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혹성탈출:종의 전쟁'
'혹성탈출' 세 번째 편(감독 맷 리브스)의 부제 '종(種)의 전쟁'은 유인원과 인간이 상대 종을 절멸하기 위해 벌이는 투쟁을 뜻하지 않는다. 러닝타임 140분 동안 두 종족이 전투하는 장면은 10분 분량의 오프닝 시퀀스 외에 없다. 한쪽이 제거돼야 다른 한쪽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식의 제로섬 게임은 애초에 없었다. 이 전쟁은 매파와 비둘기파의 의견 충돌에 이은 합의 실패가 만들어낸 것으로('반격의 서막') 사실상 위기는 안에서 촉발했고, 내분 전까지만 해도 두 종은 공존할 수 있었다. '종의 전쟁'은 곧 '종 내부의 전쟁'이다.
전쟁은 '반격의 서막'(2014)에서 시작된 상수다. '종의 전쟁'은 이 판을 흔드는, 두 종족 내에서 발생한 변수, 그리고 대처와 극복에 관한 이야기다. 어떤 순간에도 이성을 놓지 않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던 '시저'(앤디 서키스)는 가족을 잃고 복수에 골몰한다. 유인원들은 그 사이 절대적 지도자를 잃고 광야에 내던져진다. 시미언플루 확산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인간은 이제 바이러스 부작용으로 지적 능력마저 퇴화한다. 최악의 위기, 이 재앙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은 퇴보하는 동족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고뇌·결단·후회·반성은 '혹성탈출' 3부작을 관통한다. '진화의 시작'(2011)이 전복과 해방을 다룬 작품이고, '반격의 서막'(2014)이 새 체제 유지에 관한 이야기이라면, '종의 전쟁'은 생존과 또 다른 시대의 시작을 그린다. 그때마다 이 시리즈가 집중적으로 담은 건 고민에 빠진 시저의 얼굴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뱉은 말이 "No"라는 것(진화의 시작), 그가 그토록 강조했던 "Home, family, future"(반격의 서막), 동족을 다시 규합하는 "Apes together strong"이라는 외침은 모두 시저의 고뇌·결단·후회·반성 속에서 터져나왔다.
'혹성탈출'은 단순히 블록버스터라는 말로 한정할 수 없다. 이건 '비극 블록버스터'다. 시저는 자신이 원치 않은 능력을 가진 탓에 영웅이 될 운명에 놓였고, 그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는 새 시대·새 문명을 개척해야 한다는 짐을 짊어지고 나아가지만, 세계는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가지 않기에 괴로웠다. 그는 그 뛰어난 능력때문에 가족을 잃고 복수라는 욕망에 휩싸이지만, 그 욕망마저 누르고 자신의 운명을 또 한 번 받아들이고 전진한다. 어떤 블록버스터도 이런 비극적 영웅 이야기를 시도한 적이 없다.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더 뛰어난 컴퓨터그래픽(CG), 더 장엄한 그림들이 담기는 건 기술의 진보나 제작비의 규모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자신이 내건 최고의 가치('유인원은 뭉치면 강하다')와 대원칙('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을 모두 어긴 영웅의 몰락과 반성, 최악을 향해 가는 인간 행태에 대한 연민과 두려움, 종족의 미래에 관한 공포를 시저의 눈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어느 때보다 정교한 CG 연출이 필요했다. 유인원의 진화에서 그치지 않고 헤게모니가 완전히 교체되는 거대한 혁명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시각적으로도 관객을 압도하는 광경들이 그려져야 했음은 물론이다.
디스토피아를 담은 많은 작품이 그러했듯이 '혹성탈출' 역시 세계의 미래를 고민한다. 이를테면 공동체가 완전히 공중 분해될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해나가느냐는 것이다. 이 고비의 정점에 유인원 공동체의 뿌리인 시저의 부재가, 인간 문명을 가능케 한 모든 것인 지능의 퇴화가 있다. 두 종족은 다른 길을 간다. 유인원은 희생과 협력으로 승리하고, 인간은 결국 인간다움을 포기하면서 자멸한다. 유인원이 인간에게서 탈출한 직후 벌어진 인간들 사이의 전쟁을 거대한 눈사태로 휩쓸어버리는 건 이런 종족에게서는 더이상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다는 의미로 봐야한다.
이런 측면에서 '종의 전쟁'은 앞서 개봉한 '덩케르크'와 상통한다. '덩케르크'는 공동체가 어떻게 작은 희망을 지켜나가는지 보여줬다. '종의 전쟁'도 그렇다. 시저라는 유일무이한 영웅이 있지만, 유인원 공동체를 구한 건 결국 시저를 포함한 그들 모두였다. 관객은 인간이 아닌 유인원들의 승리를 바라면서 영화를 따라가게 되는데, 그것은 인간이 인간성을 놔버릴 때("인류를 구하기 위해선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해야 할 때가 있다"라는 대령의 대사) 유인원들은 인간만이 가진 숭고한 가치를 지켜나가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우디 해럴슨이 연기한 대령은, '우리가 싸우고 저항하는 과정은 그 싸움과 저항을 통해 획득하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나오미 울프)라는 걸 알려주는 캐릭터다. 유인원들이 퇴화한 지능의 인간 소녀 '노바'와 교감하는 것과 다르게 인간은 퇴화한 동족을 제거한다. 노바가 유인원 탈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건 상징적이다. 대령이 시저에게 최후를 맞이하는 게 아니라 그가 가장 두려워했던 일이 자신에게 생겨 죽게되고, 시저가 그를 연민하게 하는 건 세계를 향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이기도 하다.
프랭클린 J 샤프너 감독이 1968년에 내놓은 '혹성탈출'을 통해 '종의 전쟁' 이후의 이야기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니까 결국 세상은 시저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유인원과 인간은 공존하지 못했고, 인간은 유인원의 노예가 됐다. 이건 유인원을 완전히 제거하려던 인간의 방식이며, 코바와 같은 괴물을 만들어낸 인간의 행동과 다르지 않다. 이제 유인원의 미래 또한 장담할 수 없다. 샤프너 감독의 '혹성탈출'은 이번 세 편의 리부트 시리즈를 통해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됐다. '혹성탈출'이야말로 진정한 비극이다.
(글) 손정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