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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s drawing Apr 08. 2016

발아에 성공했어

나무심기 좋은 날

한참 전시 준비로 바쁠 때 야참으로 배를 채워준 레몬청(선물 받았던)을 한통 비우고 아쉬운 마음에 직접 만들어보겠다고 레몬을 한 바구니 샀다. 굵은소금으로 박박 문지르고 베이킹소다에 담갔다가 다시 닦고 어찌나 법석을 떨었는지 부엌은 난장판이 됐고 엄마의 눈 쌍심지에 불이 켜졌다. 그러면서도 칼을 갈아주신 어머니께 감사.


엄마가 시집간다고 할머니께서 미리 준비하셨던 유리그릇에 키친타올을 깔았다.

편으로 잘 썰어 두고 꼭지 쪽은 즙을 짜고 유리병에 켜켜이 쌓으면서 설탕을 털어 넣는다. 병들을 가득 채우고 마무리를 하다 보니 도마 위에 레몬씨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그냥 버리기에 아까운 생각이 들어 레몬씨에 대한 검색을 시작했다.

역시.. 블로그엔 없는 게 없다.


레몬 씨앗 발아하기!

유리그릇에 키친타월을 깔아주고 물을 붓고 씨앗들을 듬성듬성 뿌린 다음 책상 한편에 두었다. 그 사이 점점 쌓아 올려진 잡동사니에 가려져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서울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돌아왔을 땐 바싹 마른 그릇만 덩그러니 있었다.

아.. 책임 감 없이 이렇게 끝나버리다니.

미안한 마음에 씨앗이 동동 뜰 정도로 물을 부었다. 혹시 모를 일 아닌가. 그리고  또 까마귀 고기를 먹고  장기 출타를 하고 말았다.

 "이게 뭐야?"

엄마가 설거지를 한다며 책상을 뒤적거리며 여기저기 숨겨진 컵들을 찾다가 유리그릇을 보고 물었다.

또 바싹 말라있는 그릇이 나타났다.

책상을 치울 때가 왔구나 싶어 정리를 시작하는데 마지막에 그릇이 남았다. 내가 잊고 있는 동안 무슨 일은 없었겠지. 결국 죽었구나. 불쌍한 레몬들..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

딱딱한 씨앗 사이로 초록 점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살펴보니 한 개를 빼고는 모든 씨앗에 뾰족한 초록 점이 있었다.

발아에 성공했어!!


이렇게 기특할 수가.
고맙기도 하고 내쳐진 며칠 동안 딱딱한 껍질을 뚫고 나온 싹들이 그렇게 귀엽고 예쁠 수가 없었다. 조금 더 물을 채워주고 하루하루 기다리는데 그만큼만 나오지 더 이상 길어지지 않았다. 또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가 급작스럽게 장기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이를 어쩐다. 간신히 살아온 아이들을 또 죽이게 생긴 것이다. 히아신스 알뿌리를 심으려고 준비해두었던 화분에 물기를 채우고 손가락 두께로 흙을 파서 무작정 발아한 씨들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약간 오목한 그릇에 물을 가득 부어 화분 밑에 받쳐주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며 집을 떠났다.

10일이 지나 집에 와보니 역시, 화분의 흙은 바싹 말라있었고 바쳐둔 그릇도 텅 비어있었다. 다시 물을 채우고 따듯해진 봄볕에 내어 놓았다.
어느 새벽,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흙을 파 보았다. 아마 아무것도 없으면 화분도 버릴 작정이었는보다.

'말라죽은 건가?' 하고 손가락으로 뒤적거리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역시... 말라죽었구나.  하긴, 살아있다면 그게 더 신기하지.' 하면서 반대쪽 흙을 손가락으로 파는데  뭔가 허연 길쭉한 것이 쑤욱 뽑혔다. 벌레인 줄 알고 깜짝 놀랐는데 길쭉이 끝에 낯익은 레몬씨가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게 아닌가.

'세상에나, 살아있었구나.'

아직 날은 어두웠고 다시 흙을 덮어두고 잠을 자러 갔다. 물을 주었던 듯한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고 꿈인가 착각을 하면서 베란다에 방치해두고 말았다. 또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며칠 전에 화분을 다시 발견하고 물을 주었는데(혹시 모르니까.) 화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보니 싱긋한 얼굴들이 올라와 있었다. 잠든 사이 토토로라도 왔다 간 건가?

저 작은 씨앗들이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은 나에게 곱디 고운 얼굴을 보여주었다.

이쁘고, 고맙고, 고마워라. 위로받았다.

우울증 환자는 화분을 죽이고 화분은 우울증 환자를 치료한다고 한다.

내게 이렇게 새 생명의 기쁨을 맛보게 해 준 레몬들에게 고맙다. 쑥쑥 커서 곱절의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길 바란다.(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물을 한번에 부어버려서 물에 쓸렸었는지 싹들이 한쪽에 몰려있다.

오늘부터는 사랑을 듬뿍 주며 사랑의 레몬나무로 가꾸어야지.

세상이 멸망한다 해도 레몬나무를 심겠다.


나무를 심읍시다!

씨앗을 발아시킵시다!

삶이 씨앗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오길 희망한다.

우리 모두.



그리고 '트리플래닛'
http://www.treepla.net/

오드리 헵번의 자녀들이 처음 트리 플래닛에 제의를 했고 첫 펀딩금액을 기부하면서 진도 백동 무궁화동산에 세월호를 위한 '기억의 숲'이 조성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은 손길로 완공되었고 은행나무들이 가득 심어졌다. 은행나무는 한번 심으면 천년을 간다고한다. 가을의 노란 은행잎은 추모의 색이 되어 세상을 물들일 것이다. 오드리 햅번은 유언으로 아들 션 햅번에게 유산을 좋은 곳에 써주길 바랬고 실제로 좋은일에 압장서고 있다고 알고있다. 우리나라에 두군데 지점의 '오드리 헵번 카페' 수익금도 이런 일에 사용된단다. 지인의 소개로 합정점에 방문했었는데 정성호(땀쟁이)씨도 만나고 멋진 라테 잔도 구입했다.



'기억의 숲' 완공식이 이번 주 토요일에 있단다. 선착순 100명의 명단에 감사하게도 내가 들어가게 되어 진도를 방문할 예정이다.


관련뉴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5&aid=0000396085
제목이미지 팝업북 'wake up, slo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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