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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asha May 29. 2020

나를 보내지 마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고

 청소년 시절에 열렬한 기독교 신자였다. 태어나자마자 세례를 받긴 했지만 부모님과 함께 교회를 가본 기억은 없다. 주님의 어린양이 되겠노라며 신의 울타리 안으로 걸어 들어간 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종교의 울타리를 빠져나와 무교가 된 지금, 청소년기의 불안정한 자아를 의탁했던 곳은 사실 교회가 아니라 교회 친구들이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나는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았기에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은 교회밖에 없었다. 중학교 시절 단짝 친구들에게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적어도 교회 안에서는 우리의 우정이 속세의 그것을 뛰어넘었다는 환상을 공유할 수 있던 덕분이다. 


 낯을 가리고 어딘가 냉정한 구석이 있는 나와 달리, 친구들은 밝고 친절했으며 특유의 생동감이 어디서든 빛났다. 그들은 신에 대해서도 열정적이었다. 신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교회 일도 열정적으로 해냈기에 언제나 모임의 중심이 되었다. 나는 그들과 늘 함께였지만 존재감은 미미했다. 나의 열정을 이해가 안 되는 성경 구절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데에 애쓰다 보니 에너지가 금방 고갈되었다. 예를 들어 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는데 내가 벌 받아야 하나. 욥에게 깨달음을 주려 자식들을 죽였다면, 죽은 자식들은 뭔 죄냐. 하나님에게 욥의 자식들은 수단일 뿐인가. 류의 신성모독격인 질문들이었다. 


 언젠가 온탕과 냉탕 중 어느 곳이라도 몸을 담그라는 설교를 들었다. 우리에게 미지근하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 기독교인의 자세인가 물었다. 목사의 말을 경청했지만 마음속에선 걱정의 파도가 일렁였다. 어렸을 때 들었던 충격적인 말이 다시금 떠올랐기 때문이다. 10살 때인가, god의 거짓말이 유행했을 때 나도 누구나처럼 god를 좋아했다. 같은 반 친구가 물었다. 혹시 god를 좋아하느냐고. 나는 god를 제일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친구가 다시 물었다. 혹시 핑클을 좋아하느냐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친구가 또 다시 물었다. 혹시 신화도 좋아하냐고. 얼핏 스쳤던 사진에서 잘생겼던 기억이 나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친구가 한 숨을 푹 쉬더니 이렇게 말했다. 

 “너는 잡팬이야. 언니들이 그랬는데 팬지오디는 안티팬보다 잡팬을 더 싫어한대.” 


 하나님 역시도 냉탕 인간보다 미지근탕 인간을 싫어한다는 사실이 대단한 충격이었다.  기도 시간에 실눈을 뜨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친구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눈물을 쥐어짜려고 노력했지만 도무지 눈물이 나지 않았다. 원체 말이 많은 편이 아니라 이야기를 듣는 게 편한데, 10분 넘게 나 혼자 이야기하는 것이 상당히 곤욕스럽기도 했고 낯간지러웠다. 다시 눈을 감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것은 단절의 눈물이었다. 나는 어딘가에도 속하지 못하는 회색 인간이구나. 만약 정말로 하나님이 있다면, 목사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이 예배당에 계신다면 저마다 빛을 내고 있는 친구들 사이에 회색 인간으로 존재하는 나를 그냥 지나쳐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존재의 문제였다. 하나님이라는 연결 고리가 끊어지면 우리의 우정도 끝이 나고, 우정이 끝이나면 사회적 인간으로서 ‘나’역시도 사라질 것이다. 기도 시간이 끝나고 나와 친하지 않던 교회 언니가 먼저 말을 걸었다.


  “지선이가 드디어 은혜 받았구나.”


 스무살 즈음 신의 울타리를 스스로 떠났다. 그것은 인생의 사건이었다. 모태 신앙이었던 내가 무교가 된다는 것은 태어난 순간부터 구축해 온 세계관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의미였다. 그 안에 가장 크고 화려하게 자리 잡은 우정의 방 역시도 파괴될 것이었다. 얼마간 친구들을 멀리했다. 파괴당하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내 손으로 파괴하는 것이 한결 낫다고 생각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 안에서 나를 발견했다. 저마다의 색을 가진 친구들 사이에 유일하게 색채가 없는 쓰쿠루가 15년 만에 그를 버린 색깔들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많은 공감과 위로를 얻었다. 다른 점은 쓰쿠루가 친구들에게 이유도 모른 채 버림받았다면 나는 내가 먼저 마음속에서 친구들을 밀어냈다는 것이다. 버림 받는 것보다 먼저 돌아서는 것이 덜 아프리라는 지극히 이기적인 선택이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우정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는 중이다. 기독교이지만 더 이상 교회를 다니지 않는 친구도 있다. 10년 전에 친구들은 연락을 끊은 나를 먼저 찾아주었다. 가장 놀랐던 것은 내가 그들의 인생에 얼마간의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색깔을 주면서, 생각의 모양을 지어주면서 그렇게 함께 순례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서른 살을 앞둔 작년 12월, 우리는 조촐하게 파티를 했다. 치열하고 위태로웠던 20대를 함께 지나온 것을 자축하며, 아픔과 환희의 조각들을 함께 나눠 가진 것을 감사하며 잔을 부딪혔다. 입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모두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우리 앞에 펼쳐진 길이 갈래갈래로 나눠지고 있다는 사실을. 몇몇은 결혼을 했고, 몇몇은 먼 곳에 발령이 났다. 관심사가 달라졌고, 주고 받는 의견이 때때로 일치하지 않기도 했다. 미세한 떨림과 불안함을 감춘 채 요란하게 웃고 배가 터지도록 음식을 먹으면서 축제를 즐겼다. 먼훗날 되돌아봤을 때 우리가 그 시간 그 장소에서 함께 행복했었다는 것. 그것이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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