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대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나라면 저런 거 살 바엔 집이나 차를 사겠다!
그렇다. 집이나 차를 사고 싶으면 그렇게 하는 게 맞다. 그건 그냥 개인의 가치관 차이니까. 어쨌든 지금 우리는 아주 발달된 문명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어 있다. 그 말은, 누구나 한 번쯤은 예술품 경매 등에 관한 기사를 봤을 거란 얘기다.
"피카소, 1968억 원에 낙찰돼... 사상 최고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몬드리안 522억"
"이우환 작품 호당 1475만 원으로..."
(아, 참고로 '호당 얼마'라고 하는 말은 그냥 미술계에서 그림 크기를 말할 때 쓰는 단위다. A4용지 반 장에 1475만 원이라고 보면 된다. 이우환이라는 작가가 대문짝만 한 그림을 그렸다고 치면 가격은...)
위에 언급한 작가들은 전부 추상화가들이다.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아는 피카소와, 이름은 몰라도 보면 대부분 아는 몬드리안... 그리고 가끔 사람들이 현대미술에 대해 말하면 늘 나오는, 아래 대사의 주인공인 이우환 작가.
"뭐야! 점 하나 딱 찍고 그렇게 비싸게 판다고?"
보통 그런 작품은 추상화가 대부분이다. 추상화, 하면 보통 피카소를 먼저 떠올릴 것이며 추, 라는 한자는 못생겼다는 의미의 추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실제로 추상화가 '피카소처럼 못생기게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일단 미술은 구상화와 추상화로 나뉘는데, 쓸데없이 어려운 말은 많이들 하니까 집어치우고 그냥 온전하게 생겼으면 구상화, 아니면 추상화라고 보면 된다. 정물화, 초상화, 과일, 물건, 풍경 등은 구상화에 속하고 점, 선, 면, 도형, 혹은 사람이 좀 사람의 형태를 많이 잃었다 싶으면 추상화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이해를 도와줄 피카소의 소 그림을 보자.
추상화는 영어로 abstraction, 관념, 추상 등의 의미다.
가장 왼쪽 아래는 누가 봐도 소 그림이다. 듬직하고 밭 잘 갈 것같이 생긴 소. 이건 다들 수긍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오른쪽 가운데 그림은 소처럼 보이는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피카소가 저 소 그림을 그릴 때, 소에 대해 아주 오랜 시간 생각했다. 소에서 소의 특징을 하나씩 빼면 가장 마지막엔 어떤 것들이 남을까? 소의 정수 essence는 뭘까? 소의 정체성은 뭘까?
우리가 자기소개서 쓸 때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건 무엇인가?'라고 고민하는 것과 같다. 어떤 존재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 그것을 그려내는 것이 바로 추상화라는 것이다.
"내 그림은 언제쯤 비싸게 팔릴까?"
"음... 죽은 후에?"
그림값은 작가가 얼마나 유명한지, 작품성은 어떤지, 유행은 어떤지에 따라 달라진다. 작가가 죽으면 희소성이 높아지므로 또 비싸진다. 드라마틱하게 죽는 게 정말 그림값 올리는 비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예대에서 농담 삼아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그냥 죽기만 하면 안 되지.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가 극적으로 죽어야 해. 예고, 예대 나와서 착실하게 그림 그리고 교수님 눈에 띄고 미술관에 전시하고... 이런 삶을 살았던 작가의 그림보다는 길거리에서 마약 하다가 청산하고 그림 그리다가, 집 나간 아빠가 찾아와서 몰래 그림 다 훔쳐다 팔아버리고 돈을 들고 도망쳤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예술활동을 하다가 그만 사고로 눈이 멀어버리고 이를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해 생을 마감한 작가의 그림이 더 비싸게 팔리는 거야."
추상화의 가치에 대해서는 예대에서도 꽤 재밌는 토론 주제다. '현대미술은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면 되는 것인가?'라는 주제와 종종 함께 이야기된다.
가치라는 것은 본인의 가치관에 따라 천차만별이므로 지금 내가 여기서 딱 답을 내릴 순 없다. 비싼 추상화에 대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전자는 진짜로 그들의 업적을 존중하는 사람과 미술 제도 안에서 자신의 그림도 언젠가 비싸질 거라 희망하는 사람, 이렇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후자는 별생각 없이 나도 하겠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추상화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 그리고 그렇게까지 비쌀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보통 추상화는 그림의 스킬 자체에 집중하는 대신에 철학적인 사고를 표현한다. 물감을 그저 그림 그리는 도구로 보는 게 아니라, 물감이라는 물질 자체로 인식하고 그 존재와 내 존재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거나 하는 것이다. 카메라의 발명 이후로 똑같이 그리는 것 외에 다양한 방식들이 시도되었다.
단지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면,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사람 누구나 잘 그릴 수 있다. 그러나 그림에 철학을 넣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철학을 공부하고 이해하고 '나'의 가치관에 대한 중심을 세운 후에 그것을 또 가시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작품을 만든다.
이 과정에선 단순히 붓과 물감, 캔버스가 필요한 게 아니다. 생각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매체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사진, 그림, 조형, 설치, 영상, 미디어 등등... 그다음은 가장 효과적인 재료를 찾고, 가장 효과적인 표현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생의 전부를 고민으로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예대생 대표 의견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점, 참고하고 읽기 바란다.
나는 비싼 추상화들이 역사적 사료라고 생각한다. 미적인 가치와 역사적인 가치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말이다. 미술계에 한 획을 그은 작품들은 충분히 역사적 가치가 있다. 그 작품이 있었기 때문에 후에 나오는 미술작품들이 영향은 받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 당시 시대상도 알 수가 있다. 구상화의 경우, 그 그림이 그려진 시대의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는 보통 알 수 없다. 반면 추상화는 그렇지 않다. 피카소는 '옆얼굴과 앞 얼굴을 동시에 그릴 순 없을까?'라는 고민을 통해 입체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우리는 그의 그림을 보고 그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그림을 그렸는지 생각할 수 있다.
이 당시 수련이 이렇게 생겼구나, 가 아니라 이 화가가 무엇을 아름답게 생각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앤디 워홀은 미술이 부자들만 위한 것이라는 인식을 깨고자 했다. 핸드메이드로 하나하나 그려내는 것이 아닌, 공산품처럼 찍어내는 작품을 만들었다. 대중들도 쉽게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한 적극적인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인터넷에서 쉽게 프린트 그림을 구입할 수 있는 것도 앤디 워홀의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높은 사람들이 돈세탁하려고 특정 그림들 값을 지나치게 높인 거라는 소문도 들어봤지만, 개인적으로 그저 고려청자를 주고받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여기고 있다. 돈세탁을 위해 고려청자를 이용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가치 없는 것을 일부러 가치 있는 것처럼 포장한 것일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