내 뇌는 다시 세상을 향해 안테나를 세울 수 있는 최소한의 전압을 확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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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침대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정서적 방전 상태를 회복시키는 무선 충전 패드다. 이 차이를 이상함이 아닌 규격의 다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을 때, 정글 같던 우리 집은 비로소 안전한 울타리가 되었다.


불안을 동력 삼아 버텨온 인공 근육을 잠시 내려놓고, 말랑말랑한 진짜 내 마음으로 숨 쉬기 위해 나는 오늘도 기꺼이 나만의 동굴로 숨어든다.



� [뇌과학 토막 상식] 왜 결말을 알아야 안심이 될까?

1. 편도체의 과잉 반응 억제

스릴러나 재난물은 뇌의 공포 중추인 편도체를 강하게 자극합니다. HSP 성향이 있다면 이 자극이 일반인보다 훨씬 강력하게 전달됩니다. 이때 '결말(정보)'을 미리 아는 것은 전두엽이 편도체에게 "이건 통제 가능한 상황이야"라는 안심 신호를 보내게 하여 정서적 폭주를 막아줍니다.


2. 인지적 통제감

ADHDer에게 예측 불가능성은 큰 스트레스 요인입니다. '스포일러 보기'는 불확실성을 제거하여 '인지적 통제감'을 확보하는 행위입니다. 내가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뇌는 비로소 과부하 없이 정보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3. 주의력 분산을 통한 자극 희석

핸드폰을 보는 행위는 감각 과부하가 올 때 사용하는 '용량 조절기'와 같습니다. 시각적 자극을 분산시켜 거울 뉴런이 주인공의 고통을 100% 복제하지 못하도록 막는 영리한 생존 전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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