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에서 5,000명, 기존 연봉에서 50% 인상
*퀀텀 점프(Quantum Jump)
어떤 일이 연속적으로 조금씩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계단을 뛰어오르듯이 다음단계로 올라가는 것. 즉, 비약적인 발전을 의미한다.
스물아홉, 이보다 훨씬 더 좋은 곳으로 가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안고 나의 다섯 번째 회사를 퇴사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팀 선배들이 모두 퇴사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었으며, 다른 하나는 나의 연봉이 중소기업 기준 신입사원 연봉 수준으로 너무 낮았기 때문에 일을 하는데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안 다녀본 사람은 절대 모를 그런 연봉이다)
당시 나에 대한 괜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나의 자신감을 비웃듯 수십 곳의 회사에서 모두 탈락을 했다. 그렇게 퇴사 후 6개월이 지날 무렵, 나의 직전 회사의 공고를 발견했다. 내가 원하던 직무, 기업 규모, 산업군이었으며 심지어 집 근처 역 두 정 거장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난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 여기며 준비했다. 생전 안 쓰던 감사일기를 한 달간 매일 쓰면서. 그 간절함이 통했는지 어느새 면접까지 앞두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회사지만, 내 인생에서 첫 도전과 성취를 안겨준 곳이라 내게는 의미가 있는 곳이다. 그동안은 내 스펙으로는 안될 것 같다며 도전조차 안 했으니까.
면접 당일, 나의 직전 회사는 명성답게 크나큰 단독 건물의 이상적인 회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건물 안에 도착해 사전에 받은 인사팀 직원의 연락처로 전화를 했다. 잠시 후, 깔끔한 옷차림을 한 준수한 외모의 젊은 남자 직원이 면접장까지 안내했다.
면접장의 분위기는 엄숙했다. 들어서자 세 명의 면접관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중 한 명인 나의 팀 리더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유튜브에 회사명만 검색해도 그의 인터뷰를 쉽게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이 아닐 것 같은 그의 포스는 역시나 압도적이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사전 과제였던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그는 나를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또한, 내가 질문에 답변을 하면 “그 대답으로는 어필이 안 되는데요?”, “그거 말고 다른 건요?”라는 식으로 반문했다.(비아냥대는 뉘앙스는 아니었다) 나는 ‘이럴 거면 나를 왜 면접에 불렀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얼른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면접을 마치고 건물을 나오는 길에서부터 눈물이 나오는 걸 이를 악물며 꾹 참아냈다. 이내 집에 도착해 펑펑 울었다. 20일간의 간절했던 마음과 노력이 20분간의 면접에서 다 무너져 내린 기분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나의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거였다.
나는 정말 안 되는 사람이구나.
이제 정말 다 끝이구나.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열흘 뒤에 최종 합격 메일을 받았다. 인사팀에서 다른 지원자와 나를 착각한 게 아닌지 계속해서 의심을 했던 것 같다. 혹시나 채용 취소라는 불상사가 일어날까 인사팀에서 요청한 서류를 빠르게 준비해 보냈다.(직전회사 연봉 증빙자료까지 다 보냈으니 미안해서라도 무를 수 없게 말이다) 입사 일자도 빠르게 정했다. 최종 합격 통보일 바로 일주일 뒤에 가능하다고 했으며 원하신다면 당장 내일모레도 가능하다는 간절한 멘트도 덧붙여 회신했다.
그렇게 난 간절히 바라던 곳으로의 이직에 성공했다. 이곳은 나의 여섯 번째 회사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난 일명 '퀀텀 점프' 이직에 성공한 셈이다. 기업의 규모와 연봉이 그 기업의 가치와 완전히 비례할 수 없지만 최소한 내게는 비례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5인 미만인 곳에서는 최저임금이 상승해 어쩔 수 없이 연봉을 올려줘야 하는 상황에 억울해했으니까. 근무 기간이 1년이 지나 연봉협상을 하기로 했음에도 말이다.
어쨌든 기하급수적으로 커진 기업규모와 직전 대비 연봉 50% 인상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나는 퀀텀 점프 이직에 성공했다. 부끄럽지만 나의 30년 인생 중 최초이자 최고의 성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