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서 나를 구원하는 ‘인맥’의 재정의
제게는 아주 소중한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이방인으로 산 지 어느덧 10년, 9,000km라는 물리적 거리가 무색할 만큼 여전히 제 곁을 지켜주는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오후 햇살이 거실 깊숙이 들어올 때면, 저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리고 한국에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을 친구에게 전화를 겁니다.
우리는 보통 한두 시간은 훌쩍 넘길 만큼 긴 대화를 나눕니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포착한 생각들을 나누는 이 시간은 저에게 무엇보다 귀한 루틴입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대화의 꽃을 피우다 화제가 '인간관계'로 이어졌습니다. 친구는 최근 자신의 회사 생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친구의 팀에는 성격이 전혀 맞지 않아 사사건건 스트레스를 주던 직장 동료가 한 명 있었다고 합니다. 피하고만 싶은 존재였던 그를 대하는 태도가 바뀐 건, 한 강연에서 들은 '인맥'에 대한 새로운 정의 덕분이라고 했습니다.
인맥이란 내가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기꺼이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들의 목록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 역시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잠시 말을 멈추었습니다. 머리를 묵직하게 얻어맞은 듯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친구는 덧붙였습니다. 그 정의를 접하고 나니 동료를 향한 마음이 달라졌다고요. '저 사람이 나를 왜 힘들게 할까'를 고민할 때는 괴롭기만 했는데, '내가 저 사람에게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니 그를 대하는 자세에 여유가 생겼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인맥을 '나의 자산'으로 여깁니다.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나를 지탱해 줄 배경으로 사람을 계산하곤 합니다.
나를 도와줄 사람을 찾는 행위는 결국 '결핍'에서 시작되지만, 내가 도와줄 사람을 찾는 행위는 내 안의 '풍요'에서 시작됩니다.
인맥을 기여의 대상으로 정의하는 순간, 관계의 주도권은 타인이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프랑스에서의 시간은 제 인간관계를 아주 간결하고 투명하게 정제해 주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집착했던 인맥의 거품은 타국 땅으로 건너오며 자연스럽게 걷혔습니다. 이제 제 연락처에 남은 이들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들은 모두 제가 기꺼이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내어주고 싶은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지금 이 시간, 한국에서 밤을 잊은 채 저와 긴 대화를 나누어준 이 친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서로의 엉킨 생각을 정리해 주고, 지친 마음을 다독이며 서로의 인생을 돕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인맥'의 살아있는 증거가 아닐까요.
10년의 세월이 제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내가 무엇을 얻을까 고민하는 관계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더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단 몇 명의 진심'입니다.
찰나처럼 지나간 오후의 대화는 제 삶의 영원한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인맥은 쌓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진심을 나누어 줄 대상을 선별하고 그 자리를 정성껏 지키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