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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빈 Sep 26. 2017

익숙해진 개성

영화 '킹스맨:골든 서클'

 '킹스맨:골든 서클'(감독 매슈 본)은 일종의 팬서비스 영화다. 전작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에서 콜린 퍼스가 연기했던 '해리'가 명백한 죽음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부활한 건 상징적이다. 다소 억지스럽고 싱겁지만 해리를 어떻게든 복귀시키기 위해 특정 설정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던 점, 그 유명한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 액션 시퀀스를 굳이 재연한 점은(매너가 아무리 '킹스맨'에 중요한 키워드라고 해도) 그 의도를 충분히 읽을 수 있는 것들이다. 말하자면, '시네마 애프터 서비스'랄까.


 애송이에 불과했던 에그시(태런 에저튼)는 어느새 킹스맨 조직의 에이스가 돼 활동 중이다. 과거 자신과 함께 킹스맨이 되기 위해 훈련받았던 찰리가 이제는 범죄자가 돼 사고를 치는 게 골칫거리이기는 하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킹스맨들은 의문의 테러를 받는다. 최악의 폭탄 테러를 받은 뒤 살아남은 건 에그시와 멀린(마크 스트롱)뿐. 두 사람은 테러의 배후를 찾아 복수하고, 조직을 재건하기 위해 킹스맨의 형제 집단인 미국의 스테이츠맨을 만나기 위해 켄터키로 간다.


 '킹스맨' 두 번째 작품이 최상급 오락영화라는 건 명백하다. 킹스맨 택시 안에서 벌어지는 에그시와 찰리의 액션을 담은 오프닝 시퀀스의 완성도만 봐도 감이 잡힌다. 영화는 화려하고 정교하며 유머러스하고 화끈하다. 놀라운 촬영 방식은 물론 착착 달라붙는 편집 또한 인상적이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음악도 귀를 즐겁게 한다. 영국과 미국을 아우르는 배우들의 면면으로도 볼거리는 충분하다. 일부 선정적인 표현으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지만, 누가 봐도 러닝 타임 141분이 지루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평균 이상의 만듦새에도 불구하고 '팬서비스 영화'라는 이름이 붙은 건 뛰어난 전작이 있는 후속작의 운명이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다시 말해 '골든 서클'은 '시크릿 에이전트'를 답습할 뿐 진화하지 못했다. 전편을 향한 관객의 고른 지지는 전통적인 비밀 요원 이야기를 B급 유머(한국 인터넷 용어로는 '병맛' 유머)로 풀어낸 뒤 잔혹하면서도 장난스러운 액션을 가미한 개성에서 나왔다. 후속편 또한 이 길을 가는데, 2년 전에 경험한 것을 똑같이 반복해서 맛 볼 때의 감흥은 결국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제작비가 전작보다 300억원 가량 더 늘어난 것과 함께 영화 규모가 더 커진 것은 분명하지만('골든 서클' 제작비 약 1200억원), 전편보다 내실있는 장면이 많다고도 할 수 없다. 가령 충격적이기까지 했던 전작의 교회 전투 시퀀스라든지, 작품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며 대미를 장식한 머리 폭발 장면과 같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이번 작품에서는 찾을 수 없다. 새로 등장한 스테이츠맨이 인상적이지 않은 점 또한 아쉽고, 줄리언 무어가 연기한 '포피'가 새무얼 L 잭슨이 맡은 '밸런타인'보다 매력적인 악당이 아니라는 점도 재미를 반감한다.


 '골든 서클'은 '킹스맨' 시리즈를 세 번째 편으로 이어가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작품에 가깝다. 채닝 테이텀이 연기한 '데킬라'가 영화 내내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는 건 의도적이다. 테이텀은 수려한 외모와 빼어난 춤 솜씨로 스타가 된 뒤 꾸준히 발전해 현재는 연기력과 스타성을 모두 갖춘 배우로 인정받는다. 단역에 가까운 역할로 소모할 수 있는 배우가 아니라 의미다. 데킬라가 에그시를 힘에서 압도하는 실력을 보여주는 장면이 포함된 것, 에그시나 해리가 아닌 데킬라가 영화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킥애스:영웅의 탄생'(2010) '엑스맨:퍼스트 클래스'(2011)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2015)에서 매슈 본 감독에게는 어떤 제약도 없어 보였다. 대중이 좋아할 만한 걸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든 걸 대중이 좋아하게 만들겠다는 자신감 같은 게 있었다. 그의 작품들에서 어디하나 관습적인 요소를 찾을 수 없었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골든 서클'은 즐길거리가 많은 오락영화이지만 매슈 본답지 않은 작품이다. 그가 '킹스맨' 세 번째 영화에서 우리가 알던 그런 연출가로 돌아올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글) 손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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