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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asha Nov 23. 2020

아름다운 어른이 되는 법

영화 '미성년' 리뷰

*이 글은 영화 '미성년'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지만 유일하게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나이’이다. 아직 ‘나이’를 얻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도 매년 1월이 되면 입에 떡국을 억지로 밀어 넣으며 나이를 입력한다. ‘성년’이 되는 데에는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지 않다. 떡국을 19번 먹으면 된다. ‘성년’이 됨과 동시에 ‘미성년’일 때 누릴 수 없던 자유와 권리의 세계가 펼쳐진다. 12월 31일 자정이 지남과 동시에 당당히 민증을 내밀고 술과 담배를 사는 갓 ‘성년’의 모습에서 누군가에게는 ‘미성년’과 ‘성년’의 경계가 ‘1분’만큼이나 사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영화 <미성년>(2019, 감독 김윤석)은 아이같지 않은 아이들과 어른같지 않은 어른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주리(김혜준 분)와 윤아(박세진 분)는 특별한 관계로 얽혀 있다. 주리의 아빠(김윤석 분)와 윤아의 엄마(김소진 분)는 불륜 중이다. 불륜으로 모자라서 아이까지 가졌다. 이 사단이 일어나는 동안 어른들의 세계는 평안하다. 주리의 엄마(염정아 분)는 불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고, 주리의 아빠는 금지된 사랑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허우적댄다. 윤아의 엄마는 불러오는 배를 쓰다듬으며 천하태평하게 출산을 기다리고 있다. 난리가 난 쪽은 아이들이다. 모범생인 주리는 불륜 사실을 확인하려 학원도 빼먹은 채 아빠의 뒤를 미행한다. 가정의 평화를, 엄마의 평안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윤아는 당장 생계가 걱정이다. 엄마와 윤아, 둘만으로도 빠듯한 가정 형편에 아빠 없는 아이가 또 한 명 생긴다는 것은 윤아의 생존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어떻게든 출산을 막기 위해 주리 아빠에게 협박 문자를 보내고 주리의 엄마에게 불륜 사실을 알린다.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커다란 소용돌이가 일어나지 않는다. 주리의 엄마는 평상시처럼 아침을 챙기고 주리의 아빠는 바쁘게 회사에 출근한다. 남편과 자식을 일터와 학교에 보내며 자신의 의무를 다 끝마친 후에야 주리의 엄마는 행동에 착수한다. 그녀는 우아한 차림으로 윤아의 엄마가 운영하는 식당을 방문해서 메뉴를 주문하곤 남편의 불륜 상대를 샅샅이 살핀다. 어떠한 고성도 오가지 않는다. 침착하게 끓어오르는 감정을 최대한 억누를 뿐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한바탕 결투가 벌어진다. 두 아이는 창문 유리가 깨지고 입술이 터지고 문이 박살나도록 매섭게 싸우고 나서야 진정이 된다. 그리고 그 날 윤아 엄마의 뱃속에 있던 ‘못난이’가 태어난다.


어른들이 만든 세계에 사는 아이들은 늘 우울하고 화나 있다. 어른들은 현실에서 도망가고, 아이들은 도망간 어른들을 잡으러 다닌다. 미성년자에게 허락되지 않은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윤아는 출생 신고를 하기 위해 동사무소에 서류를 제출하지만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주리는 아빠의 경제적 도움 없이는 지금과 같은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아빠에게 변명이라도 듣길 원하지만, 이 모든 사단의 원흉인 아빠는 네 여자를 농락하고 비겁하게 숨는다.


네 명의 여자들은 ‘못난이’를 중심으로 관계를 재편한다. 손바닥보다 작은 생명체가 아이들의 순수함을 회복시키고 어른들의 성숙함을 끌어낸다. 윤아와 주리는 ‘못난이’를 지키기 위해 뭉치고, 주리 엄마는 윤아 엄마를 용서하며 윤아 엄마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윤아와 주리는 ‘못난이’의 장례를 치른 뒤 폐 놀이공원으로 향한다. 현실에는 사라져버린 아이들의 세계에서 두 사람은 아이답게 밝게 웃고 마음껏 행복해한다. 윤아와 주리는 낡은 놀이기구에 앉아서 서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도 어른이 되면 변할까? 라고. 그리고 그들은 ‘못난이’를 기억하는 방법으로 ‘못난이’의 유골을 우유에 타서 마신다. ‘못난이’를 지키려 고군분투했던 미성년의 순수함을 성년이 되어도 잊지 않기 위해 입으로 밀어 넣는다. 아직 어른이 아닌 윤아와 주리는 그곳에서 아름다운 성년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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