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꿈과 떠나간 남자친구가 생각이 났다.
이사를 갔단다. 더운 날씨만 되면 발이 쩍쩍 눌어붙는 노랑 장판은 이제는 없겠지. 설레는 마음 반, 귀찮음 반. 몇 분째 계속 같은 골목만 돌고 있는 것 같아 슬슬 짜증이 일었다. 숨이 차 헉헉대는 사이 안경에는 뽀얗게 김이 서렸다. 나는 질질 끌던 캐리어를 내려놓고 옷소매를 잡아당겨 안경알을 닦았다.
“어, 왔어?
거진 세 달 만에 얼굴 보는 딸내미가 반갑지도 않은지, 엄마는 소파에 앉아 리모컨만 달랑달랑 흔들었다.
“어후 날 많이 추워졌던데. 치. 나와보지도 않고. ”
“집 잘 찾아왔음 됐지. 배고파? 밥 줄까?”
타지에서 이곳까지 함께 한 신발을 벗고 드디어 낯선 우리 집에 들어섰다. 발바닥에 닿는 마룻바닥부터, 모든 것이 어색했지만 공간 곳곳에 배치된 익숙한 물건들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내 방은 어디야?”
“오른쪽.”
손잡이는 열기 하나 없이 차가웠다. 들어선 내 방은 밖보다 더 서늘하게 느껴졌다. 책꽂이에는 대충 꽂아준 책들이 있었고 책상 위아래에로는 뜯지도 않은 이삿짐들이 보였다. 혹여나 누가 내 일기장을 볼까, 절대로 어떤 물건도 정리하지 말아 달라 신신당부한 결과였다. 테이프를 뜯자 빼곡히 쌓인 나의 일기장들이 보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모아둔 꼬깃꼬깃한 공책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어 나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녁은 엄마표 김치 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다시 짐 정리에 몰두했다. 여행 가방 속 물건들의 대다수는 세탁기 안으로 들어갔지만 아직 방 정리를 끝내지 못해 나머지는 울타리처럼 방문 앞에 늘어놓고 말았다. 짐들은 전혀 분류되지 않고 제 각각으로 박스 안에 담겨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물건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다 ‘그것’을 보고야 말았다.
비닐봉지에 넣어둔 상자를 조심스레 꺼냈다. 상자를 열자 여전히 새하얀 운동화가 들어있었다. 한 번도 신지 않은 새 신발이었다. ‘연인 사이에 신발을 선물하면 선물 받은 신발을 신고 떠나버린다.’는 이야기를 예전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때는 몰랐다. ‘신발을 사주면 도망간다.’가 아니라 ‘신발을 사주고 도망간다.’였다. 정확히 말하면 도망치지는 않았지만. 당시의 나는 떠난 그가 그만큼 원망스러웠다.
아마 무슨 기념일이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난 그가 나에게 선물이라며 이 운동화를 건네었다. 선물을 받고 발 사이즈가 맞는지 신어봐야겠다며 호들갑을 떠는 내 앞에서 그는 미국에 가야 한다고 했다. 미국이 무슨 옆집 동네인가. 마치 당장이라도 떠날 것 같은 그의 모습에 갈고리 마냥 아래로 축 쳐진 내 입은 계속해서 질문을 퍼붓고 있었다.
“할머니가 아프셔서 가봐야 돼.”
그의 집안 사정을 다 아는 건 아니었지만 외국에 사는 친척들과 큰 왕래가 없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아프신 건 안타깝지만 왜 꼭 네가 가야 하냐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었다.
“알아. 좀 당황스럽지. ”
“…”
“나도 별로 가고 싶지 않아.”
“그럼 안 가면 안 돼?”
“근데 엄마가 많이 힘들어하셔서. 할머니가 아픈 건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시니까 불안하고 걱정되어서.. 가봐야 될 거 같아.”
내가 좋아했던 갈색 눈동자 아래에 슬픔과 걱정들이 담겨 있어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길 한복판에서 가지 말라고 옷 붙잡고 떼쓰고 싶은 마음을 겨우 눌러 담았다. 너무 얄미웠다. 그런 얼굴로 그렇게 말하면 내가 붙잡을 수 없으니까. 사실 그 당시에는 그 아이가 나를 떠나고 싶어서 거짓말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했었다. 왜냐하면 그는 나에게 종종 친척 간의 사이가 좋지 않고 그 원인은 대부분 할머니의 지나친 아들 사랑에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늦게 얻은 삼촌이 너무도 소중해서 엄마를 보살피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도 잘 만나지 않는다고 했다. 거기까지가 내가 들었던 그의 가족사였다.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지만 나는 그저 이 운동화를 보면 그때가 생각나고는 한다. 그의 엄마가 할머니를 용서했는지, 용서할 만한 상처가 있었는지, 그게 그와 무슨 상관인지. 그 모든 것은 내가 알 바가 아니었다. 그저 나는 방구석에 처박혀 이별의 후유증을 견뎌내야 했다. 나는 스멀스멀 올라오려는 그때의 기억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밀린 짐 정리를 마저 했다.
꿈속에서 나는 걔가 준 신발을 신고 달리고 있었다. 달리던 나는 걔의 엄마가 되었다가 할머니가 되었다. 쭈글 쭈글한 양손을 내려다보며 나는 경악했다. 어쩌면 하늘이 무너져라 소리도 질렀던 것 같다. 가느다랗던 내 목소리는 쇳소리와 함께 두꺼워졌고 달리던 몸은 점점 무거워져 결국은 넘어지고 말았다. 깨진 무릎은 쉽게 아물지 않았다. 처음에는 불행했고 나중에는 수긍해야 했다. 어쩌면 체념한 걸지도 몰랐다. 꿈은 그렇게 맥락 없이 흘러갔다. 그러고는 다시 나로 돌아와 아침을 맞았다.
잠에서 깬 나는 62살인지 26인지 한동안 분간이 되지 않았다. 밖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를 듣고 나서야 귀국한 지 하루도 안된 휴학생이 현재 나의 지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계를 보니 거의 10시였다. 오래 자면 항상 이렇게 꿈을 꾸고는 하는데 오늘은 조금 뒤숭숭한 아침을 맞이한 것 같았다. 나는 죄 없는 운동화를 째려봤다. 어제 그 아이 생각을 나게 한 저것을 기어코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우악스럽게 운동화를 집어 들고 방문을 열어젖혔다.
“악 깜짝아. 일어났어?”
엄마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국물이 튄 앞치마를 두르고 문을 열려고 했는지 오른손은 어중간하게 들고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지만 때마침 내리쬐는 햇볕에 담긴 엄마의 얼굴이 낯설어 웃음이 나지 않았다. 분명히 세 달 전까지만 해도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예쁘고 큰 눈을 가진 우리 엄마 얼굴에 굵직한 주름이 끼어 있었다. 그전에는 왜 미처 보지 못했을까. 우리 엄마도 나이를 먹고 있었다. 뭐든지 잘 해내는 우리 엄마는 세월도 이겨낼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래? 뭐야 그거?”
순간적으로 잊고 있었던 운동화의 존재를 깨닫자 들고 있던 손이 다시 묵직해졌다. 물건을 향한 괜한 원망을 버리고 엄마의 나이를 속으로 세기 시작했다. 엄마가 몇 살이었더라. 확신 없는 숫자들로 머릿속이 가득 찬 내가 멍하게 서있는 사이 엄마는 아침 먹으라는 말과 함께 부엌으로 나가셨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나도 그 뒤를 따랐다. 신발장에 가지런히 운동화를 두고 식탁에 가 앉았다.
“이거.. 어 친구가 준거야.”
“오 이쁘다. 잘됐네 너 운동화 사줄라고 했는데 그거 신으면 되겠다. ”
펄펄 끓인 된장국을 그릇에 담으며 엄마가 말했다. 냄비 위로 뜨거운 열기가 일렁거렸다.
“엄마 손 안 뜨거워?”
“괜찮아 나이 먹으면 손이 두꺼워졌는지 무감각해져.”
“그래도 조심해.”
“아유 너 잔소리 좀 그만해.”
나는 픽 웃으며 숟가락을 집었다. 엄마가 끓인 된장국은 싱겁고 고소했다. 자리에 앉기 전 엄마는 라디오 광고에 대해 불평하며 전원을 껐다. 햇살은 계속 들이치고 있었다. 강하게 내리쬐는 빛들이 모두 부엌 창 안으로 들어왔다. 그저 부럽기만 했던 엄마의 두툼한 머리숱 사이로 밝은 빛이 내려앉았다. 군데군데 하얀 머리카락이 눈에 밟혔다. 엄마의 짙은 눈썹 위로도 나이테들이 조금씩 쌓여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식기와 유리그릇이 부딪히는 가운데, 시곗바늘의 움직임이 거칠게 들려왔다.
“엄마. 우리 가족사진 찍자.”
“그럴까? 좋지.”
마룻바닥에 놓인 운동화가 눈에 들어왔다. 어젯밤 꿈과 떠나간 남자친구가 생각이 났다.
나를 붙잡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너도 그런 꿈을 꾸었을까. 허름해진 어른의 뒷모습에 몰래 눈물을 훔쳤을까. 원망과 슬픔만 안겨줬던 마지막 이별에 다른 것들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피할 수 없는 슬픔이 그와 그의 가족에게 너무 빨리 찾아오지 않았기를 바랐다.
깊어지는 감정을 무시하려 밥을 꼭꼭 씹어먹었다. 꿀꺽- 음식물이 잘 넘어갔다. 젓가락을 꼭 쥐고 내가 좋아하는 미역줄기 무침을 맛있게 먹었다. 연신 “맛있다!!”를 외치다 1절만 하라는 꾸중을 듣고 나서야 원래 기분을 되찾았다.
햇살은 다시 잦아들고 있었다. 조금 뒤면 다시 들이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