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치즈미 Apr 16. 2020

인류의 기묘한 소풍 <화성 연대기>

드라마화 성공 가능성: 4

*왕창 스포일러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


[장르]

SF, 판타지, 포스트 아포칼립스


[셀링포인트]


미지의 공간에서 시험에 드는 탐험대

각 단편들이 모여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형식의 책이다. 이미 화성에 정착한 이들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초반에는 지구에서 출발한 탐험대의 단편이 연달아 나온다. 책은 특이하게도 이미 화성인이 있는 화성에 지구인이 탐사를 하러 오는 설정이다


각 탐험대에게 일어나는 일과 탐험대장의 성격이 달라서 재밌었다. 장편 드라마로 각색한다면 탐험대 하나를 메인으로 잡고 이야기 풀어도 좋을 것 같다. 탐험대가 화성인들에게 정신병자 취급받거나 환각에 시달리다가 암살당하는 이야기 등 확대할 구석이 다채롭다. 그중 탐험대의 한 단원이 돌변하여 자기편 단원들을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편이 있는데, 미드 <LOST>가 생각났다. 여기서도 역시 화성이라는 미지의 공간은 미끼일 뿐, 결국 인간들의 심리 싸움이 극의 주요 동력이었다. 



대서사를 펼칠 수 있는 배경

화성은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다. 지구인이 화성을 방문하고, 개척하고, 몰살하고, 화성으로 대이주하고, 다시 지구로 대이동 하여 화성이 텅 비기까지. 모든 시간대를 다 다룰 수 있다. 한마디로 에픽, 장편 서사가 가능하다. 처음 이주한 사람이 산소가 부족한 화성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무를 심는 이야기에서부터, 멸망 후 혼자만 남은 줄 알았던 텅 빈 화성에서 누군가에게 전화가 걸려와 망상 로맨스를 펼치는 이야기까지. 책 제목 역시 <화성 연대기>다.

나무와 풀을 심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다.
나를 화성에 남지 못하도록 만들 뻔한 악조건과 싸우는 것.
나는 화성을 상대로 홀로 원예 전쟁을 벌일 것이다.


특히 나무 심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신선한 즐거움이었다. 화성에 어떻게든 남아있고 싶어 매일 묘목을 심고 날씨를 가늠하며 혼자만의 전쟁을 벌이는 사람을 상상해보라. 그 진지하고도 장엄할 표정이 너무 귀엽지 않은지. 그와 전화 로맨스 이야기를 연결시켜도 재밌을 것 같다.


특히 화성은 지구와 환경이 가장 비슷하고, 지구인이 침투했다는 설정 상 지구와 비슷하게 지명을 정하고 건물을 세웠다. 시각적 측면에서 엄청난 이질감을 주지도 않기에 '공상적'이지 않다. 내가 사는 세상을 조금만 비튼 느낌이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도 일상을 생경한 시각으로 되돌아보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화성 이야기는 인생이 지루해진 이들을 위해, 내가 살고 있는 땅을 낯선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 준다. 



스산한 환상의 맛

학교 과제 때문에 북유럽 신화에 관한 지식백과를 찾아보다가 반한 구절이 있다.

... 켈트 사람들은 이 세상과 단절된 다른 세계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지역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현실 세계 이면의 세계이며, 음지의 세계이며, 죽은 자들의 영이 사는 저승이다. 이 음지의 세계는 바다의 저편, 호수의 저편, 땅 속, 숲 속 등으로 현실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그곳은 지금도 요정이 얼굴을 내밀고 있으며, 행방불명이 된 어린이들이 없어지는 이상한 장소이다.

예전에 스티븐 킹이 말하는 공포의 3단계에 관해 배운 적이 있는데, 가장 상위에 속하는 정교한 감정이 '테러'다. 시각적으로 무서운 무언가를 등장시키지 않고도 소름이 쫙 끼칠만한 이야기를 하는 거다. 레이 브래드버리 역시 그 부분에서 탁월하다. 우선 책 설정 상 화성인은 지구인을 상대로 착시를 일으킬 수 있다.


한 탐사대가 화성에 착륙해보니 자신의 어릴 적 마을과 비슷하게 생겼다. 게다가 각 집에는 대원들의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 형이 살고 있다. 저승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만, 그들은 그저 담담하게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을 뿐이라고 대답한다. 이유야 어쨌건 반가운 마음이 너무 크고, 더 캐물으면 어쩐지 모든 게 연기처럼 날아가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대원들은 일단 덮어두고 가족과의 눈물겨운 상봉을 즐긴다. 흥분이 가라앉고 침대에 누워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탐험대장은 어쩌면 형이라고 누워있는 작자가 한순간 흐물흐물한 외계인으로 변하는 건 아닐지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물을 마시러 간다는 핑계로 방을 나서려 하지만 등 뒤로 형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 목 안 마르잖아.' 다음 날 탐험대원 전원의 장례식이 치러진다. 전형적인 '내가 아직도 네 엄마로 보이니?' 스토리다.


그런가 하면 같은 소재를 좀 더 아련하게 푼 단편도 있다. 화성인이 대부분 몰살당한 후, 새 인생을 살기 위해 화성으로 이주해 온 지구인 노부부가 있다. 그들은 어느 날 자신의 죽은 아들이 빗속에 서 있는 것을 목격한다. 할머니는 요물 취급하지만 할아버지는 몰래 아들을 위해 빗장을 열어 둔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가족에 합류하여 아들 노릇을 한다. 노부부는 모든 게 거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눈 앞의 아들을 놓칠 수 없다. 아들의 얼굴을 한 화성인도 동족이 전부 사라져 외로움에 사무치던 중 사랑받을 수 있어 만족한다. 그런데 세 가족이 시장에 간 어느 날, 사람들은 화성인의 얼굴에서 저마다의 잃어버린 이를 본다. 곧이어 세상에서 가장 절박한 추격전이 시작된다. 사람들의 부름에 따라 계속 얼굴이 바뀌던 아이는 경련을 일으키다 결국 죽고 만다.


책을 이루는 수많은 단편들은 이런 놀랍고 의미심장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드라마로 잘만 만들면 블랙미러 뺨칠 것 같은데... 20세기 폭스에서 <화성 연대기> 영화화해서 2013년 개봉한다는 글을 읽은 것 같은데 감감무소식인 걸 보면 엎어졌나 싶다.


+) 오늘에서야 알게 된 2016년 내셔널지오그래픽 SF 드라마 <마스>. SF 드라마의 고질병인 과학적 근거를 메우기 위해 다큐와 결합했다니! 넷플릭스에 있다니! 당장 보고 리뷰 쓸 예정.


+) 1950년대 작인 <화성 연대기>. 1980년대에 TV 미니시리즈로 제작되어 인기였다는데 유튜브에 있다!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해서 한 번 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금 다르게 해석한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