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우리는 ‘스타벅스’를 마시고, ‘나이키’ 로고가 박힌 운동화를 신으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정의합니다. 차갑게 분석하면 스타벅스는 원두와 우유의 조합일 뿐이며, 나이키는 고무와 천의 결합물에 불과합니다.
물리적 실체만 본다면 그 가격을 지불할 이유가 전혀 없지만, 우리는 이 ‘허구’에 기꺼이 높은 비용을 지불합니다. 그 답은 인류가 생존해 온 방식, 즉 '허구를 믿는 힘’에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를 통해 인간이 지구를 지배한 무기로 '허구를 믿는 힘'을 꼽았습니다. 진화심리학적으로 인간은 혼자선 살아남기 힘든 존재였고, 생존을 위해 집단 협력이 필요했습니다.
문제는 인간이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인지적 한계가 최대 150명(던바의 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공통의 허구'를 만들어 내고, '믿음'으로서 대규모 협력이 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시대에도 ‘종교’, ‘국가’, ‘법’, ‘화폐’와 같이 실존하지 않는 허구를 시스템으로서 공유하며,
"우리는 같은 신을 믿는다","우리는 같은 나라 사람이다"라는 집단정체성을 만들고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허구의 시스템들은 오직 ‘공통의 믿음’ 위에서만 존재하며, 믿는 사람이 사라지는 순간 화폐는 종이 쓰레기가 되고 종교는 잊힌 신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브랜드도 정확히 이 구조 위에 서 있습니다. '우리 브랜드'라는 공통된 믿음이 형성될 때, 비로소 브랜드라는 개념은 실존하는 힘을 갖게 됩니다. 존재를 믿는 사람이 없는 브랜드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브랜드라는 허구를 함께 믿어줄 사람들을 구하고 지지를 얻는 여정은 과거 대중 운동이 세력을 확장하던 방식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역사적으로 대중운동이 성장하면 이념이 되고, 이념이 더 단단해지면 종교적 위상까지 갖게 됩니다. 사람을 많이 모을수록 이 '허구의 시스템'은 강력해지며, 독점적 이익을 얻게 됩니다.
결국 브랜딩이란, '허구에 대한 공통된 믿음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입니다.
우리 브랜드를 믿어줄 사람을 구하고, 집단을 만들고, 그 규모를 키워가는 일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미 집단에 들어온 사람을 '브랜드 팬덤', '충성 고객'이라 부르게 됩니다.
특히 브랜드의 초기 단계는 더욱 대중운동과 닮아 있습니다.
아직 유명하지도, 성과가 증명되지도 않았을 때 사람들이 그 브랜드를 선택하는 이유는 합리적 계산이 아닙니다.
막연했던 자신의 가치관에 이름을 붙여준 브랜드에 대한 '지지'이자,
그들이 제안하는 미래에 던지는 '가치 투표'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초기 브랜딩의 핵심은 '어떻게 보일 것인가(Visual)'가 아니라,
'무엇을 믿게 만들 것인가(Belief)'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토록 실체 없는 허구에 집착할까요? 그것은 인간이 ‘인과 법칙’ 없이는 세상을 해석할 수 없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법칙에 따라 돌아간다는 ‘개연성’과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당위성’이 확보되어야만 미래를 예측하고 삶의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현실이 매우 이상하고 불공평하며, 마땅한 이유를 찾기 힘들 때가 많다는 점입니다.
비즈니스 세계의 사례를 통해 이를 살펴봅시다. 어떤 스타트업이 소위 ‘대박’을 터뜨렸을 때, 데이터로 냉정히 분석하면 그 성공의 9할은 운과 타이밍의 결합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이러한 '우연'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합니다. 성공이 순전히 우연이라면, 우리가 다음에 성공할 확률을 예측할 수 없게 되어 극심한 불안(허무주의)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럴싸한 성공 서사(허구)를 발명합니다. 창업자의 특별한 철학이나 남다른 실행력 같은 인과관계를 만들어내야만, 우리는 비로소 ‘나도 저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개연성을 획득하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인간은 자기 자신마저 개연성과 당위성으로 이해하는 존재입니다. 10살의 나와 20살의 나는 생물학적으로 다른 존재일 수 있지만, 우리는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서사 구조의 개연성을 통해 ‘동일한 나’라는 정체성을 지켜냅니다.
결국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믿게 만들기 위해서는 세상을 설명할 수 있는 개연성과 당위성,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해야 합니다. 특히 인간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고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자신을 대신해 명확한 질서를 제시하고 미래를 약속하는 존재를 따르게 됩니다. 이들을 집단으로 묶어 정체성을 강화하는 모든 설계 과정을 통틀어 우리는 브랜딩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인류가 만든 모든 시스템에는 반복되는 패턴이 있습니다.
시스템을 설계했거나 그 원리를 더 많이 이해하는 사람이 언제나 가장 큰 이득을 가져간다는 사실입니다.
신앙 시스템의 승자: 시스템의 구조를 파악한 성직자는 역사적으로 높은 지위와 권력을 가졌습니다.
자본 시스템의 승자: 자본주의의 원리를 이해한 자본가와 사업가는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사법·행정 시스템의 승자: 판사, 변호사, 행정사 등은 시스템의 구조를 파악한 전문가들입니다.
브랜드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승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화려한 디자인 감각이나 마케팅 요령이 아닙니다. 브랜딩이라는 시스템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그 '본질적 시스템'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 연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브랜딩을 재현 불가능한 '천재의 감각'으로 치부하지 않고, 인간이 만든 고도의 '시스템'으로 바라보는 것.
단순한 성공 사례 분석을 넘어, 역사적으로 검증된 '믿음을 획득하는 방법론'을 우리 브랜드에 적용하는 것.
인류의 역사 속에서 증명된 대중운동의 문법을 브랜딩의 프레임워크로 가져오는 과정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브랜드라는 허구를 실존하는 권력으로 만드는 법과, 그 구체적인 설계도인 집단정체성을 설계 하는 5단계 브랜딩 프레임워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