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
치아에는 시간이 새겨진다.
나이테처럼 치아에는 내가 살아온 흔적이 쌓여간다.
작은 흠집과 치료 자국들, 때로는 부서졌다가 다시 맞춰진 흔적까지.
나는 치아 뒤쪽에 철길이 있다.
중학교 졸업 선물로 교정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내 입속엔 윗니와 아랫니를 지지하는 철사 두 개가 남아 있다.
얼마 전, TV 앞에서 예능을 보며 사과를 한입 깨물었다.
단단한 과육이 아랫니를 감싸는 철사를 밀어냈다.
덜렁덜렁한 철사가 거슬렸지만 치과에 가는 건 여전히 두려웠다.
거울을 볼 때마다 앞니가 점점 벌어졌다.
치아 사이로 카드 결제도 가능할 것 같았다.
아, 돈이 많이 나올 것 같다.
집 앞에 새로 생긴 치과를 찾아갔다.
하얀 이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고 있는 간판 속 모델처럼, 치과도 새하얗고 넓었다.
365일 진료하는 곳답게 사람들이 북적였다.
어림잡아도 1시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재교정을 권하겠지.’
전에 한 치과에서도 교정 효과가 떨어졌다며 넌지시 다시 교정을 하라고 했었다.
앞니에 또다시 철길이 생기는 건 절대 안 된다.
급히 핸드폰을 꺼내 익숙한 곳을 검색했다.
연륜과 자부심이 느껴지는, 본인의 이름 석 자를 그대로 내건 퍽 투박한 치과.
나는 그곳에서 유치도 뺐고, 금니도 몇 개 떼웠고, 치과 검진도 받았고, 교정도 했다.
보철기를 제거했을 때의 그 만족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내 이는 모난 데 없이 가지런했고, 하얬다.
“네, ○○○치과입니다.”
신호음이 짧게 울리고, 중년 여성의 사무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예전에 교정 진료를 받았는데요, 철사가 떨어져서…”
“네, 오세요.”
“아, 예약은 언제로 하면 될까요?”
“그냥 오세요.”
“예약은 안 받으시는…”
“그냥 오시면 돼요.”
아, 이곳은 여전하구나.
어쩐지 치과 가는 날이 묘하게 기다려졌다.
간판을 올려다봤다.
치과 이름이 크게 쓰인 청록색 간판이 묵묵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참 오랜만이었다.
그 건물 1층에는 미용실과 약국이 있다.
건물이 처음 들어섰을 때부터 있던 곳들이다.
마을 어귀를 지키는 장승처럼,
그곳은 떠나간 사람들의 기억을 묵묵히 지켜내고 있었다.
문을 열기 전, 살짝 긴장됐다.
어릴 적, 진료실 문 앞에서 잔뜩 겁을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옆집 동생이 이 치과에서 울고불고 떼쓰다가 원장님한테 호되게 혼난 뒤로 다른 사람이 됐다는 구전설화도.
문을 열었다.
배치도, 구도도 하나 바뀐 게 없었다.
좁은 데스크 한켠에 가득 쌓인 진료 차트부터 ㄷ자로 배치된 대기 쇼파와 중앙 테이블까지.
심지어 TV도 여전히 Xcanvas다!
자연스럽게 TV 밑의 책장으로 시선이 갔다.
그곳엔 항상 밍크, 윙크, 소년 챔프 같은 만화 잡지가 꽂혀 있었다.
긴 대기 시간 동안 만화책을 읽으며 ‘나도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꿈꾸던 순간이 떠올랐다.
이제 만화 잡지는 다 사라졌다.
요즘 내 관심사는 진로보다 가계다.
만화책 대신 경제 서적을 꺼내 들었다.
트럼프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에 관한 책이었다.
읽는 내내, 갑갑했다.
“들어오세요.”
곧 내 얼굴에 구멍 뚫린 초록색 천이 덮였다.
천 사이로 들어오는 밝은 빛이 감각을 깨웠다.
윙, 윙, 윙.
날카로운 소리가 고막을 긁었다.
잇몸 깊숙이 파고드는 기분 나쁘게 시린 통증이 치주를 타고 찌릿찌릿 흘러들어왔다.
“끝났어요. 원장님 곧 오실 거예요.”
치위생사는 경력이 오래돼 보였다.
무심하고 정확했다.
날카로운 치과 도구들을 오차 없이 정리했다.
원장님이 오셨다.
진료 차트를 한 장씩 넘겨보더니 의자를 젖혔다.
나는 이제 혼날 일만 남았다.
“철사 다 떨어졌네요?”
그때 그 경상도 억양이다.
딱딱하고 좀 무섭다.
“네.”
“왜 이제 왔어요?”
원장님의 눈매는 여전히 날카롭다.
이마엔 주름이 깊어졌고,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늘었다.
“아… 이사를 가서…”
“여기서 멀어요?”
“아주 먼 건 아닌데…”
“앞니 다 벌어졌잖아요.”
“죄송합니다.”
순간 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치과 의자가 교실 의자처럼 느껴졌다.
혼나면서도 그 목소리가 반가웠다.
솔직히 치과가 사라졌을 줄 알았다.
시간은 많은 것을 바꾸고 지나간다.
나도, 가족들도, 함께했던 사람들도, 그리고 추억이 담긴 공간들도.
나이가 든다는 건 상실에 무뎌지는 일이다.
우리는 상실에 익숙해지는 법을 배우고, 덜 아파하는 법을 익힌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아쉽고, 애써 피하고만 싶다.
진료를 마치고 가려는데, 원장님이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치비만 내고 가요. 다음주 주말에 한 번 더 오고요.”
원장님은 친절하진 않지만, 과잉 진료도 없는 사람이다.
우리 가족은 몇 번 다른 치과에 도전했지만 결국 여기로 돌아왔다.
부모님은 늘 말했다.
“거기가 잘하긴 잘해.”
의료가 산업이 된 시대.
이 치과는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을 지킨다.
키오스크도, 예약 시스템도, 화려한 인테리어도 없이 오직 진료만 남아있다.
진료기록부엔 여전히 내 정보가 수기로 남아 있다.
1998년부터 2025년까지의 기록.
어린 시절에는 무서운 곳이었던 이곳이,
이제는 마음의 고향이 되어 있었다.
차에 올라탔다.
다음 진료 날짜를 캘린더에 기록했다.
치과 맞은 편에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가 보였다.
울타리가 밋밋해 보였다. 내가 다닐 때는 장미꽃이 있었다.
초록색 울타리를 타고 오르던 장미 덩굴이 탐스럽게 참 예뻤다.
작은 손으로 장미를 조심스럽게 만져보다가, 정말로 장미 가시가 뾰족한지 궁금해서 손을 가까이 대봤다.
아야! 빨갛게 피가 배어났다.
장미는 아름답지만 위험한 존재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린 나는 삼십 년이 지나도 그 순간의 선명함을 기억할 줄 몰랐다.
변치 않는 공간이 주는 위로란,
이토록 강력한 것이었다.
차창 밖으로 익숙한 거리가 흘러갔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참 다행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