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페인행 티켓, 2017
길을 잃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길을 걸어 대성당을 지나쳐 온 것 같은데,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은 요 며칠 익숙히 다녔던 곳이 아니다. 인적이 드물어지면 환한 대낮에도 긴장을 하게 된다. 왠지 골목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저 남자는 나를 향해 오는 것 같다. 잔뜩 긴장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스치고, 그를 신경 쓰느라 길을 돌아보지 못했다.
어둑한 골목을 되돌아가려니 미로처럼 얽힌 이곳에서 내가 지나 온 길과 아닌 길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인적이 드문 좁은 골목을 걷다 고개를 들어본다. 집집마다 널어놓은 빨래가 가득하다. 하늘 반 빨래 반. 왠지 안심이 되는 풍경이다. 사람들이 살고 있나 보구나. 당연한 생각을 그제야 한다.
그러고 나니 주변이 보인다. 난데없이 나타난 작은 카페. 아니다 술집인가. 아직 해가 지려면 한참 남았는데 서른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담배를 피우며 맥주를 마시다 나를 쳐다본다. 왠지 나도 그 곁에 앉고 싶어졌다. 커피를 한 잔 주문한다. 새하얀 백발의 노인이 커피를 내어주며 뭐라고 스페인어로 한참을 떠들었다. 알아들었을 리 없는 나는 그저 환히 웃었던 것 같다.
그때가 고딕 지구를 처음 갔던 날도 아니었고 그 후로 지금까지 수백 번 고딕 지구를 걸었지만, 나는 그날 내가 만난 고딕 지구가 진짜 고딕 지구라고 믿는다. 이방인에겐 왠지 모를 긴장감을 주는, 사람 사는 풍경. 구석구석 관광객들의 발길이 적은 길을 골라 다니며 모르는 골목이 없게 된 지금까지도 그때 내가 조우한 카페인지 술집인지 모를 그곳을 찾아내지 못했다.
아마 다시 가더라도 기억해 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구시가지의 골 목들이 그렇듯 오랜 바들은 구조마저 비슷하다. 심지어 낡아빠진 검정 베스트를 입고 있는 주인장들의 외모도 닮아 있다. 어쩌면 그날의 고딕 지구는 언젠가 꾸었던 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고딕 지구는 매번 다르다. 그리고 모두에게 다르다. 혼자 걸을 때 와 친구와 함께 걸을 때가 다르고, 지도를 펼쳐 들고 걸을 때와 멋모르고 걸을 때의 모습이 다르다. 그리고 이어폰에 흐르는 음악에 따라 다르고 맑은 날과 비 오는 날에도 다르다.
문득 당신의 고딕 지구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