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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투어 2일차 이야기 - 전라도

8박9일 전국투어(3)

찍자마자 다섯명 모두 깜짝 놀랄만큼 잘나온 단체사진
<담양 메타세콰이어길>


  ‘첫 날밤의 온도는 미온이었다’는 지난 글은 사실 소설에 가깝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콧물을 훌쩍이며 “앞으로는 온도 맞는 사람끼리 모여서 자자”는 B의 외마디 외침을 시작으로 이틀째 아침은 밝았다. 숙소 바깥으로 나오자, 무슨일이 있었냐는 듯 우리의 온도는 맞춰졌다. 서울은 장맛비로 출퇴근이 힘들 지경이라는데 우리가 있는 이 곳은 눈앞이 어지러울만큼 뙤약볕이었다. 차를 타고 달리던 우리는 어느 고속도로에 다다르자마자 멈춰섰다.


  하늘색은 철저히 귀납법에 의거한 단어이다. 대부분 사람들의 관념 속에 하늘은 푸르른 색이기에 하늘색이 탄생했다. 놀랍게도 우리가 이날 접한 하늘은 초록색이었다. 나무가 지탱하고 나뭇잎이 덮어주는 초록 하늘을 보며,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자연을 접한 우리의 의무였다. 여행을 준비하며 수도 없이 인스타그램으로 접했던 장소이거늘, 실제로 보았을 때의 광활함은 이 글로서도 표현하기 힘들다.


  또, 자연이 만들어낸 공간의 기저에는 분명 평안함이 있나보다. 메타세콰이어길은, 멈춰서서 삼각대를 세워놓고 사진에 담으며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놀랄까 속도를 낮춰 지나가는 차들이 공존하는 그런 재미도 있는 곳이었다.


더위와 싸워야했던 도솔암
<해남 땅끝마을 도솔암>


  전국을 한바퀴 돌기로 결심했을 때, 해남을 꼭 들르기로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상징성’이다. 여타 부연 설명 없이도 땅끝마을이라는 텍스트만으로도 목적지로서 점찍기에 가치가 충분했다. 우리는 금강산을 넓게 펼쳐놓은 모양과 같아 해남의 금강산이라는 달마산에 오르기로 했다. 끝과 시작이 이어진 길이라니, 시의 한 구절 같은 명칭이다.


  한여름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걸음 한걸음 올라가며 무더위와 싸워야했다. 산과 바다와 사람들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곳이었기에 찬찬히 살펴보고 싶은 마음과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는 차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의 작은 충돌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따금씩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맞으며 ‘그래, 세속의 바람보다는 이 바람이 낫지!’ 했다.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땀줄기에, 카메라보다는 눈에 담아온 진 풍경들이었다. 이를 어떻게 써내려가면 직관적일까, 고민하다가 한장 한장 겹쳐진 레이어가 떠올랐다. 하늘 한장, 바다 한장, 바위 수백장, 덧씌우면 씌울수록 완성도가 높아지는 빽빽한 레이어들의 향연이었다. 천년간 그 자리 그대로 위치해줘서 고맙당, 인삿말이 절로 나온다.



이틀째의 일정을 마무리하던 시간
<인생은 사다리타기>


  며칠 전 철학을 전공했다고 소개하자, ‘삶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는 삶을 정의내리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났다. 삶은 사다리타기의 연속이다. “꽝만 아니면 돼..” 무섭도록 결과론적이지만, 아무리 시작이 좋다고 한들(내 행운의 숫자는 4이고 나는 분명 4번을 골랐는데), 결과가 꽝이면 꽝이더라. 우리는 꽝을 피하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며 열심히 살아간다. 뭐 그렇다고 해도 모든 꽝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긴하다.


  누군가에겐 꽝이 누군가에겐 꽝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도 문제다. 이틀째의 여정이 모두 끝나고 휴식시간을 보내던 우리 다섯은 사다리타기를 하기로했다. 꽝(1)은 간식값 만원 내기, 꽝(2)는 브이로그를 찍으면서 간식 사오기였는데, 꽝(2)는 나에게만 벌칙이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는 셀카봉을 들고 당당함을 뽐내며 외출할 수 있는 강심장들 이었으니 말이다. 기가막히게도 꽝(2)는 주인을 잘 찾아왔고, 네명의 환호와 한명의 절규가 있었다. 벌칙을 수행하기 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상황을 무마하려는 과정(애잔한 척 하기, 우는 척 해보기, 화난 척 해보기 등)도 있었지만 다들 철벽이 만리장성이었음을..


  냉소적인 마무리는 좋아하지 않기에 웃긴 사실 한가지를 더 말하자면, 위기가 기회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난 이 날 단독 촬영을 무사히(?) 마친 이후로 카메라 공포증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조만간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단테 유튜브를 개설해볼까 고민하기도 한다. 우리의 2일차는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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