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Habari Kenya

케냐의 설교 비지니스

by 심한수

종파는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기독교 신앙이 강한 케냐에서 흔한 거리의 비지니스 중에 하나가 설교 비지니스이다. 공원에서, 길에서, 버스에서, 마타투(Matatu; 일종의 미니버스) 정류장에서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목청이 터져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설교를 하는 거리의 설교사들이나 목사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언젠가 나는 교통체증이 심한 도로 위의 한 버스에서 한 시간을 넘게 설교하는 설교사를 보고, 버스를 움직이는 교회로 만들어버리는 그이의 능력에 진심으로 감탄(?)한 적도 있다. 또 그 와중에 설교를 끝까지 듣고 심지어 사다카(sadaka; 헌금)까지 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신앙인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는 그들의 마음에 감탄하기도 했다.


어떤 설교사와의 소통에 실패했던 이야기

언젠가 살고 있던 곳 근처에 있는 큰 시장에 갔다가 한 정류장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타야 하는 마타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둑해지는 저녁이었고, 귀가하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그 정류장에서 사람이 다 차면 출발하는 마타투들을 하나하나 잡고 안전을 위한 기도를 올리는 설교사를 보았다. 그는 흔히들 그러듯이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다른 한 손을 차량 몸통에 올리고 마치 그 차를 축복하고 안전을 기원한다는 듯한 몸짓을 내보이면서 열심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뒤에 서 있던 나를 중국인이라고 생각하고 곧장 설교의 내용을 중국으로 바꿔서 설교하기 시작했다. 시장통이 너무 시끄러웠고 국어인 스와힐리어와 그가 속한 공동체의 언어인 키쿠유어가 섞여서 잘 듣지는 못했는데 대충 중국에도 어떤 기도를 보낸다는 듯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실수로 별생각 없이 살짝 손을 내저었다. 그건 그냥 중국인이 아니라는 의사표시를 했던 것인데, 그이는 그것을 오해하고 엄청나게 화가 난 표정으로 "네가 감히 나의 기도를 거부해?"라더니 이번에는 중국에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다. 나는 뭔지 모르게 당황하여 "아니 저 중국인 아니에요"라고 재빨리 말했는데, 그는 그럼 내가 일본인일 것이라는 생각에 일본을 들먹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더 당황해서 "아니 저 일본인도 아니에요"만 겨우 말하고 급히 다른 승객들과의 자리 경쟁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리고 내가 탄 마타투가 떠날 때까지, 중국과 일본, 아니 아시아를 통째로 기독교적인 신앙이 부족하다고 화를 내는 그이의 설교를 계속해서 들어야 했다. 뭔가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뭔지 모를 소통의 실패였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 속에 찜찜한 여운이 남았다.


설교와 교통


설교사들에도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정말 설교를 듣고 정신적으로 소모되고, 기분도 상당히 나빠질 때가 있었다. 어떤 버스나 마타투에는 "설교 금지, 구걸 금지, 장사금지 (No preaching, No begging, No hawking)"라고 써 붙여져 있는데 그럼에도 설교사들이 차장이나 기사에게 돈을 조금 쥐어주고 꼭 올라탈 때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걷히는 헌금이 적을 때는 저주 아닌 저주를 내뱉고 가는 설교사들이 있었는데, 정말 이건 설교가 아니라 협박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특히, 장거리 마타투나 교통사고 및 체증이 빈번한 노선에서 이런 협박과 설교는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어떤 버스의 승객들이 설교사에게 제대로 헌금하지 않아서 큰 사고를 당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을 들은 적도 있다. 교통안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공간에서 사실상 '하나님의 입'이었던 설교사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으면 불행한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어떤 심리적인 두려움이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나 목사님


가끔 인사를 나우던 마이나 목사님은 동네 버스에 올라타서 설교를 하고, 승객들이 쥐어주는 헌금을 받아서 작은 교회를 운영하는 분이셨다. 그분이 살던 동네를 처음 방문해서 설교를 들었던 것이 2011년었는데, 이후 2014년까지 매년 그곳에 돌아가서 버스를 타면 늘 목청 터져라 설교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마이나 목사님을 만나는 것이 참 피곤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른 아침에 잠이 덜 깬 몸으로 시내에 나갈 때, 교통체증으로 멈춰버린 버스에서 쪽잠을 좀 자려고 하면 목사님의 쉰 목소리가 언제나 큰 방해였다. 운이 나빠서 내가 앞자리에 앉아 있을 때 목사님이 올라타면 바로 옆에 서서 설교를 하는 통에 귀청이 터질 듯한 상태로 한참을 가야 했다. 덕분에 겉으로 불평을 하지도 못하고 그저 눈을 감고 그 시간을 인내하면서 목사님이 얼른 내리기를 바랐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가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그날도 우연히 맨 앞자리에 앉은 내 바로 옆에서 목사님이 설교를 시작했다. 별로 피곤하지도 않았던 터라 뭐라고 하시나 한번 들어보자 하고 앉아 있는데, 목사님이 갑자기 나를 쳐다보면서 큰 목소리로, "Where are you from? Japan? (넌 어디에서 왔니? 일본에서 왔니?)"라고 물었다. 그래서 그냥 "Korea Kusini (한국이요)"라고 대답했더니, 신이 난 목사님은 "그곳에도 나 같은 설교사들이 있느냐? 거기에도 교회가 있느냐? 버스에서 설교하는 사람들이 있느냐? 없으면 내가 가서 설교를 하겠다. 네가 옆에서 통역을 해다오"라며 웃었다. 그 모습에 나도 웃음이 빵 터졌는데, 그때부터 목사님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것을 버스 전체에 아주 방송을 했다. 그리고는 내리면서 동전을 빨리 내밀지 않는 나에게 늘 들고 다니시는 낡은 가죽 가방을 내미시면서 "Kenyans are watching you (케냐 사람들이 너를 쳐다보고 있어)"라고 헌금(?)을 종용했다. 나는 거기에 또 웃음이 빵 터져서 호주머니에 있는 동전들을 탈탈 털어 넣어드렸다.


목사님이 떠나고, 이제야 버스가 좀 조용해졌다는 듯한 기분에 한숨을 내쉬는데, 옆자리에서 나를 곰곰이 쳐다보던 한 승객이 내가 말했다.


"It was hard. But that is his living (힘들지. 근데 저게 저분의 생계야)."


순간 마음속에 뭔가 묵직한 것이 하나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 시끄러운 설교에 시달리면서도 목사님이 내릴 때면 꼭 주머니와 지갑을 뒤져서 동전을 넣고, 목사님이 겉장이 다 떨어진 낡은 성경을 펴면 가방에 들고다니는 성경을 펴서 설교를 따라가고 (덕분에 버스는 움직이는 교회가 되고), 설교가 아무리 길어져도 불평 한마디 안 하는 승객들이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동정이나 방관이 아닌, 그의 설교에 대한, 아니 그의 생계에 대한 '관용'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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