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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s drawing Nov 26. 2015

그게아니고

참고 있던 거야

내 뒤통수를 때렸고 밥숟가락을 챙겨주었으며 뜨거운 물에 찬물을 타서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버스정류장에서 맹렬하게 으르렁거리며 싸우다가 다시 내리는 빗속에서 손을 잡았고 그 뒤로 삼 개월이 지났다.

저기서 우회전하는 게 빠르지 않아? 
아니야. 직진하다가 가는 게 나아.
저번에 그렇게 갔다가 신호 걸린다고 짜증냈었잖아.
그런 적 없어. 
전에 두 번이나 그랬었어. 전 전에는 택시타 고갈 때 아저씨도 그렇게 얘기하면서 가던데?
...
...

대답이 없을 땐 나도 입을 다문다. 그리고 침묵은 자주, 점점 길어져갔다.
운전 중에 늘 잡던 손은 무릎 위에 가지런히 포개 놓았고 그와 내 사이에는 핸드백이 자리 잡았다.

가방 들어줄까?
아니야. 괜찮아.
왜, 무겁잖아.
괜찮아. 내 건 내가 들게.
그래, 그럼.
...

내 것과 네 것이 가려지고 관계가 담백하면서 융통성 있게 형성되었다.
바쁘면 다음에 만나고 불편하면 집에 가서 쉬고 통화 대신 간단한 톡으로 끝냈다.
그리고 다툴일이 적어지면서 젠틀 한 연애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 냉방기가 가동되는 듯 어색하고 팔뚝이 시린 듯 서늘했다. 이 어색함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오후에는 영화도 기다렸다. 그가 손을 슬쩍 잡고는 팝콘을 먹자고 했다.
영화예매를 내가 했으니 자기가 사겠다고 먹고 싶은 것을 고르란다. 나쵸 하나랑 콜라면 충분했고 맛있게 먹으며 영화에 몰두했다.  러시아 출신 제임스는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제임스 생각을 하며 집에 왔다. 제임스의 다른 영화들을 검색하며 즐거워했다. 제임스는 나이가 많아도 매력적이고 젠틀 하고 파워가 짱이고 제임스에 어울릴 여자라면 이 여자들처럼 아름다워야 할 텐데 그럼  지금부터 살이라도 빼야겠고 마스크팩이라도 붙여야지. 제임스 생각으로 일주일을 보냈다.
주말이 지나가고 있었다.
스마트폰은 조용히 제임스만 보여줬다.

-뭐해?
-그냥 있어.
-그래

월요일 저녁에 전화가 왔다. 


뭐해?
그냥..
나한테 할 말 없어?
뭐?
그냥이라니까..
... 자기가 나한테 맨날 하는 말인데.. 그냥.
...
...
... 갑자기 왜 그래?
뭐가?
요즘 잘 지냈잖아. 
잘이라고?
응. 난 요즘처럼 행복한 적 없어. 근데 갑자기 연락도 안 하고 안부도 안 묻고.. 왜 그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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