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테이블'
'더 테이블'(감독 김종관)은 정유미·정은채·한예리·임수정이 한국 영화계에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각인한다(여기에 김혜옥까지). 영화는 구조상 많은 부분을 배우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그들은 이 작은 이야기가 속에 품은 다양한 결을 이해하는 연기로 극을 짊어진다. 그러니까 이 배우들은 대사가 담지 않은 것들까지 눈에 담는다. 어떻게 보면 아무 것도 아닌 네 차례의 대화는 이들의 흔들리는 눈빛, 어색한 손짓, 흐릿한 미소 몇 번으로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유명 배우가 된 '유진'(정유미)은 오래 전에 사귀었던 전 남자친구를 한 카페에서 다시 만난다. '경진'(정은채)은 우연히 만나 잠시 데이트했지만, 갑자기 연락이 두절됐던 어떤 남자와 몇 개월 만에 다시 한자리에 앉는다. 결혼 사기를 치며 살아가는 '은희'(한예리)는 가짜 엄마 역할을 할 중년 여성과 앞으로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결혼을 앞둔 '혜경'(임수정)은 전 남자친구를 만나 잠시 대화한 뒤 헤어진다.
김종관 감독의 전작 '최악의 하루'(2016)에서 한 여자는 하루 동안 여러 장소를 옮겨다니며 몇 명의 남자를 만난다. 신작 '더 테이블'은 반대다. 네 명의 여자는 하루 중 각기 다른 시간에 같은 자리에서 한 명의 남자(혹은 여자)와 대화한다. 전작이 단편소설이라면, 신작은 산문시다. 전작이 어떤 이의 긴 하루로 순간의 감각을 잡아낸다면, 신작은 순간의 대화로 누군가의 긴 역사를 이끌어낸다. 이 작품에 '더 테이블'이라는 제목이 붙은 건 그 위를 오간 각기 다른 사람의 수많은 이야기, 그러니까 거기에 그들이 지나온 삶이 쌓여있어서다.
유진이 주변의 눈을 피해가면서 헤어진지 수년이 지난 남자친구와 해후한 건 배우로 살면서 받은 어떤 상처때문일지도 모른다. 경진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그 남자에 대한 왠지 모를 섭섭함에는 청춘의 불안이 스며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은희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처음 본 중년 여성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털어놓는 건 문득 생겨난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혜경이 전 남자친구에게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과거 연인이었던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그들이 어쩌다가 이별했는지 추측하게 된다.
관객이 그들의 대화 속에서 보게 되는 건 러닝타임 70분 안에 담기지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삶들이다. 누가 누구를 아프게했건 비판도 비난도 없다. 쉽게 긍정하거나 비관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들은 속상하고(유진), 애틋하고(경진), 아련하고(은희), 안타깝다(혜경). 그 마음들이 그들의 의식하지 않은 말과 표정에 있음을 잡아챌 줄 아는 예민한 감각은 '더 테이블'을 단순한 옴니버스 형식의 프로젝트로 남겨두지 않고 말 그대로 '한 편의 영화'로 만든다. 다시 말해 감독이 얼마나 사람들과 그들의 인생 하나한를 애정어린 눈으로 지켜보는지 알게 하는 작품이다.
카메라는 네 여자의 얼굴이 보여주는 희미한 움직임을 하나라도 놓칠까 그들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간다. 정유미와 정은채와 한예리와 임수정 또한 그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정유미는 주변의 오해에 점점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는 유진의 피로감을 무표정에 담고, 정은채는 모든 게 불확실한 시기에 대한 경진의 짜증을 나른한 말투에 올려놓는다. 한예리는 은희의 슬픔을 사무적인 화법 속에서 은근히 드러내고, 임수정은 혜경의 미안한 마음을 장난스럽게 에두른다. '더 테이블'을 완성시켜주는 건 결국 배우들이다.
카페에 잠시 모였던 이들은 대화를 마친 뒤 각자 다른 결론을 가지고 밖으로 나선다. 누군가는 실망하고, 어떤 이는 설레이고, 또 다른 사람은 안도하고, 혹은 씁쓸할지도 모른다. 영화가 보여주는 건 특정한 상황에 놓인 네 사람이지만, 진짜 말하고자 하는 건 그보다 더 많은 사람과 삶이다. '더 테이블'을 작은 영화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영화다.
(글) 손정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