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정답은 없다지만, 나는 정답을 배워왔다. 여성적, 남성적, 가족적. 세 글자 남짓한 단어 안에 함축된 기준이 꽤 빡빡해서, 정해진 규격을 만족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난 부분을 깎고 부족한 부분은 임시로 빌려와서라도 나를 정답에 맞춰야만 한다. 정답을 벗어난 자에게는 낙인과 차별이 형벌처럼 따라와 상처를 안기기 때문이다. 딱지가 앉을라치면 또다시 긁히는 과정이 수도 없이 반복되다 어느새 상처는 흉터가 되어 콤플렉스로 남는다. 시도 때도 없이 욱신거리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통에 매 순간마다 콤플렉스가 발목을 잡는다. 콤플렉스! 그것이 문제이다.
풋풋한 두 주인공 수지, 병현
kbs 드라마 스페셜 ‘사교 땐스의 이해’는 두 대학생 수지와 병현이 콤플렉스를 함께 극복해나가는 스토리이다. 방법은 사교와 땐스이다. 핵인싸 병현과 파워아싸 수지는 교양 수업 '사교댄스의 이해' 에서 댄스 파트너가 된다.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연말 공연에서 파트너십을 선보여야 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정해진 규격과 맞지 않는 신체 조건 때문이다.
한수지는 여자치고 너무 크고, 이병현은 남자치고 너무 작다. 남자가 리드하고 여자가 따라와야 하는 사교댄스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역할을 짊어지고 낑낑댄다. 주변의 비웃음은 물론이고 본인의 콤플렉스를 마주해야만 하는데다가, 수지에게 병현은 그녀가 대학 생활 내내 아싸 길을 걷게 한 단초를 제공한 인물이기에 댄스는 차치하고 사교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남자치고 너무 작은 파트너라서...미안하다. 너 표정이 너무 안 좋길래."
해결의 실마리는 의외로 콤플렉스에 있었다. 문제의 원인이 수지의 큰 키에 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격지심에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병현은 자신감의 원천이면서 생존용품과도 같은 깔창에서 내려와 본연의 모습으로 수지를 마주한다. 그의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에 수지의 마음이 움직인다.
병현은 수지가 털레털레 들고 가던 구멍 난 뻥튀기 봉지에 밴드를 붙여준다. 깔창때문에 생긴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가지고 다니던 반창고가 수지의 상처받은 마음도 치유하는 것만 같다. 상처를 공유한 두 사람은 서로를 파트너로 받아들인다. 함께 춤을 추기로 결심한다. 조기졸업만이 목표인 수지의 대학 생활에 처음으로 잘해보고 싶은 일이 생긴다.
“나 진짜 잘하고 싶어. 비웃는 사람들한테만큼은 절대 지기 싫어.”
두 사람에게 춤이란 세상의 편견에 맞서고, 자신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저항과 자유의 몸짓이었다. 큰 키를 감추려 쥐며느리처럼 늘 움츠려 있던 수지와, 작은 키를 숨기려 복어처럼 자신의 존재를 한껏 부풀리던 병현은 사교와 댄스를 통해 자신의 무게를 알아간다. 그 과정이 마냥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자신의 과거와 콤플렉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부끄럽고 속상하고 슬프다. 그래서 때론 도망치기도 한다. 하지만 수지와 병현은 이제 함께 춤을 추는 서로가 있다. 무너질 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워주는 파트너가 있기에, 때로 스텝이 꼬이고 박자가 밀리더라도 춤 추기를 멈추지 않는다. 어느 새 그들의 일상이 춤으로 피어난다.
"다른 애들이랑 다르게 추면 어때. 답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것대로 너네만의 춤이 되는거지. 너희의 춤."
이제 수지와 병현은 정해진 규격에 맞추려던 노력을 멈추고, 그들만의 새로운 문법으로 춤을 춘다. 가볍고, 자연스럽고, 감동적이다. 무엇보다 자유롭다. 이 세상에서 오로지 수지와 병현만이 출 수 있는 춤을 완성시켰다. 정답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당신만의 춤을 찾으라는 메시지가 이보다 더 마음에 와닿을 수 없었다. 공연을 끝마친 수지와 병현의 뒷모습에 눈물이 핑 돌았던 이유이다. 신도현 배우와 안승균 배우의 풋풋하고 매력 넘치는 연기, 감각적인 연출, 적재적소에 맞는 음악, 청량함이 넘치는 영상미까지 100점 만점에 100점을 주고 싶은 사랑스러운 단막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