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치즈미 Apr 27. 2020

처음부터 당신을 위한 거였어, <위대한 개츠비>

고전소설 2

*스포일러 있음


그것은 희망에 대한 탁월한 재능이요, 다른 어떤 사람한테서도 일찍이 발견한 적이 없고 또 앞으로도 다시는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은 낭만적인 민감성이었다.... 내가 잠시나마 인간의 속절없는 슬픔과 숨 가쁜 환희에 흥미를 잃어버렸던 것은.... 개츠비의 꿈이 지나간 자리에 떠도는 더러운 먼지들 때문이었다.


희망을 갖는 것도 재능이라고 본 관점이 신선했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개츠비는 희망 하나로 인생을 걸었다. 그는 젊은 시절 데이지와 피치 못 할 사정으로 헤어졌지만, 그가 노력만 하면 전처럼 사랑을 전부 되돌려 놓을 수 있을 거라 여겨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대저택을 사고 매일 밤 성대한 파티를 열어 그 가운데 데이지를 수소문 하기까지, 차곡차곡 모든 것을 계획해 마침내 그녀를 만난다. (박새로이의 '내 계획은 15년짜리야'가 생각나는 대목...)


개츠비는 확실히 써먹을 만한 극적인 캐릭터다.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모든 걸 계획할 만큼 강한 에너지 (집착)를 뿜어낸다. 신사적이고 매번 파티를 여는 인싸이긴 한데 어딘가 미스터리한 젠틀맨이다. 심지어 분노를 참을 수 없을 땐 '살인이라도 한' 사람의 표정을 짓기도 한다. 화자 닉이 개츠비의 평판이나 행동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3부까지 그가 정확하게 등장하지 않아서 미스터리한 매력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책은 주인공 1인칭 시점이 아니라 닉이라는 화자가 개츠비에 초점을 맞춰 그와의 만남부터 인생을 서술하는 형태다. 덕분에 조금은 차분한 마음으로 인물을 살펴볼 수가 있다. 닉이 일종의 패널 같아서 독자와 공감대도 형성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이걸 영상화한다면?


의외로 괜찮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도 이 형식을 유지했는데, 한 사람을 옆에서 관찰한다는 게 예상과 달리 답답하지 않고 흥미와 신비로움이 차곡차곡 쌓였다. 관찰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상대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기 때문에 괜찮은 것 같다. 또 그의 진정한 정체가 뭔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도 유지할 수 있다. 드라마 <너의 모든 것>이 그걸 활용한 형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그 생각에만 몰두하고 끝까지 그것만을 꿈꾸어 왔으며, 말하자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를 악물고 긴장한 상태로 기다려 왔던 것이다. 이제 그 반작용으로 너무 많이 감아 놓은 시계처럼 태엽이 풀리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개츠비와 데이지의 현실 재회는 그가 꿈꾸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딱딱하게 굳은 안면으로 한마디 한마디 바보 같은 소리나 내뱉을 뿐이었다. 곧 조금 편해져 옛 감정을 떠올리며 짧은 행복을 즐기기도 하지만 현실이 덮쳐온다.


개츠비의 희망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현재를 과거와 똑같이 되돌릴 수는 없다. 그들은 나이가 들었고 데이지는 이제 돌아갈 곳이 있다. 그의 5년짜리 계획은 찰나의 성취감밖엔 주지 못했다. 그 후엔 길고 지독한 허무함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개츠비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나에 꽂히면 그 대가가 뭐든 앞뒤 보지 않고 달려가는 불나방이다. 그는 젊었을 적에도 데이지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우아한' 그녀의 배경을 사랑했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정중히 헤어지겠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사랑한다고 스스로 믿어버렸다. 절대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여자를 한 때 품에 안았다는 사실이 그를 5년 간 더욱 집착하게 만들었다. (사실 거짓 사랑이었다는 말이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나는 왜인지 개츠비가 데이지라는 이미지 자체에 매혹되어 스스로를 속인 것 같았다. 참고로 영화 버전에서는 개츠비를 아예 로맨티스트로 봤다.)

"그 인간들은 썩어 빠진 무리예요. 당신 한 사람이 그 빌어먹을 인간들을 다 합쳐 놓은 것만큼이나 훌륭합니다." 나는 잔디밭 너머로 소리쳤다.... 잔디밭과 차도는 그가 부정한 짓을 저질렀다고 넘겨짚는 얼굴들로 붐볐다. 그리고 그때 그는 저 계단에 서서 부패하지 않은 꿈을 감춘 채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방향은 잘못됐을지라도 그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쏟은 노력은 순수하다. 그래서 그가 '위대한' 개츠비가 아닌가 싶다. 적당히 포기하고 살 수 있는, 남들이 보면 한심하다며 혀를 끌끌 찰만한 목표를 끝까지 믿고 달려가는 사람이므로. 그는 낭만과 열정을 잊은 사람들에게 경외감마저 불러일으킨다. 화자 닉은 그 점을 높이 평가했다.


실제로 개츠비는 결심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를 굉장히 절제했다.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정해진 계획표대로 꾸준히 자기 계발을 해왔고, '섀프터스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 것', '궐련과 씹는담배를 삼갈 것'과 같은 결심들을 적어 지켰다. 눈이 멀 것 같이 번쩍번쩍거리는 파티에서도 정작 집주인인 그는 술 한잔 마시지 않았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반드시 출세할 애'였다고 평가했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한심한 목표를 쫓은 사람.

장례식엔 우연히 알게 된 옆 집 남자(=화자 닉) 외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쓸쓸한 사람.


퀸스보로 다리에서 바라보는 뉴욕은 언제나 처음 보는 도시 같았고, 여전히 이 세상의 모든 신비와 아름다움에 대한 터무니없는 첫 약속을 간직하고 있었다.


가끔 특정 도시를 테마로 이야기를 펼치는 작품들이 있는데, 각 도시의 분위기를 구분하고 인물로 녹여내는 건 정말 매력적인 작업인 것 같다.


책은 뉴욕을 자주, 그리고 꽤 자세하게 묘사한다. 개츠비 역시 뉴욕과 많이 닮아있다. 빠르게 직진하는 곳. 희망을 보여주고 책임은 지지 않는 곳. 누구나 화려한 환상을 품고 달려가지만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마침내 잡았다고 생각했을 땐 너무 멀리 와있다.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를 믿었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 갔지만 별로 문제 될 것은 없다. 내일 우리는 좀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좀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맑게 갠 날 아침에.......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개츠비에 대해 조롱 섞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초록 불빛만을 바라보며 인생을 걸고 달려 간 그가 애틋하다. 그는 가지고 싶었을 뿐이다. 손 닿지 않는 그 무언가를. 고귀함을.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의 악보를 그리는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