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가우디의 도시

by Zak


외국에 살다보니 어느 때보다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다. 외국인과 얘길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그럼 한국은 어떤데?"란 질문이 따라오는데 그때마다 평생을 한국에 살았으면서도 머뭇거린다.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은 어디야?"란 질문에도 침묵은 이어진다. 내 대답이 그대로 그들에게 한국의 이미지가 될 수 있단 생각에 신중해진단 건 핑계고 그냥 몰라서, 정확히는 한국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어서 쉬이 답을 할 수가 없다.


런던 '던트북스'에 갔을 때 한국 가이드북을 찾아봤던 건 그 때문이었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책장에 진열된 많지 않은 몇 권의 한국여행책자릉 보다 '론리플래닛 서울편(2016년 개정판)'에 눈이 멈췄다. 표지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가 있었다. (볼 땐 DDP라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려고 하니 진짜 맞는 건지 확신이 안 선다. 아무리 뒤져도 표지 사진에 대한 설명은 찾을 수가 없었다.) 보통 외국인에게 한국을 소개할 때 궁궐 등 전통적인 공간과 문화에만 치중해왔기에 현대적인 건축물이 대표 사진인 것이 꽤나 신선했다.


DDP는 일제시대 지어진 동대문 운동장이 헐린 자리에 2014년 들어섰다.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작품으로 세계 최대 3차원 비정형 건축물로 꼽힌다. 하지만 이 작품은 시작부터 '불시착한 우주선'이란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완성된 뒤엔 지역성과 역사성 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혹평도 이어졌다. 아직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겠지만, 점차 전시 공간으로 또 출사족들이 찾는 명소로써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 하다. 지난해엔 미국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2015년에 꼭 가봐야 할 명소 52곳'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바르셀로나_가우디의 도시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가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이미지라는 데 이견을 보일 사람은 없을 듯 하다. 바르셀로나에는 그의 흔적이 잔뜩 묻어 있다. 구엘 저택, 구엘 공원,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 등 길을 걷다 눈길을 줄 수밖에 없는 건물들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유럽 여행을 계속하다보면 비슷한 성당과 건물에 눈이 더 이상 즐거워지지 않는 순간이 온다. 하지만 유럽 뿐 아니라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물에 모두들 이 곳을 찾는다. 가우디는 전 세계 사람들을 바르셀로나로 이끄는 구심점이다.


@레이알 광장 내 가스등


흥미로운 건 지금 봐도 독특한 건축 양식이 백 여년 전에도 '아름답다'고 받아들여졌다는 점이다. 빠르게 변하던 시대였지만 여전히 다름이 배척당할 수 있었음에도 바르셀로나 시(市)도 부자들도 가우디의 작품을 인정했다.


레이알 광장에 있는 가스등은 가우디의 초기 작품이다. 당시 바르셀로나 시는 거리에 가로등을 설치하기 위해 공모전을 개최했다. 그때 당선된 게 가우디다. 하지만 설치비가 비싸 시 당국이 가우디와 비용 문제로 승강이를 벌이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가우디는 다시는 바르셀로나 시 당국과 일을 하지 않겠다고 이를 갈았다는데 실제로 그랬다. 당시 시범 삼아 만들었던 가스등 몇 개만 현재까지 레이알 광장에 남아 있다.




누가 뭐래도 가우디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구엘'이다. 구엘은 가우디가 제약 없이 자신의 역량을 모두 발휘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구엘 저택'이라 불리는 구엘의 집 입구에서부터 철을 종이처럼 자유자재로 활용했던 가우디의 특징이 나타난다. 대문은 작은 문뿐 아니라 전체가 열리도록 만들어졌다. 주인이 마차에서 내려 집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집 안에 주차장(마굿간이라고 해야 하나)을 둬 바로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서 내릴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구엘 저택



자연과 기능, 아름다움을 모두 생각한 건축


구엘 공원은 원래 교외 지역 전원주택 단지로 구상됐으나 완성되지 못한 채 현재는 대중에게 공원으로 개방되고 있다. 공원을 걷다보면 자연을 스승으로 삼았다는 가우디의 생각들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길을 낼 때도 사람이 편하기 위해 직선 도로를 마구 내지 않았다. 자연과 조화를 이룰 방법을 고민했다. 그가 만든 터널의 다리 모양은 주변 나무 그루터기, 수풀들과 잘 어울린다. 건축에 사용된 돌 역시 이곳 터를 다지며 나온 것을 활용했다고 한다.


이 곳의 상징과도 같은 도마뱀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저장고에 물이 어느 정도 채워져있는지를 알려주는 도구이기도 했다. 도마뱀 위로 난 계단을 올라가면 그리스 신전 기둥들이 나타나는데 이것들 역시 단순한 기둥이 아닌 빗물을 저장하는 물탱크다. 누가 저 안으로 물이 흐르고 있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기둥들 사이 공터는 시장이 들어설 자리였다. 빗물이 흐르는 기둥 위쪽을 쳐다보면 올록볼록한 천장이 있는데 구름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비와 구름의 재미있는 조합이다. 구름 모양 천장에는 또 하나의 비밀이 있다. 소음 방지를 위해 계란판을 붙이듯 이것 역시 소음을 막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가우디는 디자인도 놓치지 않았다. 이 아래를 걷는 사람들은 모두들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 위를 바라보게 된다. 화려한 색의 타일 조각 장식 때문이다. 각양 각색 조각들을 붙여 만든 작품에는 깨진 접시, 빈병 등이 재활용됐다고 한다.






@그냥 구불거리는 모양으로 만든 듯한 벤치처럼 보이지만 사람이 앉았을 때 닿는 부분들이 적절하게 나오고 들어가게 만들어져 있어 의자가 딱딱하지만 편하다고 한다.





가우디가 생각한 집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가우디에게 부자들은 자신의 집을 지어달라고 요청했다. 공동 주택인 카사 밀라와 한 권의 동화책 같은 카사 바트요는 각기 다른 매력으로 사람들을 매혹한다.


카사 밀라의 매력 포인트는 옥상이다. 옥상엔 황토빛 단색의 환기구들이 조각상처럼 서있다. 옥상을 한바퀴 돌며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면 파도를 타는 느낌도 나고, 사막의 모래언덕을 거니는 기분도 든다. 항상 붐비는 곳이지만 옥상에서 내려와 내부를 둘러본 뒤 옥상 마감 시간에 임박해 한번 더 올라가면 사람도 없고 야경도 즐길 수 있다.


@카사 밀라. 옥상산책이 묘미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바르셀로나에서도 신도시 개발이 이뤄졌다. 과밀화되고 미로같은 구도심 고딕지구를 떠나 부자들은 쭉 뻗은 대로, 그라시아 거리로 모여들었다. 섬유와 직물 사업으로 큰 돈을 번 바트요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바로 옆집과 조금 떨어진 집의 외관은 화려했으나 그의 집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바트요는 가우디에게 자신의 집 리모델링을 맡겼다. 그는 어린 자녀들을 고려해 '동화'와 같은 집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카탈루냐 수호성인 산 조르디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이 집을 찬찬히 살펴보면 공주를 구하기 위해 조르디가 물리친 용과 용이 죽으면서 흘린 피에서 피어난 장미를 찾아볼 수 있다. 매년 4월 23일 산 조르디 축일이 되면 카사 바트요 외관은 온통 장미꽃으로 뒤덮힌다고 한다.


사실 카사 바트요는 외관보다 내부가 더 흥미롭다. 집 안 곳곳을 흐르는 곡선과 아이들의 동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재치있는 디자인이 합쳐져 찬찬히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특히 방 문 위 색 유리에 햇살이 비치면, 성당 스테인드 글라스처럼 빛나는 창을 넋놓고 보게 된다. 손수건 가운데 부분을 잡고 시계방향으로 돌려 모양을 잡은 듯한 회오리모양의 독특한 천장에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카사 바트요





많은 사람의 인생이 담긴 사그라다 파밀리아


"우리 칠순 여행으로 여기 또 와야겠다. 완공된 거 보러."


"꼭 또 오자"


사그라다 파밀리아 앞에서 한없이 성당을 바라보고 있을 때 익숙한 한국말이 들렸다. 그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뜬 모습으로 내 앞을 지나갔다. 환갑을 맞아 친구들끼리 단체 여행을 온 듯 보이는 이들에게선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와 웃음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들뿐 만이 아니다. 여기 저기서 많은 사람들이 "완공되면 보러 오자" 혹은 "다시 와서 완성된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함께 온 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1882년 공사를 시작해 아직도 진행 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2026년 가우디 사후 100주기를 완공 목표로 하고 있다. 가우디는 31세부터 공사에 참여해 40여 년을 바치고도 완공을 못 본 채 세상을 떠났다. (물론 그는 자신이 완성하지 못할 것을 이미 예견했다고 한다) 노년엔 다른 설계 일은 하지 않고 온전히 성당 건축에만 힘을 쏟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와 생을 함께 한 건 가우디뿐 만이 아니다. 가우디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성당 공사에 참여한 건축가, 조각가 등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멋모르고 열정 하나로 뛰어들었던 청년은 어느덧 후배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는 초로의 나이가 됐다. 이곳을 찾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 이곳을 다시 온다면 이전과 달라진 모습에 세월의 흐름을 한껏 느끼게 될 것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앞에 서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성당 주변을 여러 번 돌면서 이리저리 구석구석 살폈다. 멀리서 봤다가 가까이 가서 조각들 하나하나를 봤다 하며 예수님의 탄생과 수난과 영광에 대해 생각했다. 가우디가 많은 부분을 작업했다는 탄생의 파사드, 가우디와 완전 다른 형식으로 선과 면을 이용해 조각된 수난의 파사드를 비교해서 봤다. 수난의 파사드를 조각한 조각가에게 쏟아졌다는 비판을 생각하며 그의 중압감이 어땠을지 감히 헤아려봤다.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조각에 넣었다는 가우디. 그런 가우디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정작 그의 얼굴은 남아있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며 남은 이들이 가우디 얼굴을 조각 인물 중 하나의 얼굴로 새겨넣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조각과 그의 얼굴 사진을 한 데 놓도 보기도 했다. 한 세기 넘게 이어진 이 거대한 프로젝트에서 희노애락을 모두 경험했을 사람들도 떠올렸다.


다시 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에 발걸음은 더디기만 했다. 완공된 모습을 보러 언젠가 다시 갈 수 있을까.







@사그라다 파밀리아 정문(오른쪽 끝)이 아직 완공되지 않아 현재는 같은 모양을 인쇄한 가림막으로만 만날 수 있다. 문에는 각국 언어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적혀 있다. 한국어도 찾아볼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러시아로 떠난다_#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