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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빈 Sep 22. 2017

MCU 세대교체의 서막

영화 '스파이더맨:홈 커밍'

 마블 스튜디오는 2008년 5월 '아이언맨'을 내놓은 이후 10년간 승승장구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15편의 영화로 이들이 벌어들인 돈은 자그마치 117억6840만 달러(약 13조5000억원, '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단순히 흥행을 떠나서도 마블의 영화들은 작품 자체로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압도적인 기술력은 말할 것도 없고, 20여명의 영웅 캐릭터를 버릴 것 없이 살려내는 그들의 능력은 슈퍼 히어로 장르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오락영화의 새 기준을 마련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아쉬울 게 없는 마블의 한 가지 약점은 그들의 세계관을 유지하는 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캐릭터 중 하나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바로 소니픽쳐스가 판권을 소유한 스파이더맨이다. 마블은 소니와의 긴 협의 끝에 스파이더맨을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2016)에 합류시켰고, 곧바로 솔로 시리즈 작업에 들어갔다. 스파이더맨 없이도 잘해왔고, 최고 인기 캐릭터 아이언맨이 건재한데다 블랙 팬서(2018년 2월)·캡틴 마블(2019년 3월) 등 새 영웅의 본격 데뷔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마블은 왜 그토록 스파이더맨을 원했을까.


 '스파이더맨:홈 커밍'(감독 존 웟츠)은 답변을 담은 작품이다. '청소년 영웅 성장물'의 유머러스함 속에 담긴 메시지는 일종의 선전포고다. 새 스파이더맨 톰 홀랜드는 개봉 전 인터뷰에서 이 시리즈가 앞으로 두 편 더 제작될 거라고 누설한 바 있는데, 솔로 시리즈 3부작이 만들어진 사례가 MCU를 대표하는 두 캐릭터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외에 없다는 건 스파이더맨 '3부작'의 의미를 격상한다. 게다가 스파이더맨과 유사 부자 관계를 맺는 캐릭터가 MCU의 상징 아이언맨이라는 건 더욱 의미심장하다.


 얼떨결에 참가한 '시빌 워' 이후 피터 파커는 들뜬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어벤져스와 같은 슈퍼 히어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부는 손에 잡히지 않고, 학교가 끝나면 토니 스타크에게 받은 스파이더맨 슈트를 입고 무작정 거리를 활보한다. 그러나 그의 어설픈 '영웅 놀이'는 사건 해결은커녕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고, 시민들을 오히려 위험에 빠뜨린다. 스타크에게 슈트를 뺏긴 파커는 악당 벌처(마이클 키턴)의 비밀을 알게 되고, 과거에 직접 만든 어설픈 스파이더맨 옷을 입고 다시 한 번 사건 해결에 나선다. 

 벌처는 잔챙이 악당이다. 어벤져스가 우주 최강 타노스와 결전('어벤져스:인피니티 워' 2018년 5월)을 앞둔 상황에서 외계 물질로 무장하고 하늘을 나는 악당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중요한 건 파커의 성장이다. '시빌 워'에 참가했을 때가 14살이었고, 이제 겨우 15살이 된 천방지축 '고등 영웅' 혹은 '인턴 영웅'이 '영웅병'을 스스로 치유하고, 영웅으로서 책임감과 그에 따르는 부담감을 아주 조금은 깨닫는 과정이 바로 '스파이더맨:홈 커밍'이다. 파커가 여자친구와 홈 커밍 파티에 가는 날 여자친구를 홀로 내버려두고 벌처를 뒤쫓는 상황은 그가 앞으로 영웅으로서 어떤 삶을 살게될지 보여주는 정확한 설정이다.


 과정이 어찌됐든 스파이더맨은 커나가야 한다. 중요한 건 이 성장의 중심에 누가 있느냐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에는 외삼촌의 죽음이 있었다면("큰 힘에는 큰 책임감이 따른다."), 존 웟츠의 새 작품에는 산전수전 다 겪은 영웅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멘토링이 있다. 마블은 부모가 없는 파커와 자식이 없는 스타크를 유사 부자 관계로 맺어주고(스타크는 파커의 경거망동을 꾸짖다가 "이건 내가 아버지에게 듣던 말인데"라고 말한다), 사실상 파커로 하여금 스타크의 대(代)를 잇게 한다.


 마블은 의도적으로 파커를 스타크와 닮은 게 매우 많은 인물로 그려냈다. 말이 많고 빠르며, 언제 어디서나 누구 앞에서나 까불거리는 성격은 사실 스타크가 '아이언맨' 시리즈 내내 보여줬던 모습이다. 결국 화를 부르고마는 파커의 공명심도 마찬가지다. 영웅이라는 정체를 숨기지 않고, 아이언맨 슈트를 입고 파티에 나타나던 사람이 바로 스타크였다. 두 사람을 이어주는 만담 개그 수준의 유머코드는 어떠한가. 파커 또한 스타크처럼 과학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천재이기도 하다. 가진 재산에 차이가 있을 뿐 어쩌면 파커는 이를테면 '고등학생 스타크'다. 


 전작들과 다른 스파이더맨 슈트 또한 피터와 스타크의 밀착된 관계를 부각한다. 스타크가 직접 만들어 파커에게 선물한 슈트는 아이언맨의 그것처럼 최첨단 무기에 최고 수준의 인공지능을 탑재한 병기로, 선배 스파이더맨들이 보여준 일종의 '코스튬 플레이'와는 거리가 멀다. 아이언맨이 인공지능 자비스를 활용해 전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고 스파이더맨 또한 캐런과 소통하며 상대를 제압한다. 겉모습만 다를 뿐 똑같은 사실상 같은 캐릭터라고 불러도 될 이런 설정들을 시리즈의 연관성과 캐릭터의 독창성을 중요시하는 마블이 아무렇게나 배치했을리 없다.


 결국 마블은 스파이더맨이 아이언맨을 대체하는 MCU 세대교체 큰 그림을 '스파이더맨:홈 커밍'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한 편을 완성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기존 영웅에 대한 관객의 피로감도 생각해야 한다. 그 사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50대가 된지 3년이 지났고,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번스는 이 시리즈에 참여한 10년 동안 포기해야 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마블은 이들과 2020년대를 함께할 수 없다고 판단, 슈퍼 히어로계에서 가장 익숙하고 화려한 영웅인 스파이더맨의 합류를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마블은 스파이더맨의 인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마블 제국의 앞으로 10년을 이끌 새 얼굴이 필요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마블은 내년 5월 개봉하는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와 2019년 5월 개봉 예정인 '어벤져스' 네 번째 편에서 주요 캐릭터들이 죽음을 맞이할 거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어벤져스4' 직후에 개봉하는 '스파이더맨:홈 커밍2'(2019년 7월 개봉)는 이 세대교체를 본격화하는 작품이 될 공산이 크다. 스파이더맨과 함께 '시빌 워'에서 첫 등장한 블랙 팬서는 캡틴 아메리카의 대체자로도 보이는데, 블랙 팬서는 캡틴과 전투 형태가 유사하고 캡틴이 비브라늄 소재의 방패를 자신의 상징으로 삼았던 것처럼 그 또한 비브라늄 갑옷으로 온몸을 둘렀다.


 마블의 수장 케빈 파이기 사장이 스파이더맨을 연기할 배우로 당시 고등학생이던 톰 홀랜드를 깜짝 발탁한 것 또한 세대 교체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인다. 물론 고등학생 설정인 스파이더맨을 위해 어린 배우를 선택한 면도 있겠지만, 스파이더맨을 더 역동적으로 연기하면서 오래 MCU를 이끌어 가기를 바라는 백년지대계에 더 가깝다. 일단 홀랜드는 합격점을 받았다. 그는 아직 다우니 주니어만큼 카리스마가 있지 않지만, 독특한 목소리와 에너지가 느껴지는 연기로 새 스파이더맨 시대를 알리는 데 성공했다.


 '스파이더맨:홈 커밍'은 물론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오락영화다. 모든 마블 영화를 통틀어 유머러스한 작품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즐거운 코미디물이며, 이미 전작들에서도 증명된 스파이더맨 특유의 활기찬 액션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액션물이기도 하다. 다만 마블이 그려가려는 미래와 스파이더맨의 탄생을 엮어서 이 작품을 보면 더 흥미롭다. 얼마 전 울버린이 '로건'에서 죽음을 맞았을 때, 많은 관객이 감동한 건 그의 역사를 다양한 작품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스파이더맨은 그 첫 발을 내디뎠다.


(글) 손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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